지지율 붕괴 눈 감고 제국 꿈꾸는 자유민주주의

출처: Clark Gu & Unsplash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천 개입을 시사하는 목소리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민감한 녹취는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녹취에서 명태균 씨는 자신과 대통령 간의 통화 내용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며 이에 대해 설명한다. 명태균 씨가 재생하는 녹음 파일에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이 녹음되어 있다. 명태균 씨는 이게 김영선 전 의원을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에 공천하라고 당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 지시했다는 취지의 얘기임을 설명한다. 김건희 여사로부터 직후에 전화가 걸려 와 취임식에 참석하도록 초청하더라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 모든 내용은 다시 녹음돼 누군가에 의해 제보의 형태로 공개됐다. 마치 영화 ‘인셉션’을 보는 듯한 구성이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은 법적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실제 유죄를 받았다. 이런 사안이 정국을 뒤흔들 때 권력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을 수용하는 게 상식적이다. 아무래도 그게 어렵다고 생각되면 검찰 등의 수사기관에 특별수사팀 등을 꾸리도록 하고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해 엄정한 수사를 자청한다. 이를 통해 사안을 수사의 영역으로 일단 밀어 넣어 놓고 통치를 다루는 테이블에는 민생이나 개혁 의제 등을 올려 국정 운영의 동력을 회복하거나 확보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해명을 내놓는 방법을 택했다. 대통령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로부터 무언가를 보고받은 일이 없고 무언가를 지시한 일도 없다는 것이며, 명태균 씨와의 통화 내용은 그저 좋게 말해준 것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는 거다. 다시 말해 공천관리위에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부탁했다는 등의 말을 한 것은 결국 ’거짓말’이라는 건데, 이런 해명대로라면 대통령은 명태균 씨를 속이고 농락한 셈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을 남을 속이고 뒤통수 치는 사람으로 묘사한 것인데, 이런 식의 대응은 생전 처음 본다.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윤계 인사들은 느닷없는 ‘탄핵’ 방어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용산의 해명대로 공천 개입과 관계가 없지만,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기 전인 당선인 시절 한 말이라 탄핵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거다. 실제 공천 개입이 실현된 건 대통령이 된 이후라는 식의 반론도 있지만, 친윤 인사들이 누가 묻지도 않은 얘기에 진지하게 답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제목의 책도 있지 않나? ‘탄핵’을 말하는 것으로 인하여, ‘탄핵’을 논쟁의 핵심 의제로 밀어 올리는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친윤 인사들은 왜 이런 상황을 자처한 것일까? 대통령의 음성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 ‘탄핵’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음성이 공개된 직후부터 뉴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할 텐데, ‘우리 편’에 대한 방어 논리를 유포하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덕에 스스로 ‘탄핵 프레임’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됐으니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은 단발성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왜 공천에 개입하였는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명태균 씨가 조작 왜곡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선에 기여하였기에 그 반대급부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명태균 씨와 관련된 녹취가 추가로 공개될 때마다 이러한 추정은 강화되고 있다. 대가성에 바탕을 둔 거래는 김영선 전 의원에 대한 공천으로 끝난 것 같지 않다. 창원 산단과 관련된 문제 등 의심을 사고 있는 대목이 더 있다. 즉, 대통령의 공천 개입은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동시에 취임 이후 부정부패를 의심케 하는 사안이다. 대통령의 육성이 녹음된 시점이 취임 전이니 후니를 따질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시야를 넓혀보자.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이미 취임 전부터 법치보다는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권력 행사에 친화적인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자유민주주의라기 보다는 권위주의에 가까운 모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다. 즉, 통치자로서의 윤석열 대통령은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캐릭터이다. 명태균 씨로 상징되는 떳떳지 못한 여론조사 활용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나,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공천 등을 수단으로 한 부적합한 방식의 정치적 자원 배분을 실행한 것이나,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고 수사 역시 용인하지 않는 것 등이 모두 이 맥락 안에서 설명된다.

그렇다면 애초에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확인한 것은 상대를 ‘권위주의적 전체주의’로 몰기 위한 핑계였고, 반공주의였으며, 이미지 연출에 불과했다는 거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짚어보면 여기에 유사 제국주의를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군을 보낸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무기 지원 검토, 참관단 파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중 살상용 무기 지원과 관련해선 여러 측면에서 쉽지 않아 일단은 선택지에서 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권과 보수정치의 전반적인 태도가 심상찮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투입이 된 게 확인되는 즉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표적인 게 현지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사로잡힌 북한군 포로를 포섭하자는 식의 논의다. 언론 보도를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한국일보는 10월 27일 우크라이나 파견 인력에 대북 심리 분야 전문가를 포함시켜 북한군 포로를 직접 심문하고 탈북 지원까지 하는 방안을 국정원이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북한군 포로를 집단 송환해 김정은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거다.

이게 국제법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도 문제지만 왜 머나먼 타지에서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보수정치는 이런 저런 설명을 내놓지만 딱히 와닿지 않는다. 가령 조선일보의 2일 사설을 보면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에서 수억 달러의 현금 지원은 물론 핵과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게 된다. 실전 경험을 통해 드론 활용술 등 현대전의 전술까지 익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북의 파병은 국제 안보를 넘어 한반도에 명백하고도 치명적 위험 요소다. 북의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됐다”고 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논점 이탈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거래’는 북한이 군을 보내는 것으로 이미 성립된다.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하고 말고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개입하기 때문에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이나 재건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까지는 인류애적 차원이나 경제적 유인이라는 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군사적 판단이 이런 식으로 이뤄져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니 참관단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정부는 소규모의 군인을 파견하는 것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고 과거에도 참관단을 파견한 사례가 있다는 논리로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파병에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게 한 법의 취지는 행정부가 타국의 전쟁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려 하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입법부의 통제를 받으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또 과거의 참관단은 전쟁이 끝나고 재건이 진행 중이던 때에 파견됐다는 점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결국 앞서 제기한 ‘명태균 이슈’와 같은 국내 정치적 문제를 덮기 위해 우크라이나전이나 북한과의 갈등을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만일 그렇다 해도 ‘명태균 이슈’를 덮을 수단을 어째서 대한민국의 국경 밖에서 찾느냐는 거다. 이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시각을 전제하지 않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전까지는 이런 대목과 관련해선 실질적 제국인 미국의 영향력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라는 틀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그 맥락조차도 벗어난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중동만으로도 벅찬 상황에 우크라이나전의 정치적 무게감이 커지는 건 아무래도 달갑지 않다. 그러잖아도 상대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종전을 말하며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참전과 서방 및 한국의 지원 필요성을 언급하고 윤석열 정부가 이에 호응하는 것은 현재 시점의 미국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시나리오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보면 우크라이나에 호응하는 윤석열 정권의 움직임은 제국주의를 꿈꾸는 하나의 독자적 움직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제국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은 제국의 여건을 갖춘 상태가 아니다. 국내 이슈에 대응하는 걸 볼 때 윤석열 정권이 제국을 운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 것 갖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자유민주주의는 그저 흉내내기에 그치는 유사 제국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럴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고 조건도 갖추지 않았는데 허황된 제국을 혼자 꿈꾸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그가 운영하는 정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라기 보다는 유아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봐야 한국갤럽 기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20%대가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은채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직전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계속 15%, 13% 내외였고, 유럽의 정상들도 20%를 넘기는 정상들이 많지 않다”(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는 식의 ‘정신승리’만 반복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았는데 정권이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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