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를 향한 함대는 세계의 양심이다

가자 봉쇄를 뚫기 위해 활동가들이 함대를 조직해 수차례 시도해 온 행동은, 희망이 저항의 실천을 통해서만 도래하며 우리가 결코 현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바다 괴물(Sea Monster) 출처: Mr. Fish

이탈리아 로마 — 20264, 이스라엘이 18년째 하고 있는 가자지구 봉쇄를 뚫기 위한 새로운 함대가 출항할 예정이다. 이 임무는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을 위한 해상 행동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00개국에서 온 3,0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100척의 배로 나설 예정이며, 이 가운데에는 이스라엘이 가자 반입을 차단해온 생명 구호 물자, 장비, 의료용품 500톤을 전달하기 위해 1,000명의 의료 종사자로 구성된 의료 함대도 포함된다.

이번에도 전 세계의 활동가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가운데 하나를 끝내기 위해 가자를 향해 항해할 것이다. 이번에도 이들의 여정은 SNS에서 분 단위로 추적될 것이다. 이번에도 이스라엘 드론들은 공해상으로 출동해 배들을 가로막고 공격할 것이다. 이번에도 복면을 쓰고 중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배에 승선할 것이다. 이번에도 활동가들은 체포될 것이다. 이번에도 이들은 최고 보안 교도소로 이송될 것이다. 이번에도 이들은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독방에 수감되고, 모욕과 고함을 듣고, 107일에 관한 이스라엘 선전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거나, 이스라엘 교도관들에게 성폭력을 당할 것이다. 이번에도 해변에서 최신 함대가 통과하기를 기다리는 팔레스타인인들, 그중 다수는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세계는 집단학살 협약 제1조가 부여한 개입의 법적 의무를 외면한 채, 집단학살을 끝내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결과가 거의 정해져 있음에도 이 함대들은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질식 통제를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약화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에 개입해야 할 도덕적·법적 의무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집단학살을 유지시키는 데 공모하는 서방 정부들까지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무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행동할 수 있다.

함대를 지켜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나는 202511월 말 제노바에서 열린 이탈리아 항만 노동자 파업과 로마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전국 시위에 함께 참가했을 때, 이탈리아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모나 아부아마라(Mona Abuamara)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처럼 느꼈다.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다르게 끝나길 바랄 때 있지 않나. 나는 계속 통과하게 해줘. 통과하게 해줘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통과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다. 그들은 통과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현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MAAM 미술관 입구에는 마우로 쿠포네의 ‘F-ART’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사인을 연상시키듯 설치돼 있다. 출처: BLOCAL

나는 이른 아침 로마의 MAAM 미술관에서 브라질 활동가 치아구 아빌라(Thiago Ávila)와 스웨덴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만났다. 미술관은 스포일러: 당신은 죽을 것이다(Spoiler YOU WILL DIE)”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를 포함해 거리 예술로 가득 찬 미로 같은 홀과 복도, 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은 버려진 도살장이자 미술관으로, 여러 나라 출신의 이주민 약 200명이 점거해 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예술가들 일부가 그린 거대한 벽화들을 포함한 작품들이 옛 육류 가공 공장의 시멘트 벽을 뒤덮고 있다. 입구에는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사인을 풍자하듯, 거대한 글씨로 “FART”라는 단어가 걸려 있다.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활동가로 살아온 모든 세월 동안, 나는 매일 같이 제도와 이른바 지도자들, 기업, 선출직 공직자들, 은행들, 무엇이 되었든 그들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점점 더 잃어왔다. 애초에 그런 희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들이 우리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주체다. 이 체제는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체제는 파괴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이 체제는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이 체제는 일부 사람들을 억압하도록 설계됐다. 이 체제는 자연을 우리와 분리된, 외부의 대상으로 만들어 착취하도록 설계됐다. 사람들을 억압하려면 먼저 그들을 비인간화해야 한다. 출구는 오직 권력을 되찾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탈리아에서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온 주된 이유다. 이것은 사람들이 권력을 되찾고 진짜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줄 때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아빌라는 자유 함대 연합(Freedom Flotilla Coalition)과 새로 결성된 글로벌 수무드(Global Sumud) 함대를 조직했다. 그는 20256월 출항한 배 매들린(Madleen)의 승무원으로 참여했으며, 이 배에는 툰베리와 함께 이스라엘 구금 중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당한 프랑스·팔레스타인계 유럽의회 의원 리마 하산도 탑승해 있었다.

