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 이 글을 읽는 시점까지, 이스라엘의 중장비 수백 대가 가자지구에서 수백 채, 아니 어쩌면 수천 채의 가옥을 파괴했다. 이 작업을 위해 이스라엘 국방부는 수백만 셰켈을 지출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주택과 건물이 연속적으로 철거된 적은 없었다. 이번 작전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수행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공학 프로젝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론인 하가이 아밋(Hagai Amit)이 8월 19일자 <하아레츠>(Haaretz)에 실은 이 글귀들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성의 순간이 있다. 트리거가 되는 번쩍임이 있다. 아밋이 가자 침공을 ‘토목 공사’로 재구성한 표현이 바로 내게 그 역할을 했다.
가자지구에서 굴착기, 불도저, 그리고 거대한 D9 캐터필러 트랙터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작동한다 — 그리고 이 상황은 바뀔 기미가 없다. 가자시티를 점령하는 계획을 안보 내각이 승인하면서, 이스라엘군은 앞으로도 수천 채의 주택과 건물을 파괴할 수 있는 여러 달을 확보했다. 실제로 안보 내각의 몇몇 장관들은 왜 가자시티가 가자지구의 다른 도시들처럼 이미 폐허가 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이건 전례 없는 ‘공학 프로젝트’였다.
이스라엘군이 수행 중인 이 ‘전례 없는 공학 프로젝트’의 구체적이고 평범한 디테일들이 나를 깊이 빨아들였다.
소수의 지배적인 이스라엘 인프라 기업들이 국방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리오르 카라디(Lior Karadi)가 소유한 탈로르 카라디 그룹(Talor Karadi Group), 아시아 건설(Asia Construction), 올레닉 그룹(Olenik Group), 알론 엘갈리(Alon Elgali)가 소유한 팜 어스웍스 앤 디벨롭먼트(Farm Earthworks and Development, 메셰크 아파르 베타슈티오트), 그리고 에란 와이.디.(Eran Y.D., 에란과 데이비드 이프라흐 공동 소유)가 포함된다.
이들 기업 각각은 수십 대의 중장비를 국방부에 임대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내에서 중장비 한 대를 하루 사용하는 비용은 약 3,500셰켈(약 미화 1,035달러)인데, 국방부는 현재 가자지구에서 같은 장비를 하루 사용하는 데 5,000셰켈(약 미화 1,479달러)을 지불한다. 이 중 약 1,200셰켈(약 355달러)은 장비 조작자의 몫으로 돌아가는데, 같은 일을 이스라엘에서 할 경우 이 금액의 절반에서 3분의 2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대기업 외에도 소규모 하청업체들이 국방부와 직접 계약을 맺고 중장비 2~3대를 임대해 작업하고 있으며, 수백 명의 이스라엘군 예비역들이 군 소속 장비를 직접 운전한다. “군에서 ‘기계공학 장비’라고 부르는 중장비를 운전하는 예비역들은 때때로 철거 작업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같은 회사에서 특별 팀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탈로르 카라디 그룹의 소유주 리오르 카라디는 말했다. 각 팀은 최소 5대의 중장비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8대에서 12대의 장비를 가지고 들어간다. 이런 한 팀이 하루에 거의 100개의 건물을 철거한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작업한다. 우리는 가자지구 전용 운영 부서를 두고 있으며, 현장감독과 숙련공까지 있다. 모든 팀은 이스라엘군의 경호를 받으며 진입한다.”
“수요가 워낙 많아서 현재 수입업체들 재고에 중장비가 전혀 없다. 볼보 같은 회사에 중장비를 주문하면 인도까지 6~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지난주 우리는 대량 장비 수입을 타진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고 카라디는 덧붙였다. (참고: 바이든 행정부는 한때 D9 대량 공급을 이스라엘로 보내는 것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승인했다.)
