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nsplash, Igor Omilaev
경제학 교과서들은 한 나라가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를, 해당 국가가 수입품의 국내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는 훨씬 더 광범위한 목적을 가진다. 그의 관세는 일종의 군사 개입이자 쿠데타 또는 테러 공격과도 같으며, 다른 나라들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인도 의류 수출업자들이 50% 관세를 부과받는 이유는 미국 의류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트럼프의 의지에 인도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다.
이것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 나타나는 불일치를 설명해 준다. 인도에 대한 50% 관세는 인도가 러시아 에너지를 구매한 것에 대한 처벌이라고 주장되지만, 사실 중국이 인도보다 훨씬 더 많은 러시아 에너지를 구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산 대부분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은 50%보다 낮다. 이 차별적 대우의 이유는 트럼프가 인도를 만만하게 보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필요하다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등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도는 아직까지 어떤 보복 위협도 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인도는 50% 관세를 부과받은 또 다른 국가인 브라질과도 다르다. 브라질은 이미 미국에 대한 보복 절차를 개시한 상태다.
트럼프가 브라질산 상품에 50% 관세를 부과한 겉보기에 드러난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트럼프는 브라질의 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가 선거에서 패배한 뒤 재판에 회부된 것에 대한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보우소나루가 “명예롭게 무죄로 풀려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나라의 사법 제도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간섭이지만, 트럼프가 인도와 브라질을 상대로 관세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주된 이유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이유는 아마도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단일 전선을 약화시키고, 인도와 브라질이라는 두 개의 거대 제3세계 국가들을 협박해 그 전선에서 이탈시키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완전히 새로운 전술이다. 탈식민화 이후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자립을 촉진하고, 내수시장을 확장하며, 국가(특히 공공부문)를 활용해 국내 생산과 기술 역량을 발전시키는 디리지즘(dirigisme, 국가주도 경제개발전략)을 추구했다. 제국주의는 이러한 전략에 맞서 집요한 투쟁을 벌였다. 초기에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 이른바 동아시아 ‘4마리 용’의 “성공 사례”를 내세우며, 이들의 성장 경로를 제3세계 국가들도 모방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 세계은행은 ‘내향적 발전 전략’과 ‘외향적 발전 전략’을 구분하며, 동아시아 4개국의 성공을 근거로 외향적 전략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주장은 지극히 부정직한 지적 사기였다. 동아시아 4개국이 경험한 수출 및 GDP 성장률은, 모든 국가들이 외향적 전략을 채택하면 동일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세계 시장의 성장률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부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다른 국가들의 성장률은 반드시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각국이 “작은 나라”라는 잘못된 가정을 내세워, 마치 원한다면 무제한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했다.
결국 두 가지 요인이 이 논쟁을 제국주의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첫째, 중국의 수출 성공이었다. 중국의 성장은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맥락과 발전 경로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세계에 외향적 전략의 성공 사례로 제시됐다. 둘째, 메트로폴리탄 자본(서구 자본)이 제3세계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이를 통해 마치 제3세계에도 자본주의가 확산되어, 결국 선진국과 제3세계 간의 격차가 해소될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서구 본국의 대량 실업 사태를 마냥 방치하고 서구 정부들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현실적 가정 위에 서 있었다.
이 모든 요인은 결국 디리지즘을 약화시키는 논거로 작동했지만, 실제로 그 기저에는 글로벌화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대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있었다. 또한 서구에서 교육을 받고 이주한 자녀들을 둔 도시 상류 중산층은 점점 더 자국의 노동자·농민보다 서구 메트로폴리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고, 이 계층 역시 세계화에 적극적이었다. 여기에 더해 세계은행과 IMF는 특히 석유 파동 이후 다수의 제3세계 국가들이 직면한 외환위기를 계기로 적극 개입했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여러 국가의 재무부에 자사 인력을 심어, 내부에서 디리지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도는 비교적 오래 저항했지만, 1991년 결국 신자유주의 체제를 수용하고 무너졌다.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세히 다룰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지금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을 메트로폴리탄 시장에 의존하게 만든 뒤,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주장하다가 이제는 관세를 무기로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는 수백만 명의 제3세계 농민·노동자, 특히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그들을 실직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인도 면화 농민들을 직격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유지하는 반면, 모디 정부는 최근 수입 면화에 대한 11%의 관세를 폐지했다. 그 결과 농민 자살은 더 늘어날 것이고, 미국의 50% 관세로 인도 섬유 노동자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의 인도산 섬유 및 의류 수출품에 대한 관세가 초래하려는 결과다. 더 나아가, 지금 가자(Gaza)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끔찍한 형태의 참상이, 군사 개입이 아닌 ‘관세 테러리즘’을 통해 제3세계 다른 국가들에도 재현될 수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재확인이다.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자립을 추구하고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디리지스트 개발 전략은 탈식민화의 필수적 보완책이라는 것이다. 인도와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이 탈식민화 직후 곧바로 깨달았던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외향적 발전 전략은 제3세계 국가를 제국주의의 시장 논리에 종속시킬 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심각한 의존성을 강화한다.
우리는 또한 인도의 1년간 이어진 농민 투쟁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 이 투쟁은 인도가 미국산 곡물 수입에 의존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막았다. 만약 인도가 미국 곡물에 의존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제국주의가 인도를 굶주림의 협박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더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가자에서의 집단학살을 방관하는 제국주의 국가라면, 제3세계 국가가 제국주의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식량 수입을 차단해 인도 같은 나라를 기아 상태로 몰아넣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도와 같은 나라가 해야 할 일은 발전 전략 자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디리지즘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대신 농업 성장(예: 토지개혁)을 촉진하고, 노동계층에 유리한 소득 재분배를 실행하며, 복지국가 정책을 통해 사회적 임금을 높여 내수시장의 규모를 계속 확대하는 새로운 디리지스트 전략을 뜻한다.
일각에서는 모디 정부가 8월 15일 발표한 GST(상품·서비스세) 감세 정책으로 이러한 방향을 추진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터무니없다. 실제 GST 감세 혜택은, 내가 8월 24일에 쓴 글에서 제시한 예상치보다 다소 크긴 하다(GDP의 0.1%가 아니라 0.6%, 0.32조 루피가 아니라 1.95조 루피). 하지만 그것조차도 극히 보잘것없다. 복지국가 중심의 대안적 발전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GDP의 최소 10%에 해당하는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을 노동자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국주의가 관세를 무기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출 보조금 같은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는 그럴 경우 관세를 더 높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브라질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복 조치를 시도해볼 수 있으며, 동시에 대체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관세의 피해자가 될 사람들에게 새로운 고용 기회를 마련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디 정부는 이런 조치들을 전혀 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을 달래기 위해 면세 면화 수입을 허용하는 등 양보를 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지금, 인도의 농촌 빈곤층에게 생계줄 역할을 할 수 있는 MGNREGS(농촌 고용보장제도) 지출까지 축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 Trump’s Tariff Terrorism and Its Lesson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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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