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18차 세계정치경제학회(WAPE) 총회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WAPE는 중국이 운영하는 학술 경제 조직으로,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을 연결한다. “편향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WAPE 포럼과 저널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발전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을 제공한다. 전 세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WAPE에 가입하고 WAPE 포럼에 참석하는 것을 환영한다.”(WAPE 사명 선언문)
예상대로 여러 주요 발표에는 중국뿐 아니라 ‘서구’와 ‘글로벌 사우스’ 출신의 경제학자들이 포함되었다. 나 역시 참석 초대를 받았지만 직접 가지는 못해 여러 연설의 구체적인 주제는 보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사전 녹화한 영상을 통해 발표를 진행했다(내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논문 세션에서는 지정학적 경제, 거시경제 모델링, 생태, 인공지능, 제국주의와 다극화, 그리고 물론 중국을 주제로 다루었다. 나는 일부 발표 자료를 저자들로부터 입수했고, 이에 대해 제한적으로나마 코멘트를 할 수 있다.
먼저 지정학을 보자. 이 주제의 첫 세션은 유엔 창립 80주년을 다루었다. 불행히도 나는 그 세션 논문들을 입수하지 못해 구체적으로 논평할 수 없다. 하지만 유엔의 역사와 실효성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견해를 밝힐 수 있다.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1945년에 다른 기관들과 함께 설립되었다. IMF는 미국이 주로 자금을 댄 기금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재정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하도록 설계되었고, 세계은행은 빈곤국이 성장하고 빈곤을 종식하도록 지원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엔은 평화를 보장하고, 필요한 경우 갈등을 해결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중립적’ 외교와 평화유지군을 제공하는 국제 기구로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겉으로는 이들 기관이 공정하고 균형 잡히며 건설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IMF는 엄격한 조건을 붙여 긴급 자금을 제공했지만,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따르는 정부가 있는 국가들(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은 더 적은 조건으로 추가 지원을 받지만, 다른 나라들(베네수엘라)은 자금이 차단되거나 IMF 부채로 고통받았다. 뉴욕에 본부를 둔 유엔은 평등한 기구가 아니었다. 안보리에서는 전후 주요 강대국들만이 의결권과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유엔의 평화 유지 역할을 마비시켰다. 특히 미국의 정치적 지배력이 일부 약화하면서, 유엔은 주요 강대국들로부터 점점 더 무시당하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나 2000년대 이라크 침공(비록 실패했지만)에서 미국은 유엔의 지지를 얻으려 했으나, 이제는 점점 더 ‘의지 있는 자들의 연합’을 추구하며 유엔을 우회하고 NATO를 확대·활용하고 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 가자,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분쟁 해결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사실상 무의미하다.
유엔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은 WAPE나 다른 좌파 회의에서 벌어지는 논의에서도 확인된다. 지금의 논의는 미국 패권과 제국주의에 대한 대안, 그리고 BRICS의 형성으로 표현되는 ‘다극화’가 지난 80년간의 미국 지배를 꺾을 새로운 발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 주제에 대한 논문들이 여럿 있었는데, 내가 논평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델리 대학교의 찬드라세카르 사라찬드(Chandrasekhar Saratchand)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컨센서스로부터 MAGA로의 전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가 결국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으며, 그 목적은 ‘중심부 자본’이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잉여가치를 더 많이 착취하는 데 있었다고 주장한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WC)’는 이런 빈곤국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지지대였다. WC는 오직 미국과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만이 “자유 시장”과 무제한적 자본 흐름을 통해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보호무역이나 국유화를 통해 이 합의에 저항하는 것은 세계에 해롭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점점 미국 패권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약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과의 ‘관여’에서 ‘봉쇄’로 전환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는 더 이상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하지 않고, 대신 ‘민주주의 진영’ 대 ‘독재 진영’을 지지하는 형태로 수정되었다. 사라찬드 교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MAGA 구호와는 달리, 미국이 세계적 리더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달러는 미래에 다극적 블록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내 논문(영상 발표)은 지난 80년간 전후 세계 질서 속에서 빈곤국들이 부유한 국가들을 ‘추격(catch-up)’하지 못한 실패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부유국과 빈곤국 간의 격차, 즉 제국주의 핵심부와 지배받는 주변부 간의 격차를 측정하려 했다. 이를 위해 1) 각국의 1인당 평균 소득(국내 소득 불평등 고려), 2) 노동생산성 수준, 3) 유엔이 정의한 ‘인간 개발 지수’를 활용했다. 그런 다음 현재 평균 성장률을 외삽해, 주변부가 언제쯤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결론은, 글로벌 사우스(60억 명)는 글로벌 노스(20억 명)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부가(가치)가 지속적으로 남에서 북으로 이전되고 있으며, 글로벌 사우스의 수익성은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예외일 수 있다. 중국의 투자 성장은 다른 글로벌 사우스 경제와 달리 수익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불균등·결합 발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모델이 왜 주변부가 추격하지 못하며, 글로벌 축적과 무역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즉, 자본주의/제국주의가 공동 소유와 민주적으로 계획된 세계 경제로 대체되지 않는 한) 결코 추격할 수 없는지를 가장 잘 설명한다.
