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시위는 이슬람 공화국에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란의 통치자들은 시위의 물결을 잠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이번 불안의 성격과 이에 대응한 국가의 치명적인 폭력은 1979년 혁명 이후 전례 없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으며미국의 공격 위협은 여전히 이 나라 위에 드리워져 있다.

최근 이란에서 일어난 항의 시위의 물결은 이슬람 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개 가운데 하나를 이뤘으며, 사상자 규모는 과거의 어떤 급격한 분출보다도 훨씬 컸다. 시위는 현재로서는 진정되었지만, 정치적 교착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출처: Unsplash, Artin Bakhan

최근 이란에서 일어난 항의 시위의 물결은 이슬람 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개 가운데 하나를 이뤘으며사상자 규모는 과거의 어떤 급격한 분출보다도 훨씬 컸다시위는 현재로서는 진정되었지만정치적 교착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란에서 최근 벌어진 시위의 물결은 이슬람 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개 가운데 하나를 이룬다이란 당국은 정보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봉쇄를 시행했지만국가 안보 세력이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며이는 2009년이나 2022~23년에 있었던 이전의 봉기들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현재로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정권 붕괴를 촉발하기를 바라며 또 다른 미국의 이란 공격을 명령할 가능성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지만이는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달 사이에 다시 바뀔 수도 있다최근 전개가 이란의 국내 정치와 미국과의 관계에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9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사관 위기

거의 반세기 전인 1979년 11월 4이란의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의 학생 추종자들은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으며이들은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인 444일 뒤에 풀려났다호메이니는 그로부터 몇 달 앞서 대중 봉기를 이끌며 권력을 장악했는데이 봉기는 1953년 중앙정보국(CIA)이 기획한 군사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오른 이란의 샤(shah), 즉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Mohammad Reza Pahlavi)를 축출했다.

그러나 1979년 초겨울이 되자 워싱턴은 샤를 철통같이 지지하던 정책을 포기했다지미 카터 대통령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에게 샤에게 왕위를 떠나 나라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전하라고 지시했다샤가 출국한 지 몇 주 만에 군주제는 붕괴했으며그와 동시에 미국의 외교 사절들은 파리와 테헤란에서 호메이니와 그의 최측근들과 비밀 협상을 벌이며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논의했다.

1979년 3월 이슬람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시점부터 그해 말 대사관 점거에 이르기까지의 몇 달 동안워싱턴과 신생 이슬람 공화국의 관계는 긴장돼 있었지만 외형상으로는 원만했다호메이니의 감독 아래 과도 정부 수반 메흐디 바자르간(Mehdi Bazargan)과 그의 참모들은 테헤란에서 미국 외교관들과 비밀 회동을 계속했다.

그들은 관계를 어떻게 재건할지이란의 군수 조달를 어떻게 재편할지그리고 샤가 미국 은행들에 예치해 둔 100~12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어떻게 회수할지를 논의했다소련과 이란의 다른 이웃 국가들에 관한 민감한 정보 공유도 이루어졌으며중앙정보국(CIA)은 이라크 군대의 국경 인근 병력 이동에 대해서까지 이란 측 접촉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한편, 이슬람 좌파와 마르크스주의 단체와 조직들로 이루어진 잡다한 연합은과도 정부가 미국과 공개적·비공개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를 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책무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이러한 불안정한 배경 속에서 테헤란 대사관 점거가 발생했으며이 사건은 이란 혁명의 진로와 성격을 바꾸어 놓고혁명을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했다.

이란 인질 위기는 지미 카터의 대통령직에 치명타를 가했다그는 즉각 이란에 대한 포괄적 무역 제재를 부과했고이어 실패로 끝난 군사적 인질 구출 작전을 명령했다샤와 동결된 이란 자산은 반환되지 않았지만미국과의 대결은 호메이니에게 더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그는 이를 통해 좌파를 측면에서 제압하고자신이 2의 혁명이라 부른 반제국주의적 대중 동원을 활용해 성직자 독재를 공고히 했다.

이라크와의 전쟁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마르크스주의 학자 프레드 홀리데이( Fred Halliday)가 어리석은 자들의 반제국주의라고 부른 호메이니의 대미 대결 노선은 이란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이 노선은 미국 정부와 대중의 깊은 적의를 불러일으켰고국제적으로 고립된 이슬람 공화국을 침공할 기회를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게 제공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8년 동안 지속됐으며,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았고 1조 달러가 넘는 비용을 초래했다이란이 1982년에 잃었던 영토를 되찾고 공세로 전환하자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동시에 워싱턴은 미국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테헤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공급했는데이 은밀한 계획이 드러나면서 레이건 대통령직은 거의 붕괴 뻔했다.