매들린호는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가로막혔고, 이스라엘 아슈도드 항으로 예인되었다. 아빌라는 아얄론 교도소에서 독방에 수감됐으며, 추방될 때까지 물을 마시지 않는 단식 투쟁에 참여했다.

이스라엘군, 공해상에서 매들린호를 공격하다. 출처: FREEDOM FLOTILLA COALITION

실패한 시도가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고 아빌라는 내게 말했다. “폭격당한 배에도 타봤고, 사보타주를 당한 배에도 타봤다. 이스라엘의 압력을 받은 국가들 때문에 행정적으로 좌절된 배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 끔찍한 봉쇄를 깨기 위해 수년 동안 시도해왔다. 18년이다. 최근 두 번의 시도는 그레타와 함께했다. 나는 두 번이나 가자 가까이 갔다.”

그는 수감 중 이스라엘 교도관들이 자신을 발로 차고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찍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산탄총을 겨눈 채 함대에 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몇 시간씩 심문했다. 교도관들은 으르렁대는 경비견들을 그의 감방으로 들여보냈다. 이들은 그를 계속해서 다른 감방으로 옮겼고, 밤새 반복적으로 잠을 깨웠다.

당신들은 몇 개 나라를 동원했나.” 이스라엘 심문관들이 아빌라에게 물었다.

각 나라의 대표는 누구인가.” 그들은 집요하게 캐물었다.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정보는 절대 제공하지 않겠다고 아빌라는 답했다. “다만 공개된 정보라면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투명하다.”

봐라, 네가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겪게 만드는지 보라.” 심문관들은 비웃듯 말했다. “네가 쓴 돈, 낭비한 돈을 봐라.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군 심문관들, 정보 요원들, 이스라엘 판사들은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80년 동안 집단학살과 인종 청소를 저질러왔다.” 아빌라는 언제나 이렇게 답했다. “당신들은 아파르트헤이트와 식민 국가를 구축했다. 당신들은 종교로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라는 인종차별적이고 우월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아빌라에게 물었다.

그들은 그걸 몹시 싫어한다.” 그가 말했다.

지난번 우리가 억류됐을 때 이스라엘 정부의 다수는 가능한 한 빨리 우리를 내보내고 싶어 했다고 아빌라는 말했다. “완전히 끔찍한 홍보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자 교도소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우리를 풀어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처벌하고 싶어 했다. 정치적 메시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안에서는 내부 갈등이 있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을 내쫓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제 연대는 팔레스타인 대의에 더 실질적으로 기여할 책임이 있다고 아빌라는 말했다. “우리는 더 큰 영향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해냈다. 매들린호로 나섰을 때, 우리는 그 이전 다섯 달 동안 계속 시도해왔다. 세 차례의 다른 임무가 실패했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는 그 사실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실패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202551일 자정 직후, 몰타 해안에서 2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벌어졌다. 팔라우 국기를 단 함대 소속 선박 컨션스(Conscience)’호가 두 대의 드론에서 발사된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미사일은 선박의 발전기를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공격은 화재와 선체 파손을 초래했고, 배와의 통신은 두절됐다. 이 배에는 인도적 구호 물자가 실려 있었다.

유럽연합은 이 공격을 규탄하지 않았다고 아빌라는 말했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큰 배는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12명만 탈 수 있는 작은 배 하나뿐이었다. 상징적인 구호 물자만 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세계가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를 지지하는 거대한 동원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20105, 활동가들과 인도적 구호 물자를 싣고 가자를 향하던 마비 마르마라호는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해군 특공대의 급습을 받았다. 이스라엘 측은 곤봉과 칼로 무장한 활동가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공격으로 튀르키예 시민 8명과 튀르키예·미국 이중국적자 1, 9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실탄으로 24명이 중상을 입었다.

