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노동자들, 이달 17일 “시민·환자, 노동자 모두 살리는” 파업 나선다

서울대병원 현장 노동자들이 의료 공공성 강화와 함께, “환자 안전과 직결된” 병원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오는 17일 파업에 돌입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서울대병원분회’)는 10일 오전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와 노동자의 안전과 단 한 사람의 건강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병원을 만들기 위해 파업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파업 선포 기자회견. 의료연대본부 제공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지난 6월 25일 이후 현재까지 병원 측과 15차례 단체교섭과 30여 차례 실무교섭을 진행했으나,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병원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에 노동조합은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통해 파업 절차에 돌입하고, 이달 5일부터 9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2,895명의 참여로 85.3%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찬성 2,709명(93.58%), 반대 181명(6.25%), 무효 5명(0.17%)이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 투쟁 계획이 가결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파업 계획을 밝히면서 “작년 전공의 집단행동 상황에서 김영태 병원장은 환자 감소를 이유로 대다수 부서에 근무별 인력을 축소했고 특히 전공의 업무를 위한 진료지원 간호사 대체인력은 충원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환자 중증도는 상승하면서 필수인력 부족은 노동강도 상승을 넘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총인건비제로 서울대병원 직원들의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2015년 개악된 임금체계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키며 입사 5년 후부터는 사실상 국립대병원 최하위권 임금을 기록”하고 있으나 “병원장은 정부 지침과 적자를 이유로 인력 확충과 실질임금 인상, 임금체계 개선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짚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국립대병원 보건복지부 이관을 통해 의료관리체계 일원화와 지원확대를 약속”했으나 “서울대병원은 교수 반대와 교육, 연구 위축 등을 이유로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그러면서 공공병원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노동조합의 의료공공성 강화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이에 병원에 △필수인력 충원, 임금체계 개편 등 조합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수용안 제시 △공공병원의 역할 강화와 새로운 총괄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보건복지부로의 담당 부처 이관에 동참을 요구하고, 정부에는 공공기관인 공공병원에 대한 인력 규모와 인건비를 결정하는 △총인건비제 개선과 인력 통제 중단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발언 중인 박나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 의료연대본부 제공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

박나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병원노동자들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의료는 상품이 아니며, 누구나 아프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나, 이같은 의료 공공성을 담보할 “우리 사회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여러 한계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평했다.

그는 “메르스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 전공의 집단행동 등 의료대란의 순간마다 공공의료가 의료체계를 지켜왔다고 하지만, 취약한 공공의료의 위기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며 국가중앙병원 및 권역책임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도 의료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분회장은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지난 38년 동안 매년 국민을 위한 의료공공성 요구와 투쟁을 해왔다”면서 “부당한 선택진료비 폐지, 환자식사 보험 적용, 어린이부터 무상의료가 그 투쟁의 결과들”이라 환기하고, “우리는 오늘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다시 노동조건 개선과 의료공공성 요구를 걸고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우리의 투쟁은 공공의료를 살리고 국립대병원이 제자리를 찾게 하는 중요한 투쟁이 될 것”이라 힘 주어 이야기했다.

"노동조건 개선은 환자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

서울대병원 소아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이자, 서울대병원분회 2025년 단체교섭단장인 권지은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이 지난 2015년 강압과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임금체계를 개악”한 결과, 서울대병원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국립대병원 중 최하위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임금만이 아니라 “인력 충원 역시 절실한 상황”이라 제기했다. 권 단장에 따르면 “현재 간호사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직종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으로 이에 더해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으로 중증도는 날로 높아져 가고 있지만 간호사는 여전히 1명당 10명이 넘는 환자를 담당”하는 현실이다. 권 단장은 “인력 충원이 되지 않아 휴가도,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부서가 넘쳐나고, 여전히 위험 업무, 야간 업무를 1인이 담당”하고 있으나 “병원은 아직도 기재부 핑계만 대면서 인력 충원을 못하겠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지은 단장은 현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노동조합은 노사가 함께 교섭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나, 병원 측은 제대로 된 수용안을 내지 않은 한편 “수련의가 돌아왔다고 피자를 돌리고, 1년 6개월 동안 수련의 공백을 대신했던 진료지원 간호사들은 그야말로 토사구팽당하고 있다”고 규탄하면서 “수련의 집단행동으로 병원을 지킨 노동자들은 병원에게 대체 무엇이었는가”라고 물었다.