미국은 두 적대 세력 사이의 군사적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란과 이라크 양쪽 모두를 소모하고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냉소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다한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이를 노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박살 내길 바랐을 뿐이다.” 이스라엘 역시 같은 각본에 따라 개입했다이라크가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는 처음에 이란에 무기를 공급했고이후에는 이란의 반복되는 공세를 군사적으로 억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1988년에 이르러 미국의 개입은 이라크를 대신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의 문턱에 도달했다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미 해군 함대가 페르시아만에 집결했으며이란 해군과의 충돌이 점차 잦아지면서 워싱턴이 전면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1988년 호메이니가 마침내 휴전을 수용했을 때그는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빈곤해진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으며그 기본적인 통치 구조와 공식 이데올로기는 오늘날까지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이슬람 공화국은 미국과의 실존적 대결을 통해 스스로를 형성했으며정보 기관과 군사 기관을 핵심 기둥으로 하는 보루 국가로 변모했다이 정권은 국내의 반대를 잔혹하게 탄압하면서이를 워싱턴과 텔아비브에서 꾸며진 음모의 결과로 돌렸고이란을 상대로 끊임없이 벌어진 은밀하고 공개적인 전쟁은 정권의 편집증적 서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이슬람 공화국이 반대 의견을 반역과 동일시한 결과혁명 첫 10년 동안 수천 명이 처형되거나 거리 충돌에서 사망했고수만 명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는 등 이란 사회는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전쟁-복지 국가

그럼에도 이 정권은 탄압만으로 통치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의 10년에 걸친 혁명과 전쟁은 사회·경제 정책이 필요했고이는 이슬람 공화국을 전쟁-복지 국가로 형성했다특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보건교육전력 공급교통 분야에서 눈에 띄는 개선이 이루어졌으며이러한 정책은 훗날 계급 분화를 심화시키고 정치적 포용에 대한 요구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 전쟁이 끝날 무렵정권의 억압적이고 군사화된 심층 국가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어느 쪽보다도 큰 자산을 통제하고 있었다이란 경제는 준국가적 대기업 집단들에 의해 지배되게 되었는데주로 이슬람혁명수비대와 몇몇 강력한 재단들이었으며이들은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최고 종교 지도자로 그를 계승해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감독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다.

수백 개의 기업은행투자 회사복지 기관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혁명수비대와 재단들은 가혹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수십 년간 지속되는 상황에 적응해 왔다이들은 점차 이미 불투명했던 활동을 확대해수십억 달러 규모의 비밀 금융 거래를 능숙하게 처리하고해외에 유령 회사를 설립하며환율을 조작하고자금을 세탁하고석유를 암암리에 판매하는 그림자 경제를 관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표면적으로는 이슬람 공화국을 약화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지만미국의 제재는 결과적으로 제재 체제를 우회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핵심 실무자와 주주들이른바 완곡하게 표현된 제재 상인들”(sanction merchants)이 지배하는 강력한 이란의 심층 국가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동시에 이란의 지배 과두 집단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위협과 실제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군비 증강과 구조적으로 결합한 관계를 형성했다.

호메이니 사후 첫 10년 동안 미국과의 관계는 상대적인 긴장 완화 국면을 맞았으며클린턴 행정부는 제재를 완전히 해제하지는 않았지만, 무역 제재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이슬람 공화국은 조용히 미국에 접근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원했다테헤란은 또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것을 환영했고이라크 점령 과정에서 미국과 협력하면서 시아파가 다수인 이 나라에서 중요한 발판을 확보했다.

이러한 전개는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대응을 촉발했다이스라엘은 이슬람 공화국이 핵무기를 추구하고 국제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를 내세워이란을 미국의 적대국 목록인 악의 축’ 최상단에 올려놓는 데 성공적인 캠페인을 벌였다이스라엘과 미국 정부 내 동맹 세력은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크게 과장했지만실제로 이슬람 공화국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문턱까지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란은 점차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까지 도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했고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군사 동맹을 구축했다테헤란은 이러한 조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침공 위협에 대한 필수적인 억지력이라고 정당화했지만이는 국경 밖에서 군사력나아가 잠재적인 핵 역량을 과시하는 정권이라는 텔아비브의 묘사에 일정 부분 신빙성을 부여했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압박은 21세기 첫 10년 동안 점점 강화됐고버락 오바마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오바마는 2009년 취임 직후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하메네이와 비밀 합의에 도달했다그러나 공식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란은 혁명 초기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 시위에 휩싸였다.

