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쇠퇴하고 있다. 계엄과 이어진 탄핵 정국 탓에 시민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농촌과 농민의 삶 역시 오래전부터 피폐해져왔다. 현 정부는 대통령 직무가 중지된 상태에서도 여태껏 그래왔듯이 시민들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외면받는 이들의 선두에 농민이 있다. 탄핵당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권한대행이 첫 번째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사안이 양곡관리법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거듭된 거부권 행사로 인해 양곡관리법이 전에 없이 다수 시민에게 알려졌지만, 개정안의 골자는 무엇이고, 왜 개정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농민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이 지면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진: Studio H 박혜정
양곡관리법 개정의 배경
양곡관리법은 쌀과 밀을 비롯하여 감자와 고구마 등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식량작물의 수급관리·가격관리 등을 위한 법이다. 식량, 특히 주식이 되는 작물은 한 사회의 토대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1950년에 제정된, 아주 오래된 법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쟁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20년, 정부와 거대 양당은 우리나라 양곡 정책에 큰 변화를 준다. 안정적인 쌀 생산을 위해 운영되고 있던 목표가격제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이를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쌀 자동시장격리제’로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2019년까지 우리나라의 양곡정책은 적정하다고 여겨지는 쌀값을 국회에서 목표가격으로 정하고, 목표가격과 실제 쌀 가격이 차이가 나면 정부가 변동직불금으로 차액을 보전하는 시스템이었다. 농민과 국회가 적절한 쌀값이 얼마인지 논의할 수 있고, 쌀값에 대한 조정도 직관적이며, 농민들도 일단 정해진 쌀값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시스템이었으나 대농과 쌀농가에 직불금이 집중되고 목표가격제를 통한 쌀값 안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 감축 대상 보조(AMS) 사업이라 판단하여 기존의 정책을 폐기한 것이다.
당연히 농민들은 정부가 쌀값 문제에서 손을 떼려 한다고 문제제기했고 이에 정부와 양당이 합의하여 ‘쌀 자동시장격리제’(일정한 요건이 되면 ‘자동으로’ 초과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시장격리하여 쌀값을 유지하는 시스템)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그 이후 쌀값이 급락할 때마다 ‘자동으로’ 시장격리를 하지 않아 농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번번이 발생했다. 문제의 발단은 ‘자동시장격리제’를 약속했음에도 법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 이후 양곡관리법 개정안 발의와 거부권 행사라는 지금의 핑퐁 게임까지 이어진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최소조건
지금의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 애초에 약속한 대로 법을 실행할 수 있게 문구를 ‘할 수 있다’에서 ‘해야 한다’로 바꾸는 것뿐이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의 우려를 받아들여 더불어민주당은 애초의 안에서 시장격리 발동 조건이었던 ①쌀 초과생산 3% 이상, ②쌀값 5% 이상 하락의 조건을 각각 3~5% 초과생산, 5~8% 가격 하락으로 변경해 실제로는 5% 이상 쌀이 초과생산되거나, 8% 이상 가격이 하락하면 시장격리를 하도록 발동 조건을 완화했을 뿐 아니라 쌀값을 보장하면 벼농사만 지으려고 한다는 지적에 대한 대안으로 타 작물 재배 확대 사업도 개정안에 추가하여 법을 가다듬었다.
그러니 지금의 양곡관리법은 정부와 여당이 말하듯이 ‘시장 기능을 왜곡해 쌀 등 특정품목의 공급과잉이 우려되며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10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면 신속하게 해외에서 농산물을 수입하여 농산물값을 찍어 누르고, 느닷없는 계엄으로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힌 정부가 시장 기능을 왜곡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한편, 농민들은 지금의 개정안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 여야 협의 과정에서 개정안의 내용이 많이 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지난 10번의 시장격리를 통해 쌀값이 안정화된 적은 2017년 단 한 번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농민들은 20년간 동결되다시피 한 쌀값을 현실화(밥 한 공기 가격을 200원에서 300원으로 하자는 제안일 뿐이다)해 생산비용을 보전받고, 농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길 원할 뿐이다.
농부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끝으로 쌀이 공급과잉이며 벼농사는 ‘좀비 농사’라는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는 쌀 자급률 100%를 넘긴 적이 4번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언제 갑자기 벼농사가 흉년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여타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며, 때문에 곡물자급률 20% 이하인 우리나라에서 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사의 기본 원칙은 최대화가 아니라 ‘최적화’다. 고온다습한 여름, 넓지 않은 농지라는 조건 속에서 연작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농사가 되는 식량작물은 쌀뿐이다. 기계화율이 높고, 쉽고, 돈이 되기 때문에 벼농사를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는 최적화된 농사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해외에서는 이미 기계화된 밀이나 옥수수농사를 왜 우리나라에 도입하지 못하는가.
정부는 작년 쌀 수입을 위한 예산을 30%가량 증액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체 쌀의 10%이지만 쌀 자급률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돈이 있다고 맘껏 살 수 있는 시대는 끝이 났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와 남태령 대첩으로 우리나라의 농민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농업소득 연 1천만 원, 농민 평균 나이 68세. 이 상태로는 우리 삶의 토대를 지킬 수 없다. 광장에서 단지 시장격리만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 수 있을지, 쌀값을 비롯하여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민 소득 보장 등을 통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이들이 망설임 없이 농부가 되게 할지, 쌀소비를 촉진하고 쌀 이외 곡물자급률을 올릴 방안은 무엇인지 이제라도 논의해야 한다. 이 땅의 농부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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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우는 농민이자 녹색당 정책위원이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가 발행하는 <평등으로>에 실린 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