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씨가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두 달여 만에, 정부가 유족과 동료들에게 약속했던 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민·관 협의체의 공식 출범이 이루어졌다.
정부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3일 오후 2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서울광역본부에서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이하 ‘협의체’)’의 출범식을 진행하고 협의체의 공식적인 첫걸음을 디뎠다.
'고 김충현 협의체' 출범식 현장. 대책위 제공
이번 협의체는 국무조정실 산하 민・관 공동기구로 국무총리 훈령을 제정해 설치・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법제심사 및 부패영향평가와 국무조정실의 규제대상 심사 절차를 마치고,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 중인 '훈령안'에 따르면 협의체는 “발전산업 전반의 안전 수준 점검 개선과 석탄 화력발전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강화를 위해·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되며, “위원장 1명, 간사위원 2명을 포함하여 총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고, 고용노동부에 협의체 지원단을 두도록 한다.
'김충현 협의체', 누가 참여하고 언제 무엇을 논의하나?
대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협의체는 이날 출범식을 시작으로 향후 2주 1회 전체회의와 주 1회 분과별 회의를 진행해, 올해 12월 말까지 주요 의제들에 관한 결과를 도출하고, 실천과제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차기 회의는 출범식 한 주 뒤인 20일로 예정되어 있다. 공식 출범 후 첫 전체회의인 이날에는 협의체의 네 가지의 핵심의제인 “△고 김충현 사망사고 수사・감독 등을 통해 안전 관련 제도개선 등 후속 조치 마련 △발전산업 안전강화방안(김용균 특조위 권고 사항 이행을 위해 2019년 수립된 정책 방안) 이행점검 및 미이행 원인 파악과 대안 마련 △한전KPS의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석탄 화력 발전소 폐쇄에 따른 석탄발전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강화를 위한 종합 방안”에 대한 위원들의 이해를 높이는 브리핑을 진행하고, 국무조정실에서 마련한 훈령안에 대한 세부 협의와 함께 의제별 분과 구성 등 협의체 운영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협의체 위원들이 함께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을 방문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체 위원 구성안. 대책위 제공
13일 출범식에서 공개된 협의체 구성안은 살펴보면, 위원장은 전 대법관 출신의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맡았다. 김 위원장과 함께 정부 관계부처 인사 4명, 현장 노동자 4명, 전문가 6명으로 15명의 협의체 위원을 구성했고, 정부와 대책위가 각각 6명을 추천해 12명의 자문위원단도 꾸렸다.
"더 이상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하지 않도록"
이날 출범식에서 김선수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는데, 이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며 ‘2016년 구의역 사망재해 진상조사단’과 ‘2019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위험의 외주화 중단’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계속되온 현실을 환기했다.
그러면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되는 협의체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산자원부 등 정부 경제부처가 특히 “노동 문제는 단순한 비용의 문제나 생산요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철학이나 국정운영의 방향으로 ‘잘사니즘’과 코스피 5천 시대를 말했지만, 노동자가 아침에 출근한 일터에서 저녁에 퇴근하지 못하고 죽어 나간다, 잘 살고 어쩌고 논할 여지가 어디 있겠냐”면서 “안전한 일터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 또는 국정운영을 위한 기초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이번 협의체를 통해 “더 이상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발전노동자들이 산업정책의 전환 과정에서도 고용불안의 걱정 없이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협의체가 되기를"
협의체 위원 중 한 명으로, 고 김충현 노동자와 함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해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이번 협의체가 “우여곡절 끝에, 현장 노동자들의 피 맺힌 절규와 유족들의 피 맺힌 눈물 끝에 만들어졌다”면서 “그 와중에도 원청의 탄압을 견디며 꿋꿋이 투쟁해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환기했다.
김 지회장은 “전국의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은 오랜세월 동안 원청이 시키는 일이라면 더럽고 힘든 일, 위험한 일 가리지 않고, 발전소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김충현 동료, 우리 형, 그다음은 또 누가 될까? 내가 될까? 라는 생각에, 더는 참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현장의 모든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은 이제 기계에 끼어 죽어가던 동료, 그 기계 소음과 거기에 묻은 피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서 “이 협의체가 그저 형식적인 협의체가 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하청 발전소부터 잘 개선해 나가고 사람 목숨을 살리는 협의체가 되길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 유족과 함께 출범식에 자리한 김미숙 대표(맨 오른쪽). 대책위 제공
"제발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이날 출범식에는 고 김충현 노동자에 앞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었던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미숙 씨도 자리했다.
김미숙 대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저도 삶을 살고 싶지 않았으나, 용균이가 잘못했다는 회사의 말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용균이의 사진을 보고,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발전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환기했다. 김 대표는 “이후 특조위가 구성되고 정부가 권고안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으나, 올해 또다시 김충현 노동자가 돌아가셨다”면서 “제발 이 발전소에서만큼은 공공기관에서만큼은, 이런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협의체를 잘 구성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죽음 헛되지 않도록, 실질적 변화 이끌어내야"
대책위는 이번 협의체가 “단순한 사고 수습 기구가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 사망을 끝내고 발전노동자의 고용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민・관 공동기구”로 “실효성 있는 논의와 집행을 담보해, 사망사고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김용균 특조위 권고사항 이행점검, 발전소 폐쇄 시 총고용 보장 등 의제별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그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김충현 협의체가 ‘보여주기’에 그치는 기구가 아니라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협의체가 되어야 한다”며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이 더 이상 헛되지 않도록 협의체를 통해 실질적 변화와 제도 개선을 끌어낼 것”이라 결의를 밝혔다.
'김충현 협의체' 출범식 현장. 대책위 제공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 이후 고인의 유족과 동료 발전 노동자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6월 12일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 죽음의 외주화 문제해결 등을 위해 대정부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6월 15일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당시 후보자 신분으로 고인의 빈소를 찾아 대책위와 정부 간 협의체 구성을 약속했고, 18일에 협의체 구성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후 두 달여간 대책위와 정부는 협의체 구성을 위한 다섯 번의 실무협의를 비롯해 여러 논의를 거듭한 끝에 협의체 출범에 이른 것이다.
고 김충현 노동자는 지난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에서 원청이 지시한 공작물 가공 작업을 홀로 수행하다,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위탁받은 정비 업무를 재하청받은 소규모 하도급업체 한국파워오엔앰 소속의 하청 노동자로, 동료들은 그를 오랜 경력을 가진 "꼼꼼하고 성실한 기술자"로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