장비 한 대당 월 15만 셰켈(약 4만4,341달러)을 지불하는 것 외에도, 국방부는 경유 비용까지 부담한다. 예컨대 중장비 500대를 운용하는 데만 한 달 약 1억 셰켈(약 2,956만 달러)이 들어간다. 하지만 중장비 수요는 가자지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장비 작업 외에도 국방부는 다른 분야에서도 인프라 업계의 수요를 끌어올렸다. “우리 콘크리트 공장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카라디는 말했다. “셸터와 안전 방을 짓고 판매하는 것 외에도, 트럭과 시멘트 믹서를 동원해 터널을 봉쇄하고 있다. 군이 필요로 하는 콘크리트 양은 미친 수준이다. 우리는 수천 세제곱미터 단위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의 영향은 석재 채석 산업에서도 느껴진다. 원래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군은 가자지구에 도로 포장용 기층재 약 25만 톤을 들여왔다”고 카라디는 밝혔다. “우리는 국방부와 함께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다. 가자지구 철거 현장에서 나온 폐자재도, 이스라엘 내 철거 현장의 폐자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만약 승인을 받는다면 수천만 셰켈, 아니 수억 셰켈까지 절감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에서는 재활용 소재가 대규모로 사용되는데, 가자지구에서는 승인을 안 해준다. 언젠가 우리가 가자지구를 반환해야 하는 날이 오면 — 나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 그때 그들이 이 기층재를 이용해 재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인프라·건설 기업들의 작업에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수행하는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바로 ‘잔해 제거’다. 이는 향후 철거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요소다. 유엔의 공식 추산에 따르면 5천만 톤 이상의 잔해가 발생했으며, 이를 치우는 데만 약 1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추산은 6천만에서 7천만 톤 사이”라고 카라디는 밝혔다. “전문가들의 추산과 내 계산으로는 이 모든 잔해를 처리하는 데 8년에서 12년은 걸릴 것이다. 철근 양도 엄청나고, 가자지구의 모래 지형을 통해 운반하는 일도 복잡하다.” 그는 “언젠가 이 폐기물을 처리하려 한다면, 이 자재의 90%는 결국 가자지구에서 필요한 인프라 기반층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자지구에 얼마나 많은 고철이 있는지 아나? 누군가 언젠가 이걸 수거해 팔기만 한다면 —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을 양이다.”
<하아레츠>의 이 보도는 단독이 아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의 아르와 마드하위(Arwa Mahdawi)는 가자지구 철거를 위한 불도저 운전자를 모집하는 페이스북 광고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아밋의 보도를 인용하며 그는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추가 불도저를 얼마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 지난 두 달 동안 가자지구 철거를 돕기 위해 불도저 운전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일부 광고는 하루 일당을 3,000셰켈(약 882달러)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5월 말 이후 메타(Meta)에서 이런 광고를 12개 정도 찾았다.”
물론 불도저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24년 <더 퓨남벌리스트>(The Funambulist) 56호는 ‘불도저 정치학(bulldozer politics)’을 주제로 발간됐다. 편집자 레오폴드 램버트(Léopold Lambert)가 다룬 바와 같이, 이스라엘군이 불도저를 전쟁뿐 아니라 정착촌 건설 지원에도 사용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이 관행에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2003년 3월, 이스라엘의 철거 작업을 항의하던 미국인 활동가 레이철 코리(Rachel Corrie)가 중장비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었다. 대형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와 현대(Hyundai) 역시 이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의 별명이 “불도저 아릭(Arik the Bulldozer)”이었던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자에서 불도저를 사용하는 규모와 강도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하아레츠> 보도의 핵심 질문은 동기에 관한 것이다. 아밋은 이렇게 강조한다.
“이는 전례 없는 토목 공학 프로젝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업에 대해 군이 공식 정책을 세운 적도 없고, 정치 지도부가 가자 내 모든 주택을 철거하기로 공식 결정한 적도 없다. 실제로 이 정책은 현장의 지휘관들, 즉 중대와 대대 지휘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들은 남아 있는 건물이 자신들의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질문을 받은 몇몇 장교들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재미로 건물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실제로 가자 내부에서는 여전히 서 있는 모든 건물이 잠재적 위협이다. 모든 주택은 부비트랩을 설치할 수 있는 구조물이고, 모든 건물은 저격수나 터널 입구를 숨길 수 있다. 하마스 대원이 어느 건물에서든 이스라엘 병사들을 향해 발포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작전하는 구역을 완전히 평탄화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IDF)은 보도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포함한 테러 조직들과 복잡하고 강도 높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하마스는 민간 건물을 이용하고, 이를 테러 목적으로 잔혹하고 교활하게 악용하고 있다. … 이스라엘군은 전쟁의 목표에 따라 하마스의 인프라를 찾아내고 해체하기 위해 이러한 복잡한 지역을 기동해야 하며, 해당 지역에서 병사들에게 위협이 되는 건물을 군사적 필요에 따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군 명령에 따르면, 재산의 파괴는 작전상 필요한 근거가 있을 때에만 수행되며, 민간 자산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정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가능한 한 민간 건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전투를 이러한 지역으로 끌어들여, 우리 군이 그곳에서 작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전투 중 적용되는 작전 절차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군사 기밀상 밝히지 않겠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의 주장하는 논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전면 철거에 대한 포괄적 명령도 없다! 하마스가 교활하게 우리를 전투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병사들을 비열한 테러 매복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아레츠 보도의 상세한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축소·통제하려는 노력은 현장에서 작업에 참여한 이스라엘인들의 증언에 의해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가자지구는 파괴와 건설, 그리고 재건이라는 세 가지 동기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군사적 작전 논리, 향후 정착을 위한 전략, 그리고 심리적 만족이 겹치는 지점에서 가자 파괴라는 행동이 발생
<하아레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장관들 중 일부는 “왜 가자시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한 건설 관리자 역시 “이땅을 결코 돌려주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무심히 말하며, 미래의 인프라 계획에 대해 추측했다.
