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심은 나무는 충현이 형을 기억하는 표식이자,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뿌리입니다. 동지 여러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곁에 있습니다. 서로를 믿고 지키며, 반드시 더 이상 희생 없는 일터를 만들어 갑시다. 충현이 형을 기억하며, 김용균 동지를 기억하며, 끝까지 함께 살아서 투쟁합시다.” - 정철희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 발언 중에서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배롱나무 한 그루와 함께, 그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자리했다. 한전KPS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인은 올해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선반 기계 작업을 하다 끼임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추모나무와 추모비 곁에는 이미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청업체 소속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도 지난 2018년 12월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을 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곁에 자리한 고 김충현 추모나무와 추모비. 공공운수노조 제공
고 김용균과 고 김충현의 동료들은 “위험의 외주화”로 참사가 거듭되는 발전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원청 한전KPS를 상대로 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 앞선 8월 13일에는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를 출범해 정부와 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논의도 첫 발을 디뎠으나 “현장을 바꾸는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것이 발전 현장 노동자들의 결의다.
이에 고인의 동료들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100일을 맞아 “희생의 반복을 멈추고 안전하고 단단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담아” 10일 오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고 김충현 노동자 기억식을 열고 추모비와 추모나무에 볕을 드리웠다. 이날 기억식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주관으로 고인의 동료들과 유족, 노동자·시민 100여 명이 함께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 기억식에 참여한 노동자·시민들. 공공운수노조 제공
박정훈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억식에서 “태안화력발전소를 바라보는 김용균의 옆자리는 비어 있기를, 동상이 된 김용균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퇴근하는지 확인하는 감시자가 되기를 바랐다”면서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 김용균의 옆에 일하다 죽은 노동자를 세운다”라며 서글픈 심경을 전했다.
이어서 “정부와 발전소는 김용균의 옆에 무엇을 심었는가”라고 묻고는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고 김용균의 옆에 불법적인 다단계 하청구조를 심었다”고 일갈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또한 “법원이 불법을 깨끗이 치우라고 명령했지만 한전KPS는 불복하고 항소”했고, “한전KPS 2차 하청노동자들은 고 김충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다단계 하청구조의 공장으로 다시 출근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의 생명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이야말로 죽음의 공장을 키우는 밑거름”이라 비판했다.
그는 이날 심는 ‘김충현 나무’는 “죽음과 불법을 정화하고 생명과 안전을 꽃피울 나무”라면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아니라 안전하게 퇴근한 노동자가 김용균과 김충현의 옆에 서 있을 수 있도록 투쟁하자”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고 김용군 노동자 추모 조형물 옆에 자리한 고 김충현 노동자의 추모나무를 바라보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공공운수노조 제공
유희종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장은 “오늘 이 기억식이 있기까지 우리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많은 투쟁을 벌여왔다”면서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그와 같은 투쟁들의 힘으로 “(한전KPS 하청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법원 판결도 승소했고,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까지도 이끌어냈다”고 환기했다.
그러나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대통령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이야기도 했으나,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것은 근래에 많은 노동자들이 더 많이 돌아가신 게 아니고 언론이나 이 사회가 그동안 애써 노동자들의 죽음을 밝히지 않았던 것”이라 지적하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고의 노동자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 본부장은 이에 “더 이상 하청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약속하고 투쟁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김충현 노동자를 함께 기억하며 이후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시 한번 강고히 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기억식에서 발언 중인 정철희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정철희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은 “충현이 형이 사고를 당하신 지 어느덧 3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면서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투쟁의 현장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라는 절박한 외침을 함께 외치며 싸워왔다”고 환기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일터로 돌아왔으나, 돌아온 마음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면서 “여전히 우리의 현장은 안전하지 않고, 우리의 노동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 발을 딛는 순간마다 불안이 스며들고, 또 다른 희생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동안 함께 다짐했던 약속, 서로를 지켜내고 반드시 더 나은 현장을 만들어 가겠다는 결의, 그 약속이 있기에, 다시 현장에 서는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철희 분회장은 마지막으로 “오늘 심은 나무는 충현이 형을 기억하는 표식이자,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뿌리”라고 짚고는 “그 뿌리가 자라 동료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거기에 더해져 우리의 투쟁에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면서, 동료들에게 “서로를 믿고 지키며, 반드시 더 이상 희생 없는 일터를 만들어 가자”, “충현이 형을 기억하며, 김용균 동지를 기억하며, 끝까지 함께 살아서 투쟁하자”고 마음을 전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추모비. 공공운수노조제공
기억식을 마무리하며,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들과 유족들은 함께 손 모아 추모비를 덮어둔 천을 걷어내 비석에 새겨진 고인의 얼굴과 이름에 볕을 드리웠다.
추모비에는 고인의 동료들인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마음을 담은 “빛을 만드는 노동자 김충현,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며 잠들다. 김충현을 기억하며 우리는 살아서 투쟁할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추모나무에는 고인의 삶과 죽음을 함께 기억하며, 더는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시민들의 바람이 담긴 문장들을 매달았다.
추모나무에 바람을 담은 문장을 매다는 고인의 동료. 공공운수노조 제공
추모나무에 매달린 바람. "모든 노동자가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세상, 비정규직 철폐". 공공운수노조 제공
대책위는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들은 “9월 1일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면서 “이들은 일터를 바꾸고, 위험의 외주화를 끊어내고,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같은 거대 권력, 그리고 이를 방치한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불법파견 소송 1심에서 승소했지만, 승소는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며 “현장을 바꾸는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 싸움이 가능하려면 동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함께하는 동지들의 연대가 있을 때 그 힘으로 발전소 현장을 더 안전하게 바꿀 수 있다”, “김충현과 김용균의 외침은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가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발전 현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노동자·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당부했다.
한편,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달 27일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발전소 폐쇄에 따른 총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공동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1차 경고 파업에도 정부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오는 9월 26일부터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파업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