컨퍼런스의 또 다른 주제는 거시경제 모델링, 즉 자본주의 하에서 축적과 성장의 순환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사회과학대학의 코스타스 파사스(Costas Passas)는 「현대 그리스의 위기와 회복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타나시스 마니아티스(Thanasis Maniatis)와 공동 집필한 논문으로, 두 사람은 2018년 내가 편집한 『위기의 세계』(World in Crisis)에도 글을 실었다. 파사스와 마니아티스는 최근 주류 담론의 낙관적 주장과 달리, 그리스는 2010년대의 부채와 긴축의 끔찍한 시기에서 실제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보여준다. 자본주의 모델에서 중심적인 변수는 수익성이다. 현재 그리스의 미약한 회복은 착취의 급격한 증가와 자본의 전례 없는 평가절하·파괴라는 두 가지 요인 덕분인데, 이 둘은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자본은 여전히 수익성 수준이 매우 낮아, 부족한 투자가 기술 변화를 억제하고 있다. 결국 약한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오래된 문제들이, 그리스의 경상수지 문제 재발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최근 발간한 온라인 소책자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논문에서 게이오대학교–교토대학교의 오니시 히로시(Hiroshi Onishi)와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의 천리(Chen Li)는 자본주의 부문에서의 노동 공급에 관한 외부 의존 모델(External Dependency Model)을 제시했다. 그들은 두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축적 모델을 구성했다. (1) 임금 수준이 노동 공급을 결정한다는 것, (2) 노동력 부족은 역사적으로 비자본주의 부문에 의해 보충됐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이 노동 생산성과 수익성의 관계가 아니라 노동 공급 혹은 수요의 규모에 달려 있다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생각을 따른 것처럼 보인다. 오니시(Hiroshi Onishi)와 천리(Chen Li)는 외부, 즉 외국이나 농촌 같은 비자본주의 부문에서 더 많은 노동력이 공급될수록 자본가들이 자본주의 부문 내에서 노동을 더 강도 높게 착취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구 사회가 문화적 긴장 고조로 인해 더 이상 이민자를 수용할 수 없게 되고, 아시아의 농촌 노동력 예비군도 고갈됨에 따라 착취율이 떨어지고,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위대한 경제사학자 J. 아서 루이스(J. Arthur Lewis)의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분명히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민과 노동 공급 증가는 수익성 하락에 대응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이는 절대적 잉여가치율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자들은 자본주의가 축적하고 확장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즉 기계화를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상승을 무시한 듯하다. 이민이 끝난다고 해서 착취율이 곧바로 하락하고 따라서 수익성이 하락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불행히도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가 주변부로부터의 외부 수요가 줄어들면 붕괴할 것으로 생각한 점에서 잘못되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 노동 공급이 고갈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붕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이는 자본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 더 큰 어려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스 경제연구기획센터(KEPE)의 콘스탄티노스 로이조스(Konstantinos Loizos)와 아테네 판테온대학교의 스타브로스 마브루데아스(Stavros Mavroudeas)는 「마르크스주의 경쟁 이론의 대안: 새로운 포괄적 가설 모색」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자본 간 경쟁에 관한 어떤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계급투쟁을 핵심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근본주의자’(나 자신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를 언급하며, “자본주의 발전에서 혁신을 뒷받침하는 경쟁의 중요성을 지적한 점은 옳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규정적 특성은 경쟁이 아니라 계급투쟁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계급투쟁이 두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다. 