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펼쳐진 정치 무대는 마치 암전 속에서 스릴러 연극이 전개되는 듯 요동친다. 21세기에 전례가 없었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의 형성, 대통령의 구속 취소와 석방, 그리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둘러싼 테러 예고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한층 더 극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무대 뒤편에는 자본이라는 심연이 깊게 잠들어 있다. 겉보기에는 정치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무대 위 조명과 소품을 배치하는 ‘연출자’ 역할을 자본이 수행한다.
『자본』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세를 읽는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극적인 장면의 원인과 전망을 살피면서, 그 뒤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논리와 움직임을 파헤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마르크스의 『자본』은 정세 자체를 곧바로 해석해 주는 설명서라기보다는, 은밀한 자본의 손길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 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왜 이런 충돌이 반복되고, 누가 이득을 거두며, 누가 희생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자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눈을 들어 현실의 토대를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고전은 여전히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자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수십 년 전 대학생이었던 필자에게 마르크스의 『자본』은 전공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어려운 책이었다. 정석 수학 1장 ‘수와 식’을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것처럼, 『자본』 역시 1장을 넘기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우리가 학생이라는 소부르주아 계급이라 『자본』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노동자들은 현실에서 착취당하기 때문에 책을 펼치면 곧장 이해한다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 선배들조차 『자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마르크스의 『자본』은 고도의 추상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책인 만큼, 혼자 독해하기에 쉽지 않고, 제대로 된 길잡이가 없으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오랫동안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견지해 온 김성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해 오면서 『마르크스의 『자본』 길라잡이(개정증보판)』를 펴냈다. 이 책은 『자본』 제1권뿐만 아니라 제2권, 제3권에 이르는 핵심 내용을 개괄하고, 이를 오늘날의 현실 자본주의와 연계시켜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해설서들은 번역본 차이나 개괄 수준의 차이, 또는 현실 자본주의 분석에 대한 한계가 있었다. 특히 “현실 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한데 엮어 일관되게 설명하는 자료가 부족했던 점에서, 『길라잡이』는 “왜 여전히 『자본』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오늘날 자본주의는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물음 사이를 연결해 주는 훌륭한 징검다리가 된다. 나아가 “지금의 정세는 왜 이런 모습을 띠는가?”라는 탄식을 던지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나침반의) 자침 역할을 할 것이다.
『자본』의 추상과 변증법적 사유
김성구는 『자본』을 단순히 ‘19세기 고전’으로 바라보기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체계 안에서 그 저작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먼저 성찰한다. 『자본』은 자본주의 일반의 구조와 발전법칙을 밝히는, 말하자면 “자본의 생산과정, 유통과정, 그리고 총과정”을 중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자본』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저작이 아니라 그 체계의 상향 과정의 한 단계에서의 중간 결과물이다. 그 때문에 정치경제학 비판 체계와 그 방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자본』의 추상 수준과 전체 체계에서의 『자본』의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정치경제학 비판 체계는 상향 과정에서 국가, 외국무역, 그리고 세계시장의 전개가 구상되어 있다.
특히 『자본』 읽기에서 유의해야 하는 점은 『자본』에서 사용하는 ‘추상 수준’이다. 예를 들어, 제2권에서 다루는 유통과정은 실제 경쟁이나 경기변동이 없는 “순수한” 시장 교환을 일단 전제한다. 현실에서는 온갖 변수들이 영향을 미치지만, 과학적 분석을 위해 일부를 의도적으로 ‘추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제3권에서 나타나는 여러 형태들(상업자본, 대부자본, 지대)은 ‘자본주의 생산의 총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지만, 이것 또한 완결된 현실 경제 전체의 서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르크스가 국가 문제나 세계시장, 외국무역을 『자본』 최종 단계에서 좀 더 면밀히 다뤄야 했음에도,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본』의 추상 수준에 대한 고려는 『자본』만으로는 독점과 국가개입을 분석할 수 없으며, 『자본』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변화 양상까지 직접 해명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건대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경향은 생산가격의 이념적 평균으로 추상된 평균이윤율의 변동이며,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그것이 현실의 자본운동에서 보여주는 주기적 공황이나 시장가격 급변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을 학습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구조와 발전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현실의 자본 운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기준이 된다. 오늘날의 독점가격과 독점이윤은 가치론과 잉여가치론 없이는 올바로 분석할 수 없다.