나는 올해로 39살이고, 21년 동안 국제주의자로서 사회적 투쟁에 헌신해왔다고 아빌라는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나는 이전에도 팔레스타인에 갔다. 팔레스타인은 우리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대의다. 팔레스타인은 모든 것을 상징한다. 착취에 맞선 투쟁, 억압에 맞선 투쟁, 자연 파괴에 맞선 투쟁을 상징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 체제가 수단과 콩고에서도 집단학살을 저지른다. 그 체제는 브라질과 이 지구의 생태계 전반에서 생태 학살을 자행한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제국주의와 시온주의를 꺾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 그것을 꺾을 수 있다.”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누기 전날 밤 9, 아빌라는 호텔 방에 있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레타가 음식을 가져오는 줄 알았다고 그는 말했다. “경찰이었다.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예전에 여기서 겪었던 것보다는 덜했다. 그들은 들어와서 방과 옷장, 모든 것을 수색했다. 그리고 내 계획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업이나 동원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함대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배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마다 경찰과 보안기관은 늘 같은 질문만 한다. ‘여기로 배가 오나. 배가 오나.’ 지금은 진행 중인 임무가 없다. 그들도 그걸 이해한 것 같다.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있었고, 이것은 그들이 위협을 가하고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방식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투명한지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임무를 공개한다. 만약 임무가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밤중에 내 방에 들이닥칠 필요는 없었다.” “반식민·반제국주의 투쟁의 맥락에서 최종 승리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일이 아니다.”

아빌라는 말을 이었다. “그것은 과정이다. 우리는 언제 체제가 붕괴할지 알지 못한다. 붕괴가 일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가로막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시온주의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와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통과할 수 있다. 혹은 그것이 충분히 약해졌을 때, 우리가 통과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그것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를 가로막는 정치적 비용이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날까지,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그에게 정치적 영웅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아빌라는 말했다. “우리는 혁명의 역사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 당연히 체 게바라다. 로자 룩셈부르크다. 마르크스다. 엥겔스다. 우리는 지금 이탈리아에 있으니 안토니오 그람시도 있다. 반식민 투쟁에는 훌륭한 인물들이 정말 많다. 토마스 상카라. 프란츠 파농. 넬슨 만델라. 비폭력 직접 행동을 이끈 사람들도 있다. 놀라울 만큼 영감을 주는 사례들이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로자 파크스. 이들은 모두 중요한 준거들이다. 이들은 도구다. 이들은 우리 시간을 절약해준다.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깃발을 들고 싸웠고, 그 깃발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었다. 경험으로 가득 찬 이 깃발을 우리가 이어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우리는 게을러질 수 없다.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항만 노동자들은 가자 봉쇄를 뚫으려던 42척의 선박에 탑승한 활동가, 국회의원, 변호사 등 462명이 해를 입을 경우 이스라엘과의 무역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위협했다. 툰베리는 함대에 탑승해 있다가 항만 노동자들의 이 연대 행동을 알게 되자 눈물을 터뜨렸다.

이스라엘은 모든 배를 가로막았고, 모든 승무원을 체포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고보안 구금 시설인 크치오트 교도소, 즉 안사르 III로 불리는 곳에 수감됐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무장 활동이나 테러와 연루됐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구금하는 데 사용해온 시설이다. 이들은 한 방에 열 명 이상이 빽빽하게 몰려 수감됐고,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잤다.

나는 옛 육류 가공 공장에서 작은 테이블에 앉아 툰베리와 마주했다. 우리는 겨울 외투를 껴입은 채였다.

MAAM 미술관에서 내가 진행한 인터뷰 도중의 그레타 툰베리(사진: 토머스 헤지스)

툰베리는 이스라엘 교도관들의 특별 표적이 됐다. 이들은 그를 폭행했고, 머리채를 잡아끌었으며, 굴욕을 주기 위해 이스라엘 국기에 감싼 채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빈대가 들끓는 감방에 그를 가두었고, 충분한 음식과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

나는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 공동 창립자인 로저 핼럼이 말했듯, 장기 수형을 포함한 더 큰 위험을 감수할 때가 왔는지 그에게 물었다. 핼럼은 런던 순환도로 M25 봉쇄를 조직한 혐의로 영국 교도소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개인적 대가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툰베리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 자체가 생명을 거는 일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언론에서 중상모략을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가는 방식으로 탄압을 겪는다. 하지만 백인 스웨덴인인 나는 감옥에서도 최악의 처우를 겪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감수해야 할 개인적 위험과 희생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분명히 안락지대를 벗어나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러온 수많은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툰베리는 이스라엘 교도소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인질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아주 잠깐 엿본 것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감옥에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있고, 그중 수백 명은 아이들이다. 이들은 거의 확실히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증언이 그 현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여권이라는 특권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언론 보도와 외교적 연계라는 막대한 특권도 누렸다. 그들은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다.”