이는 2009년 여름의 녹색 운동(Green Movement)이었다수백만 명이 대통령 선거에서의 부정을 규탄하며 거리로 나섰다정권은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했고수십 명을 살해하고 수백 명에게 부상을 입히며 이슬람 공화국의 틀 안에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변화를 요구하던 대중 운동을 짓밟았다돌이켜보면 녹색 운동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이슬람 공화국의 체제 내부에서는 의미 있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이 시점 이후 대중 시위는 자발적이고 지도부 없는 형태를 띠게 되었고분노 속에서 정권의 전복을 요구하게 되었다.

오바마는 두 번째 임기 동안 테헤란과의 협상을 재개했고, 2015년 7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라 불린 획기적인 합의를 성사했다이른바 오바마 합의에 따라 이란은 핵연료 농축을 평화적 이용 범위 내로 엄격히 제한하고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사찰을 허용하기로 했다그 대가로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영국독일은 이슬람 공화국이 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단계적으로 무역 제재를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이 제재 완화는 이란의 석유 수입이 많이 증가한 직후에 이루어졌고경제에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낳았다이란 경제는 2016년과 2017년에 평균 10% 성장했다그러나 이러한 일시적 성장에도 장기적인 생활 수준 하락 추세는 되돌려지지 않았다. 2011년부터 2019년 사이 약 1천만 명전체 인구의 약 15%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2017년 말이 되자 억눌려 있던 대중의 분노는 폭력적인 폭동으로 분출했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열흘 동안 100개가 넘는 도시에서 분노한 시위가 터져 나왔다군중은 반정권 구호를 외치며 은행정부 청사경찰서신학교를 공격했고 시위는 폭력적으로 변했다.

시위가 진압되기 전까지 25명에서 50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고되었다시위대는 주로 빈곤층과 하층 중산층 출신이었다. 2009년 녹색 운동의 개혁 요구와는 달리이들은 이슬람 공화국의 전복을 요구했다.

이러한 시위의 여파 속에서 첫 임기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의 강한 압박을 받으며 2018년 5월 미국을 오바마의 핵 합의에서 탈퇴시켰다이란이 합의 조항을 완전히 준수하고 있었음에도 트럼프는 테헤란으로부터 더 나은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의 최대 압박 제재 아래에서 이란 경제는 10% 이상 위축됐고빈곤율도 비슷한 폭으로 상승했다식품 가격이 200%, 의료비가 125%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의 10년 동안 중산층과 하층 계급 이란인들의 생활 수준이 크게 추락했음을 보여 준다.

여성생명자유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제재는 그것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평범한 이란인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더 나아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이란의 민주적 전망을 돕기보다는이슬람 공화국이 포위 상태의 사고방식을 강화하고 더욱 집요하게 억압적인 체제로 굳어지도록 만들면서 그러한 전망을 약화했다.

한편 이란 사회의 대중적 불만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잦아졌으며지난 10년 동안 2~3년마다 의미 있는 시위가 터져 나왔다. 2019년 11월 에너지 가격이 인상되고 빈곤층에 대한 보조금이 삭감되자주로 하층 계급 출신 약 20만 명의 시위대가 전국 곳곳에서 거리로 나섰다이들은 정부 청사를 공격하고 불을 질렀으며국가 안보 세력이 기관총 사격과 전차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시위를 진압했다.

2022년 9월 다시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고이는 2023년 겨울까지 이어지면서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만 명이 체포되는 결과를 낳았다이는 여성생명자유’ 봉기였으며예외적으로 긴 지속 기간과 강도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중산층과 노동계급 시위대의 결합급진적 투쟁의 중심이 수도에서 지방으로 이동했다는 점 등 새로운 특징들을 보여 주었다.

이 시위는 또한 전적으로 세속적이었고 때로는 반성직자적 성격을 띠었다동원은 공개적으로 반정권적이었지만통합된 지도부와 조직명확한 정치적 요구의 부재는 중대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제 2026년 1월 시위의 직접적 배경다시 말해 지난 3년간의 주요 사건들로 시선을 돌려보자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합의의 어떤 변형도 되살리는 데 실패했는데이는 바이든이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군사적·재정적·외교적으로 전폭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의 입장에 영합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책임을 이란에 돌린 뒤, 2024년 4월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대사관을 폭격했다이슬람 공화국은 수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사이버 공격과 과학자 및 군 인사들에 대한 암살에도 직접적인 보복을 자제해 왔지만마침내 이스라엘 내부의 군사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대응했다두 나라는 이제 전쟁 상태에 들어섰다.

2024년 7월 이스라엘은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며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이에 대한 이슬람 공화국의 대응은 10월에 이루어졌는데이란은 이스라엘 목표물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발사했다이 미사일 대부분은 텔아비브의 아이언 돔미 해군요르단의 방공망에 의해 요격되었다같은 달 말 이스라엘은 보복으로 이란 내 20개 지점을 겨냥해 세 차례의 공습을 감행했으며방공 포대와 탄도미사일 생산 시설을 목표로 삼았다이 공격에는 100대가 넘는 이스라엘 항공기가 동원되었고일부는 이란 영공을 침범했지만 모두 무사히 기지로 복귀했다.