여기에 아울러 필자는 『자본』을 읽을 때, 마르크스가 펼쳐 놓은 ‘변증법적 사유’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상품, 노동, 화폐, 자본이라는 범주가 어떻게 상호 전개되며,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모순을 키워 나가는가를 살피는 방식이기도 하다. 『길라잡이』 곳곳에는 이를 독해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예를 들어 ‘상품의 물신성(물신적 성격)’을 해설하는 대목에서는 그 물신성을 단순히 “상품이 만들어내는 착시효과” 정도로 보는 게 아니라, 노동의 사회적 관계가 은폐된 채 교환가치로 나타나는 ‘관계의 전도’를 파헤치는 과정으로서 다룬다. 또한, 변증법적 사유는 일반적 이윤율을 감소시키는 요인뿐 아니라 이를 상쇄시키는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경향적으로’ 저하한다는 것, 자본 운동이 경쟁만이 아니라 반(反)경향으로서 독점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생산가격, 시장가격만이 아니라 독점가격, 독점이윤의 존재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같이 변증법적 분석을 체계적으로 따라가면서, 역사유물론과 정치경제학 비판이 맞닿아 있는 순간, 제국주의론,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의 접점을 포착하게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닿기 위한 길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은, 『자본』 연구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선언적 메시지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성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그것이 마르크스가 예견한 일반적 자본주의 발전(독점과 제국주의적 팽창) 이후의 새로운 통합 시도를 포괄한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축적을 통해 독점화와 집중을 추동한다. 이때 국가 역시 점차 그 축적과 위기 해소 과정에 개입하게 되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문제는 『자본』 3권이나 마르크스의 초고들만으로는 이 국가 개입의 구체적 양상, 특히 금융, 재정, 사회정책, 군사·산업 복합체 등까지 아우르는 현대국가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는 국가론에서 실패했다”거나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 이론을 뛰어넘는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자본』에서 설명되는 가치법칙과 잉여가치·잉여생산물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만,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주주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등으로 재편돼 가는 현상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 김성구가 보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바로 이 지점에 기반하고, 『길라잡이』는 거기에 이르는 지름길의 역할을 수행한다.
저자 스스로 말했듯, “『자본』으로 독점을 논하는 것은 무리이며, 그렇다고 현대 자본주의가 『자본』 없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과거 수정주의 논쟁에서 레닌의 제국주의론, 신자유주의의 탄생에서 국가 역할론, 금융화와 주주자본주의가 기업 지배구조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계급 구도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 『길라잡이』 후반부(부록3)에서는 공황과 경기순환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세계 공황의 양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짚어 준다. 바로 이런 현실 분석까지 넘나드는 점이 『길라잡이』의 중요한 가치다.
한국 사회가 김성구에게 진 빚
김성구는 일관되게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옹호해 왔고 이론 영역뿐 아니라 현실 쟁점과 현안에도 깊숙이 개입해 왔다. 한국 사회가 그에게 “빚을 졌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그가 시장이 만능인 양 선전되는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폐해, 자본의 위기와 공황, 국가개입의 성격을 꿰뚫어 보고 “과연 누가 이 구조를 이끌어 가고, 누가 희생되는가”를 집요하게 물어 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금융화와 주주자본주의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주주 이익 극대화를 부추겼고, 국가 또한 자본 친화적 방향으로 정책을 재편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받은 타격은 심대했다. 김성구는 이러한 흐름을 애초부터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재구조화”라고 간주했고, 마르크스 경제학적 논거로 이를 설명해 냈다. 주주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금융 투기를 정상화하고, 자본의 이윤율을 방어하기 위해 생산·노동 부문에서 강도 높은 ‘비용 절감’을 촉진하는 제도와 시도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혔다.
특히 공황이 터졌을 때 노동자의 적극적 개입과 사회화 방안, 재벌 국유화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한국 좌파 경제학계 내에서도 뚜렷한 시도를 보여준다. 즉, 국가 또는 국가개입이 단순히 자본을 지원하는 대출 창구나 규제 완화 주체가 아니라, 사회화를 이루기 위한 공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독점과 자본 집적을 뒷받침해 온 역사적 기능과, 이것을 ‘전복’해 노동자 주도의 사회화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은 김성구가 한국 사회에 던진 문제의식 중에서도 핵심에 속한다. 『길라잡이』는 이런 문제의식을 경제학적 기초부터 차근차근 살필 수 있도록 돕는 입문서 구실도 수행한다.
『자본』을 넘어선 길라잡이
『길라잡이』는 결코 가벼운 길잡이가 아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 말해 주듯, 한 권으로 자본론 전체(1·2·3권)를 훑으며, 그 사이사이에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신자유주의 비판, 현대 공황론까지 촘촘히 짚는다.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방대함에 대한 저자의 존중이자, 오늘날 자본주의 현실의 첨예함에 대한 시의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학계·시민사회·노동운동 현장 등에서 『자본』을 텍스트 삼아 공부하고, 또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에게 큰 동력이 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계속 맞닥뜨릴 것이다. “왜 지금도 『자본』을 읽어야 하지?”,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거나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자본의 위기를 관리하며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어떤 경로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단 하나의 정답을 주진 않으나, 『자본』을 통해 개념의 원류와 논리 전개 방식을 익히고, 나아가 현실에서 그것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왜곡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제안한다. 그랬을 때 독자 스스로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공공성·사회화·노동계급 주도성 등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해 왔던 근본적 문제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자본』 길라잡이』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시각에 근거한 독해 방식과 동시에 “자본 이후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려는 문제의식을 함께 담아낸 역작이다. 제목에 걸맞게 ‘자본 이후의 길라잡이’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하며, 한국 사회에서 논의가 소홀해지기 쉬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제대로 다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장기불황과 공황,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같은 자본주의의 난제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항할 비판적 전망도 함께 얻게 된다. 요컨대 『길라잡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으로 다시 호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나아갈 방향을 일깨우는 소중한 나침반이 된다. 자본을 넘어선 『길라잡이』인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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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은 민중언론 참세상의 발행인, 편집인이며,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