이스라엘군의 분노에 찬 부정에도 뭔가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누구도 재미로 건물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겠지!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짓을 상상해 본 적 없겠지! 인터넷이 이스라엘 병사들이 바로 그 ‘환상’을 실현하는 영상으로 가득하진 않겠지… 그렇지 않은가!?
사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2023년 10월 이후의 증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한 내적 성찰을 통해서도 ‘파괴·말소·재건’이라는 세 가지 동기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된다.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은 전혀 ‘낯선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단순히 미국과 유럽이 무기와 도덕적 지원을 제공해서만이 아니다. 불도저를 포함한 이스라엘식 전쟁 방식은 사실상 “우리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우리(WE)”는 서구, 특히 앵글로스피어(Anglosphere)를 가리킨다.
나는 원래 불도저에 관한 글을 2024년 시작한 ‘타나토세(Thanatocene, 죽음(Thanatos)와 인류세(Anthropocene)를 결합한 용어)’ 미니 시리즈의 일부로 구상했었다. 당시 D-데이 기념일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도시살해(Urbicide)’를 생각하고 있었다. 2024년 당시에도 가자 상황은 내 머릿속에 있었지만, 하아레츠 보도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연결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불도저가 원래 있던 미국을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였다.
1944년 봄, 영국 버크셔 주 태트첨(Thatcham)에 위치한 미 육군 공병부대 창고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D-데이(D-Day) 침공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 중인 대규모 불도저와 트랙터의 행렬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미 육군 통신대(US Army Signal Corps) 111-SC-189366.
이스라엘 군에 장비를 공급하는 미국 기업 캐터필러(Caterpillar)는 1925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가자에서 ‘업암어드(up-armored)’ 버전으로 대규모 철거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D9 캐터필러 불도저의 초기 모델은 1954년에 출시되었다. 이것은 데이비드 에드거턴(David Edgerton)이 말한 “오래된 것의 충격(the shock of the old)”의 또 다른 사례다.
흥미로운 점은, “bulldozer”와 “bulldoze”라는 단어가 19세기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계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불도징(bulldozing)은 원래 장애물을 강제로 밀어내고 지배하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가하는 행위를 뜻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초기 사용 맥락은 정치적이었다. 랄프 해링턴(Ralph Harrington)은 2018년 발표한 주목할 만한 논문 ‘불도저가 있는 풍경: 전후 영국의 기계, 근대성, 환경’(Landscape with bulldozer: machines, modernity and environment in post-war Britain)에서 이를 상세히 설명한다.
18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bulldozer” 용례는 남북전쟁 이후 남부에서 벌어진 조직적 인종차별 폭력을 가리켰다. 1879년의 한 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불도징은 흑인의 참정권을 박탈하거나 백인의 지시에 따라 투표하도록 강요하는 폭력적 방법을 일컫는 용어다.”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를 포함한 남부 여러 지역에서 이런 행위가 자행되었으며, 당시 “불도저들(bulldozers)”로 알려진 백인 우월주의 폭력 단체들의 악명은 19세기 후반 내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졌다. 1900년대 무렵부터 불도저라는 단어는 비로소 농업, 광업, 제철업 등에서 물리적 환경을 재편성·착취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작업을 지칭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기계로서의 불도저는 효율적이고 기계화된 고속 점령 및 지형 활용을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다. 1940년 이후 불도저가 대량으로 영국에 공급되었을 때, 그들의 핵심 임무는 유럽의 나치 제국을 상대로 대규모 폭격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활주로 건설이었다. 이를 위해 미군과 영국군은 광대한 토지를 점령하고 활용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들판, 숲, 주택들이 활주로 건설을 위해 철거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도서 점령 작전에서도 미 해군 건설대의 공병팀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불도저를 몰며 활주로를 개척했다.
