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타고 가던 중에 객실 내 TV의 헤드라인 뉴스로 “대통령실, KTV 저작물 전면 개방”이라는 자막이 떴다. 승객 중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은 듯했지만, 취임 한 달 만에 내놓은 대통령실의 발표는 파격이었다. 불과 1년 전, KTV는 대통령 풍자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에 공개한 가수 백자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었다.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영상을 왜 국민이 자유롭게 쓸 수 없었을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던 시대였기에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공공저작물을 국민의 권익에 부합하도록 환원하고,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공공 플랫폼으로서의 KTV 본래 기능을 회복하겠다”는 새 정부의 발표가 되려 낯설게 느껴졌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법에 이미 보장되어 있는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과 ‘공정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 글은 한국정책방송원(이하 KTV) 저작물 전면 개방의 의미를 살펴보고 공영방송을 비롯한 공공 콘텐츠 전반으로 ‘자유이용’과 ‘공정이용’ 확대가 필요함을 얘기해보려 한다.
KTV 저작물 전면 개방: 무엇이 바뀌었나?
그동안 KTV는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영상들을 특정 언론사에만 우선 제공하거나,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제한해왔고 심지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진행했다. 지난해 KTV는 대통령 풍자 영상에 대하여 가수 백자가 KTV 영상을 복제하면서 저작권자의 실명을 표시하지 않아 성명표시권을 침해했고, 영상을 가공하였으므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여 KTV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사자와 연대하여 고소 취하를 요구했던 사단법인 오픈넷은 저작권법이 권력자의 심리 경호를 위한 억지 주장에 남용된 본보기라고 비판하며, “그 권력자는 파면되고 KTV의 고소도 마땅히 취하되었지만,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법이 창작 행위를 틀어막는 데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수 백자에 대한 KTV의 고소 규탄 기자회견(2024.8.1, 마포경찰서 앞) 출처: 촛불행동
지난 7월 9일 대통령실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 KTV의 영상 저작물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결정으로 무엇이 바뀌게 되었을까.
우선, 정보 접근권의 실질적인 보장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소규모 언론사나 1인 미디어 창작자들은 정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었다. 이제 KTV의 모든 영상 콘텐츠를 언론사, 크리에이터, 일반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의 다양성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특정 언론이나 플랫폼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언론과 국민에게 동등한 활용 권한을 보장할 것”이라며 “KTV 콘텐츠는 국민의 자유로운 접근·창작·비평·재구성의 기반이자, 공공 콘텐츠 생태계의 확산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저작물 개념의 확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저작권법 제24조의2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정신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든 것은 국민의 것"이라는 당연한 원칙이 현실이 된 셈이다. 또한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라며 저작권법 제28조를 언급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저작권법
제24조의2(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하여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정부 발표에 따라, KTV는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을 보장하도록 저작권 정책 지침을 변경하였다. KTV에서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하고 있거나 자유이용허락표시에 대한 권리자의 동의를 받은 경우는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표시기준(공공누리, KOGL)’을 부착하여 별도의 이용 허락 없이 자유이용이 가능하다고 고지하였다. 기존 공공누리 체계와 연계해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즉시 다운로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다음 단계는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 콘텐츠 공정이용 확대 필요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남아 있다. 우선 공공 저작물의 개방 범위가 KTV 콘텐츠에 국한되어 있다. 가장 큰 아쉬움은 공영방송 영역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점이다. KBS, EBS 등 공영방송들은 배타적 소유 체계를 유지하면서 공영방송이 보유한 방대한 자료가 충분히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수신료로 제작된 뉴스, 다큐멘터리, 교육 프로그램들을 창작자,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공공성을 표방하는 방송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콘텐츠에 대해서는 상업적 논리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공정이용’을 보장하고 있는데, ‘공정이용’은 저작권 예외, 즉 창작자가 저작권자의 시장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고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나 공정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미비와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창작자들의 접근권 및 공정이용 권리가 제약받고 있다. 과도한 저작권 보호는 자유로운 창작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 캐나다 등의 저작권법에서도 ‘공정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Channel 4는 창작자들이 방송사 콘텐츠에 대한 공정이용(Fair Dealing) 및 상세한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공정이용 유형으로 시사 보도, 비평 및 리뷰, 인용, 캐리커처, 패러디 등을 폭넓게 포괄하며 적절한 출처 표기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하고 있다.
KTV 저작권 개방은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진정한 정보 민주화는 이제 시작이다. 시민들과 창작자들에게 공공 콘텐츠에 대한 자유이용과 공정이용을 보장하는 것은 창작의 다양성과 재창작을 통한 표현의 자유 확대와 사회적 담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으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콘텐츠 제작자들의 제작비 부담을 줄이면서 전체 창작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민이 낸 돈으로 만든 모든 공공 콘텐츠를 국민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그날까지, 창작자들과 시민들의 관심과 요구는 계속될 필요가 있다. KTV가 문을 열었으니, 이제 공영방송이 답할 차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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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은은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노마드 생활자이자 영화프로듀서, 연구활동가로 살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