자본 간의 투쟁, 그리고 자본과 노동 간의 투쟁이며, 둘 다 잉여가치율과 이윤율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히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잉여가치와 수익성의 크기를 결정하며, 자본 간의 경쟁은 그 잉여의 분배를 결정한다. 나에게 계급투쟁은 자본과 노동 간의 투쟁이지, 자본 간 경쟁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자본이 여럿이라고 해서 계급이 여럿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함의를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격하시켜 이윤율 균등화 경향을 정당화한다”는 결론은 기묘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게 학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라면, 어느 정도 진실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수익성 법칙을 ‘운명론적 법칙’으로 치부하며 계급투쟁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받은 WAPE 논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오잔 무틀루(Ozan Mutlu)와 레프테리스 술피디스(Lefteris Tsoulfidis)의 「자본 축적, 기술 변화, 유럽과 미국 경제의 이윤율」이었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수익성 법칙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2025년 주요 경제들에 대한 함의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저자들은 유럽과 미국 경제를 생산적 노동 부문과 비생산적 노동 부문으로 나누고 각각의 이윤율을 산출했다. 전체 경제의 일반 이윤율과, 생산 부문만의 순이윤율을 도출한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요인—자본의 유기적 구성 비율 상승과 잉여가치에서 비생산적 활동으로 흘러가는 몫의 증가—에 의해, 자본 수익성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투자가 감소하게 만들고, 결국 2008년처럼 “마르크스적 순간(Marx’s moment)” 또는 “절대적 과잉축적”의 전환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생산적 부문에서 잉여가치 비중이 증가하던 추세가 되돌려졌고, 이는 “2008년 이후 이윤율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반전이 “비생산 활동에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점점 더 적용되면서 고용이 급격히 줄어든 것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이는 금융, 부동산, 도소매 무역 같은 부문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저자들은 이러한 추세가 곧 굳어질 것으로 보이며, 새롭게 다가오는 제6의 장기 순환(long cycle)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즉, 자본주의가 제5의 장기 순환의 하강 국면에 있으며, 조만간 수익성 상승으로 새로운 제6 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참조: AI, 부풀어 오르는 거품)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이 있다. WAPE 참가자들은 미국 패권의 약화 가능성과, 주로 BRICS 그룹으로 대표되는 ‘다극 세계’의 부상을 열심히 논의하고 분석한다. 좌파의 많은 이들은 BRICS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세계 노동자들을 지지할 수 있는 대안적 반제국주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나는 이것이 위험한 환상이라고 본다.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모디의 인도, 아야톨라의 이란, 엘시시의 이집트, 수비안토의 인도네시아, 그리고 무함마드 빈 살만(MbS)의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주의적 노동자 운동을 이끌어 제국주의를 전복할 것이라고 정말로 기대할 수 있는가? 이들 정부는 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각국 엘리트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세계적 차원에서 ‘계급투쟁’은 제국주의 국가의 엘리트와 ‘저항 국가’ 엘리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배하는 엘리트 사이에 있다. 내게 제국주의는 부유한 나라들의 노동계급 운동뿐 아니라 BRICS 내부의 노동계급 운동에 의해서만 패배할 수 있다.
기술하지 못한 논문들의 저자들이나, 내가 다룬 논문들의 주장을 오해했을 수도 있는 점에 대해 사과한다.
[출처] WAPE 2025: geopolitics, economic models and multi-polarity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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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