시비(Seabee, 미 해군 건설대) 대원이 섬 주민의 집을 철거하는 장면. 출처: 예일대학교 출판부
1943년 9월, <픽처 포스트>(Picture Post)는 이렇게 보도했다.
“우리의 공군 정책(즉, 전략 폭격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요소는 비행기가 아니라 땅을 다루는 기계, 즉 불도저다. 이 강력한 캐터필러 트랙터는 긴 강철 블레이드를 장착하고 있어 땅을 파고, 바위와 나무 그루터기를 뽑아내며, 심지어 벽과 작은 건물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불도저는 미국 무기고 전체의 핵심 기계다 … 사실,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비행장을 대량으로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당시 통찰력 있는 관찰자들이 주목한 점은, 엄청난 힘을 가진 민간 도구가 명백히 군사적 목적에 활용되는 뚜렷한 사례라는 사실이었다. 작가 D. W. 브로건(D.W. Brogan)은 이렇게 표현했다.
“불도저는 전쟁을 수행하는 민간적 방식이었다.” 브로건은 이렇게 분석했다. “불도저는 정치적으로 탱크보다 더 강력하다. 불도저는 미국 시민 사회가 직접 만들어낸 권력의 도구로, 군사적 목적을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구세계(유럽)에 신세계(미국)의 향취를 불어넣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반복되는 기계적 혁신이 전쟁을 단순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고, 미국 생산 체계가 관리 가능한 거대한 위기로 다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도저는 트랙터, 트럭, 선외기(보트 엔진), 전기톱, 무전기 등 다른 기계 및 장비와 함께 전 세계로 보급됐다. 이들은 함께 환경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이라고 부르는, 자연의 전면적 변형과 통합을 가능하게 한 기계적 무기고를 구성했다.
출처 : 하이퍼알러직(Hyperallergic)에서 인용한 애먼(Ammon)의 발언
불도저는 이 서사의 영웅이었다. 처음부터 불도저는 단순히 산업력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보다 원초적인 충동까지도 드러내는 존재였다. 불도저를 주제로 한 아동 문학이 넘쳐난다는 사실만 봐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불도저나 토목 장비에 대한 깊은 매혹은 소년으로 살아봤거나 소년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그 충동이 분노와 복수심과 결합될 때, 그것은 전적으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재미’라는 단어는 이 경험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욕망(정착 논리), 스스로를 방어하고 적을 지우려는 욕구(작전 논리), 그리고 힘을 유희적·복수적·회복적으로 사용하는 충동이 합쳐져 강력한 삼각 구도를 형성한다. 이들은 매우 보편적인 충동이다. 기계화된 정착 식민주의는 20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에서 브라질 내륙, 중국 동북부 베이다관(北大关)에 이르기까지 나타났다. 프란체스카 루셀로 애먼(Francesca Russello Ammon)이 ⟪불도저: 전후 풍경의 철거와 정리⟫(Bulldozer: Demolition and Clearance of the Postwar Landscape에서 보여주듯, 미국의 많은 도시도 대규모 철거와 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개척지로 변모했다. 이 ‘내부 개척지’는 언제나 선택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앨리슨 마이어(Allison Meier)는 애먼의 책을 서평하며 이렇게 썼다.
1950년부터 1980년 사이, 미국에서 약 750만 개의 주거 단위가 철거되었다. 또한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망의 확장으로 인해 420억 입방야드(약 321억㎥)에 달하는 흙이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강제로 이주당했는데, 특히 비백인 집단의 피해가 컸다. “도시 재개발로 강제 이주당한 주민의 60%가 비백인이었다”고 그녀는 썼다. 일부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예컨대 애틀랜타에서는 고속도로 및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로 쫓겨난 주민의 95%가 흑인이었는데, 흑인이 지역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만 차지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평화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전쟁이라는 더 넓은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스라엘의 가자 파괴 캠페인과의 연속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자유주의적 전쟁 방식”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 전쟁 방식에는 네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규범적, 역사적, 전술적, 정치적이다.