권 단장은 이에 병원 현장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병원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망”인 병원 노동자 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과 함께 모든 시민을 위한 의료 공공성 실현을 요구하는 이번 투쟁에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마음을 전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안심하고 병원에 머무를 수 있도록"

서울대병원 소아병동 간호사인 이채민 서울대병원분회 교섭위원도 “환자 안전을 위한 ‘필수 인력 충원’,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즉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는 중증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곁을 지켜야 할 의료진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에 노동조합은 병원과의 교섭을 통해 환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 확충을 요구해 왔으나, 병원은 기재부에서 정한 정원을 운운하며, 단 한 명의 인력에 대해서도 수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라며 그 결과 현장 노동자들은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채민 교섭위원은 소아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면서 인력 부족으로 인해 “간호사로서 환자를 제대로 간호하지 못했다는 상당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꼈다”면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고 환기했다.

그는 응급상황에서도 간호 인력 부족으로 담당 교수가 소리를 치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병원 노동자의 인력은 곧 환자의 안전”이며 인력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채민 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어떻게든 최소 인력만으로 병원을 유지하려 한다”면서 현장 노동자들이 “죄책감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가 안심하고 병원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이번 파업 투쟁에 “귀 기울여 주시고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공공의료는 서울대병원의 사회적 책무". 의료연대본부 제공

"시민과 환자와 노동자 모두를 살리기 위한 투쟁에 연대를"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에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지를 표하며 연대에 나서고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날 특히 공공의료 현장의 문제들을 바꿀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갖고 있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은 공공의료 강화를 약속하고 당선되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에도 자신이 성남시의료원 설립 운동을 하다가 수배돼 은거했던 성남주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공공의료는 자타가 공인하듯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였다”고 환기하고, 그런데 “이 정부에게 공공의료는 수사에 불과했던 것 같다”면서 “국정과제와 내년도 예산 등을 보면,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수준이고, 반면 윤석열 정권이 해왔던 의료민영화,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 돈벌이 지원을 위한 예산과 정책들은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진한 국장은 “대도시에는 미용성형 비만클리닉, 수액과 갖은 비급여로 돈벌이하는 의원 간판이 즐비한데 막상 응급환자 중환자를 치료할 병원은 찾기 어렵고, 지역의료는 갈수록 붕괴하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 보건의료체계 현실이라며, 사람들은 이재명 정부가 이를 바로잡기를 기대했으나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고, 복지보다 기업 이윤이 먼저라는 기조”로는 “공공의료가 붕괴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AI, 바이오헬스, 원격의료 미명하에 기업이 침투해 공공의료는 더욱 더 후퇴해 상업화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 잘못된 정부의 우선순위와 어긋난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국가중앙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나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시민과 환자와 노동자 모두를 살리기 위한 투쟁”인 이번 파업에 시민들의 너른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강원대학교병원·경북대학교병원·충북대학교병원 등 국립대병원과 울산대학교 등 사립대병원, 서울대병원식당과 울산동구요양원 등 의료연대본부 산하 7개 이상 사업장들이 현재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사 간 의견 불일치로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하고 공식 파업 절차를 밝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의료연대본부 산하 노동조합들은 이번 주까지 각 사업장분회에서 조합원 대상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될 경우 오는 17일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해 파업에 나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 의료연대본부 제공

의료연대본부 소속 노동조합들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여러 공공기관 노동자들도 같은 날 함께 총파업-총력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엄길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오는 17일 공공부문 현장 노동자들은 “빼앗겨버린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되찾기 위해,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들기 위한 현장 인원 보강을 위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본의 탐욕에 의해 빼앗긴 노동권을 되찾기 위해 공공기관 대전환이라는 이름으로 파업과 총력투쟁에 나선다”면서, 그 공동 파업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병원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고 마음을 전했다.

엄 위원장은 이어서 “혹자는 이재명 정부에서 이미 지역 격차 해소와 공공의료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키지 않았냐, 그런데도 파업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악의 섞인 물음을 던지곤 한다”면서 “우리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OECD 평균을 두 배 가까이 상회하는 나라, 날로 높아져만 가는 치료 가능 사망률의 수치를 목도하고도 전혀 고칠 생각이 없는 나라, 전체 의사 수는 부족하지만 인기 과의 의사 수는 넘쳐나는 나라. 제주,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전국 각 지역에서 서울로 병원 투어를 다녀야 하는 나라, 이런 나라를 바꾸기 위해 파업에 나선다고 답한다”고 소리 높였다.

또한 “이번 파업 투쟁은 “2004년 이후, 국립대병원 최대 규모의 파업”으로 예상된다며 “자본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필요가 우선인 병원을 위해 파업에 함께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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