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16명, 길 위에서 숨졌다”… 배달노동자들, 안전대책 요구하며 대통령실 향해

“무려 16명의 배달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왜 사고가 났는지, 어떤 슬픔과 비참함을 가졌지, 이 세상은 관심이 없습니다. … 노동부도, 대통령실도 모릅니다. 이 폭염에 하루 14시간을 도로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의 비참하고 처참한 현실을 직접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 구교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전국에서 모인 약 100여명의 배달노동자들이 12일 저녁 용산 대통령실 앞에 모였다. 도로 위에서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추모하고, “더는 배달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도록” 정부에 책임있는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5일, 닷새 사이에만 두 명의 배달노동자가 잇달아 목숨을 잃었다. 7월 31일 서울 서초구 반포역 인근에서는 배달의민족 소속 노동자 A씨가 운전 중 버스와 충돌해 숨졌고, 지난 5일에는 경기도 군포시에서 쿠팡이츠 소속 40대 노동자 김 모 씨도 배달 업무 도중 시내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제 현장. 참세상

“2주에 1명, 살기 위해 나선 도로에서 목숨 잃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이하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올해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수가 16명에 이른다. 라이더유니온은 “2주에 1명이 살기 위해 도로 위를 달리다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배민은 올해까지 무려 4년 연속 산재 건 수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2위를 쿠팡이츠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짚었다.

이들은 거듭되는 배달노동자의 산재사고의 원인은 “배달플랫폼사의 착취적 행태”로 “속도경쟁, 과로, 안전망 부재 등 구조적 요인”이 맞물려 있다며, “배달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2일 오후 2시경, 김 모 씨가 사고를 당한 군포시 고산로에서 추모제를 갖고 오토바이 행진을 시작한 라이더유니온 소속 배달노동자들은, A씨가 세상을 떠난 서울 서초구 반포역을 거쳐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서울지역 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4시 50분경, 민주노총을 방문한 김영훈 장관을 건물 입구에서 기다렸다 만나 서한문을 전달한 후,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합류했다. 오후 5시 30분경,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함께 모인 노동자들은 다시 추모제를 진행하고, 대통령실에도 서한문을 전달했다.

경기도 군포시, 배달노동자 김모 씨의 사망사고 현장에서 행진을 시작한 동료들. 라이더유니온 제공

“산재 1・2위, 배민과 쿠팡 책임묻고 구조 바꿔야”

서한문에 담긴 배달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배달플랫폼 업종을 ‘산재 감축 최우선 업종’으로 지정하고, 잇따른 사망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은 “현재 배달노동자들은 ‘산재보상’은 받고 있지만, ‘산재예방’ 대책과 ‘재발방지’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면서 “1명 이상의 사망사고가 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있으나, 올해만 적어도 16번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셈인 쿠팡과 배민 등 플랫폼사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배달플랫폼사의 기본 운임 인상과 과도한 프로모션 자제”, “안전운임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노동자들은 기본운임이 낮아 프로모션을 채워야만 생계가 가능하다보니 과속과 과로에 내몰리는 것”이라며 “적정수준의 기본운임과 할증기준을 법으로 보장하고, 과도한 프로모션은 자제토록하는 안전운임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요구사항은 “배달노동자 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라이더자격제와 대행사 등록제 도입”이다. 배달노동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유상보험과 안전교육, 이륜차면허를 갖추도록 하고, 플랫폼사들에게는 소속 배달노동자에 대한 자격보유여부 관리와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불법부당행위 금지 등의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여타 운수업들은 모두 자격제와 등록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가장 사고와 부당행위가 많은 배달플랫폼에서 자격제와 등록제가 없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관련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분향소 현장. 참세상

‘산재공화국’ 벗어나겠다는 이재명 정부, 배달노동자 호소에 화답할까

이날 행진과 추모제를 마친 배달노동자들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 ‘도로에서 세상을 떠난 배달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정부의) 배달노동자 안전종합대책이 수립될 때까지 24시간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

앞서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을 만난 배달 노동자들은 김 장관에게 서한문을 전달하면서 분향소 설치 계획을 밝히고 조문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노총과의 간담회 전 열린 국무회의가 지연됨에 따라, 애초 약속된 시간보다 민주노총에 약 1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던 김 장관은, 건물 앞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서한문을 받고는 “오늘도 국무회의 때 산재 문제로 대통령께서 한 시간 넘게 토론하다 보니까 (국무회의가 길어져) 조금 늦게 왔다”면서 “(서한문을)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비용을 아끼려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자 사회적 타살"로, “살기 위해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산업현장을 점검해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에서 반드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재해를 당한 ‘소년공’ 이었던 이재명 대통령과 첫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현장 노동자들의 절실한 호소에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을 찾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을 기다렸다 만난 배달노동자들.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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