규범적 차원에서, 적은 나쁜 존재이며 미개하고, 침략적이며, 진보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그들은 지워져야 한다. “짐승들을 몰살시켜라”가 전투 구호다.
물론 특정한 낙인찍기의 방식은 다르지만, 이 구조 자체는 자유주의적 전쟁 개념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규범적 비난을 다른 세 가지 요소와 결합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전쟁 방식을 형성한다.
두 번째 핵심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전쟁에서는 전투의 힘이 극도로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부유하고 강하며, “그들”은 가난하고 약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특징이다. 갈등의 비대칭성은 결함이 아니라 설계된 기능이다.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가 이미 우리 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증거로 간주된다.
따라서 전장에서의 최종 결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비대칭성은 오히려 분노를 촉발한다. 승리가 거의 확실한데도 적이 계속 저항하는 것은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라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특정한 전술이 요구된다.
“미친 개에게 해야 할 합리적인 일은 그 개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거리에서 쏘는 것이다.” 우리는 결정적 결과를 위해 압도적이고 비대칭적인 무력을 행사한다. 하마스와 같은 적과 대등한 조건에서 싸우는 것은, 군사적으로는 직무유기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누구에 대한 의무인가? 여기서 네 번째, 정치적 요소가 작동한다.
이스라엘은 우리처럼 스스로를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자유주의란 국가가 인정한 완전한 시민들에게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다. 이 논리라면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전문 군대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시민병을 동원하는 체제에서는 그 시민 병사들이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자유주의적 전쟁 방식에서 병력은 소모품이 아니라 귀중한 자원이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너무 많다. 따라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비싸거나 압도적인 힘이든 투입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특히 적이 앞서 설명한 규범적 조건과 역사적 조건을 충족할 경우, 과잉 공격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전쟁에서는 민주주의적 요소가 개입한다. 병사들이 희생된다면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UCLA의 사회학자 마이클 만(Michael Mann)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어두운 면”이라고 불렀다.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전쟁 논리는 이스라엘만의 발명이 아니다. “우리”, 즉 서구 세계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전쟁 방식은 19세기 말 점점 더 비대칭적으로 전개된 식민 전쟁에서 비롯되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전쟁의 승패가 더 균형 잡혀 있었지만, 산업혁명이 전쟁을 기계화하면서 충돌의 양상은 극도로 비대칭적으로 변했다. 이 방식은 20세기에 걸쳐 성숙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 충돌, 1914년부터 1945년까지의 세계 대전, 한국전쟁, 말라야, 베트남, 포클랜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이르는 혹독한 정치-산업-군사적 학습 과정을 거치며 완성됐다.
나는 여러 글에서 주장해왔듯, 현재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주요 분쟁들이 수천만 명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우리”, 즉 서구와 기타 외부 세력은 원자재, 동맹, 무기 공급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든 전쟁에 관여해 있다. 각각의 전쟁은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더 넓은 지역적·세계적 맥락에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 캠페인은 권력의 비대칭성, 전투의 강도, 전장의 봉쇄성, 그리고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와의 직접적인 연결성에서 독특하다. 이런 점들이 우리를 1940년대로 되돌려보게 만든다.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나치 점령하 폴란드를 모델로 삼아 정의한 집단학살 개념으로 우리를 다시 이끈다. 이 연결을 회피하거나, 반유대주의 비난이나 이중잣대 논란을 이유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바로 세계적 비교를 수행할 때 이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특정한 역사적 결합을 지나치게 고립시키거나 자기완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집단학살이라는 개념을 갖는 이유는 대규모 현대 폭력의 더 넓은 스펙트럼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전 글에서 주장했듯, 20세기 중반에는 그러한 사례가 충분히 많았다.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특수성은 1948년에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결되지 못했고, 그 결과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역사적 맥락은 특이하다. 우리는 이를 시대착오적이라고, 혹은 뒤늦었다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거리 두기 시도는 결국 자기 모순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불도저들이 끔찍한 이유는, 그들이 윌리엄 포크너가 말했듯,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과거는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서구에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출처] Chartbook 405 Bulldozing Gaza: (Thanatocene mini-series #4)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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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