함대는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툰베리는 말했다. “함대는 인도주의적 임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입장이었다. 그것은 봉쇄를 뚫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였다.”

베아트리체 리오(Beatrice Lio)는 이탈리아 출신의 선장으로, 이번 함대에서 길이 41피트의 단일 선체 슬루프를 지휘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다음 함대를 위한 기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배는 새벽 1시간 전, 가자에서 약 120해리 떨어진 해상에서 가로막혔다. 만월은 막 지고 있었다. 그는 점멸등을 켠 군함들에 포위됐다. 이스라엘 선박 가운데 하나가 그의 배를 들이받았다. 얼굴을 가린 중무장 병사들이 승선해 배를 장악했다. 이들은 탑승한 아홉 명에게 갑판에 앉아 손을 들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찢어내렸고, 배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며, 통신 장비를 파괴했다. 탑승자들은 군함으로 옮겨져 이스라엘 아슈도드 항으로 끌려갔다. 다른 모든 배와 마찬가지로, 이 배 역시 압수됐다.

우리는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불려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그는 이스라엘 도착 당시를 떠올렸다. “우리는 알몸 수색을 당했다.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했다. 여권, 지문, 얼굴 사진을 찍혔다. 판사 앞에 섰던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활동가들은 눈을 가린 채 수갑을 찼다. 이들은 트럭에 실려 크치오트 교도소로 이송됐는데, 트럭 안에서는 각자가 작은 금속 우리에 따로 갇혀 있었다. 모두 티셔츠만 입은 상태여서 몹시 추웠다. 이동 시간은 3시간이 걸렸다. 이들은 이틀 동안 크치오트에 머문 뒤,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사이에 위치한 하다림 구금 시설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5일간 수감됐고, 일부는 독방에 배치됐다.

독방에 간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다뤄졌다고 리오는 말했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다. 독방에 간 이들은 고문을 당했다. 몽둥이로 맞았다. 교도관들이 얼굴 위에 올라타 눈이 파래질 때까지 눌렀다. 수갑을 너무 세게 채워 피부에서 피가 났다. 생리 중인 여성들에게는 생리대를 주지 않았고, 약을 복용하던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범죄자라고 소리쳤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우리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희는 이스라엘에 와서 우리 나라를 파괴하려 했다. 그러니 이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107일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에게 107일에 관한 선전 영상을 보게 했다.”

그와 다른 활동가들은 자주 비명을 들었다. 이들은 그것이 심문과 고문을 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소리라고 짐작했다. 이들은 밤마다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반마다 깨워졌다.

그들은 문을 세게 두드렸다고 리오는 말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얼굴에 빛을 비췄다. 일어나서 이름을 말하라고 강요했다. 나는 체구가 작은데, 일부러 특대 사이즈 옷을 줘서 걷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보긴 했다. 범죄자이긴 했지만 인간으로는 봤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나는 가자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기쁨과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교도소 안에는 파괴된 가자의 거대한 사진이 걸려 있었고, 옆에는 새로운 가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자랑했다. 가장 아름다운 사진인 양 자랑했지만, 그 사진은 말 그대로 흙과 잔해뿐이었다.”

여러 활동가들이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가장 가슴 아픈 점은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단 한 순간도 폭력을 멈출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고 리오는 말했다.

예멘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도 집단학살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공급해 학살을 떠받쳐왔다. 미국만 해도 107일 이후 이스라엘에 217억 달러를 제공했다. 이들 국가는 집단학살에 항의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중에는 팔레스타인 액션’(Palestine Action) 활동가들도 포함되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교도소에서 장기 단식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 국가는 언론과 대학 캠퍼스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들은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집단 추방하는 집단학살의 마지막 단계가 완료될 때까지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다. 행동에 나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법의 지배는 사라질 것이다. 집단학살은 산업 국가들의 또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한 번 배신당할 것이다.

이 함대들은 저항을 살아 있게 할 뿐 아니라, 희망 역시 살아 있게 한다.

[출처] The Flotillas to Gaza Are the World’s Conscience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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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구호물자 가자지구 이스라엘 함대 툰데리 자유를향한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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