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객에게 등을 돌리는 경영
"저는 절대 여기서 반찬 사지 말라 그래요, 저는 싸준다 해도 안 먹는다 그래요"(부산지역 5인 미만 사업장 위장 반찬전문점 노동자)
경영학에서 쓰는 용어로 '내부 고객'과 '외부 고객'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고객'은 외부 고객으로, 조직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조직 외부의 개인 또는 단체를 말한다. 내부 고객은 바로 회사 내부의 직원으로,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개인이다.
경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기업들은 내부 고객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직원에게 주는 급여는 '인건비'로 지출과 관련이 있고, 고객은 소비자로서 재화나 서비스의 구매 및 사용을 통해 수입과 관련이 있는데 양자를 모두 고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냐고 되묻는다. 이를 위해 쉬운 예를 들어보자.
마트에 근무하는 직원은 출근부터 퇴근까지는 노동자이지만, 퇴근 이후에는 시민으로서 소비자가 된다. 그런데 마트의 제품이 품질도 엉망이고, 원산지 관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외부 고객들은 제품의 문제를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직접 판매하는 제품이기에 품질 문제를 알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마트의 노동자들은 식자재나 생필품을 어디에서 구입할까? 자신의 사업장이 아닌 다른 마트에서 구매하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할 것이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마트에서 절대 물건 사지 마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직원은 단순히 인건비 지출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제품의 잠재적 고객이자 제품의 자발적인 마케터가 되기도 한다.
반찬 전문점 노동자가 자신의 직장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적은 임금 때문은 아니었다. 해당 사업장은 5인 미만으로 위장하여 노동시간 제한 규정을 위반하고, 가산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처우는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를 견디지 못하게 만든 건 반찬전문점에서 폐기 직전의 반찬을 노동자에게 중식으로 제공하면서, 사업주는 같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반찬전문점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니, 노동자는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모 경영자는 "제일 중요한 고객에게 등을 돌리는 경영"을 경계했다. 외부 고객에 주목한 나머지 직원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고객의 갑질로부터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회사 정책을 내부 고객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고객 갑질에 대해서 단호히 대처하는 회사도 많다. 스타벅스는(물론 요새 문제가 많지만) "직원이 1순위 고객은 2순위"라는 경영방침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고객은 왕이다."에서 트렌드가 달라진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해 편법으로 노동시간 상한 제한 회피
우리 노동법은 '상시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조항을 달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대부분의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제4장 '근로시간과 휴식'에서는 휴게시간에 대한 조항을 제외하고는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제1항은 1주 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1일 근로시간의 상한을 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나(휴게시간 제외)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연장근로의 1주 상한을 정한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배제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하루 최장 21.5시간(1일 24시간 중 2.5시간의 휴게시간 제외)까지 일할 수 있다. 실제로 하루의 대부분을 근무하는 모텔에나 편의점에서 캐셔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더 문제인 것은, 실제로는 5인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서도 사업장 쪼개기 또는 사업소득자 위장을 통해 5인 미만으로 위장한 사업장에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경우이다.
월 실근로시간이 300시간이 넘는 대전 P카페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명세서
최근 대전 지역에서 문제가 된 P카페는 3개의 카페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운영함에도, 별개의 사업자등록을 통해 마치 별개의 사업장처럼 위장한 사업체이다.
그런데 이 사업장이 5인 미만으로 위장한 가장 큰 유인은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 바로 노동시간 상한 제한을 우회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근무하였는데, 주 노동시간이 100시간이 넘거나 월 실근로시간이 300시간이 넘기도 하였다(주휴시간 제외). 물론 5인 미만으로 위장한 만큼 가산수당을 지급하지는 않았지만, P카페의 실질사업주가 카페가 입점한 건물과 토지를 모두 소유한 재력가인 점을 고려하면, 돈이 없어서 5인 미만으로 위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편법 경영은 정당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기업의 단기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구조조정이다. 인건비를 줄이면 비용이 줄어들고, 수익(수입)에서 비용을 뺀 것을 이익이라고 하는데, 수익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이면 이익이 늘어난 것처럼 포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경영전략 측면에서 대체로 타당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경영 방식이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저성과자를 내보낸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조정 시그널을 접하는 순간 노동자들의 마음속에는 이직 의도(Turnover Intention, 이직에 영향을 미치는 선행요인으로써 현재 소속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자 하는 심리상태)가 자리 잡는다. 그러면 직무 몰입이 될 수 없을뿐더러, 언제든 좋은 기회가 나타나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 관행과 편법을 통한 법 위반 회피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회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노동자는 없다. 결국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해 퇴사 주기가 짧아지고, 그 결과 채용과 교육훈련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될 가능성도 낮아 업무 노하우도 유실될 것이다. ‘인건비’라는 항목에만 집중하면 이런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다.
P카페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하루 12시간 교대 근무 및 주 6일 출근은 일상을 파괴하고,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강제된 장시간 노동은 퇴사 후 노동청에 집단 공동진정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당연히 사업장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다.
대전 P카페 사업장 보도를 본 시민들이 카카오맵에서 남긴 리뷰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편법 경영은 시민들을 적으로 돌리고 ‘진짜’ 5인 미만 사업장 점주들의 분노를 야기한다. 그나마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들은 사업주들일 텐데, 편법 경영을 통해서 인건비를 부당하게 절감하였고 이를 통해 이윤을 추구한 사업주를 감싸줄 자영업자는 없다. 결국 단기간의 이익만을 좇다 사회의 거센 비난을 마주하고 결과적으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사업주들은 부산의 반찬전문점과 대전의 카페 사례에 주목해야만 한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은 경영이라고 부를 수 없다. 부디 2025년에는 편법·위법 경영이 근절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가 빛나기를 바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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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