동시에 2024년 동안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하마스에 가한 치명적인 타격그리고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면서이란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며 이스라엘을 둘러싸 구축해 온 정치·군사 동맹망인 이른바 저항의 축은 붕괴했다지역 동맹을 상실한 이슬람 공화국은 이제 이스라엘과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공격에 훨씬 더 취약한 처지에 놓였다.

열이틀 전쟁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뒤 하메네이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내고 테헤란이 이를 수용하면서세력 균형은 이란에 더욱 불리하게 이동했다트럼프는 새로운 핵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기한으로 60일을 설정했다. 2025년 6월 13트럼프가 설정한 시한을 하루 넘긴 시점에 이스라엘은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사이버 공격과 공중 폭격을 동시에 개시했다이 공격은 민감한 군사 시설과 핵 인프라를 타격했고핵 프로그램에 종사하던 고위 군·정보 책임자들과 과학자 수십 명을 암살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병원주거 지역국영 방송 건물을 포함한 민간 목표물도 폭격했다이란 측에서는 5천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보고되었으며이 가운데 1천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백 명의 민간인이 포함되어 있었다이슬람 공화국은 이에 대응해 수백 기의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했는데대부분은 요격되었지만 일부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방공망을 뚫고 군사 목표물을 타격해 수백 명의 사상자와 수십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사망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6월 22일 미국은 전쟁에 직접 개입해 고도로 복잡한 장거리 공습을 감행했고, 3곳의 이란 핵 시설에 각각 3만 파운드짜리 벙커버스터’ 폭탄 12발을 투하했다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은 열이틀 만에 휴전으로 끝났고이슬람 공화국은 승리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정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적의 폭격에 짓눌린 이란 대중으로부터 얻었던 최소한의 동정마저 빠르게 잃어버렸다.

전쟁 직후 수많은 공개 성명과 공개 서한이 통치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했다이러한 성명은 학자들인권 및 시민사회 활동가들변호사들·현직 정치범들노동조합 활동가들여성 단체들억압받아 온 소수 민족과 민족 집단들숙청된 정권 내 반대파 인사들로부터 나왔다.

이들은 몇 가지 핵심 요구로 수렴했다정치범 석방정당과 결사의 자유 보장언론에 대한 국가 통제의 종료최고지도자와 선출되지 않은 기관들이 통제하는 막대한 경제 자산의 정부 이관그리고 주로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군사 기관의 경제 개입 중단이었다모든 성명은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규탄했고외세 개입이나 폭력적 봉기를 통한 정권 교체” 가능성을 거부했다.

이는 누적되는 대중적 불만붕괴 직전의 경제성문 앞에서 기회를 노리는 강력한 적들에 둘러싸인 정권이 최소한 평화적인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일 수 있었던 완벽한 기회였다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하메네이는 국가가 처한 심각한 난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한 채낡아빠진 대결적 수사만을 되풀이하며 오히려 강경 노선을 강화했다.

12월 28일 이란 통화가치가 급락하자 테헤란의 바자르에서 시위와 파업이 터져 나왔다이는 최소 4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 악순환전기·수도·가스 부족유독한 대기 오염중산층과 노동계급의 피폐해진 생활 수준그리고 노동자·교사·연금 수급자들의 연쇄 파업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전례 없는 탄압

이전의 순환 국면들에서 보았듯이시위는 빠르게 확산하고 격화되어 곧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참여하게 되었다분노한 군중을 담은 디지털 영상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정부는 과거 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차단하며 나라를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시켰다.

초기 대응에서 하메네이는 유화와 위협을 섞은 태도를 보이며정권은 대중의 불만에는 귀를 기울이겠지만 소요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는 또한 시위대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작원들이 있어 이들을 폭력적 충돌로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후 폭력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는데대부분의 구호가 분명히 반정권적이었고 상당수는 정권의 전복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정부 청사모스크보안 인력을 겨냥한 폭력적 공격에 대한 보고도 있었지만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한편 정부군은 군중을 향해 발포했고처음에는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데 이어 수백 명결국에는 수천 명을 살해했다이 마지막 수치는 하메네이가 직접 확인했는데그는 그 가운데 일부는 정부 인력이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은 채 주장했다시위대에게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이 끔찍한 수치는이슬람 공화국의 잔혹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전례가 없다.

최근 시위의 또 다른 전례 없는 특징은 이슬람 공화국의 대안으로 군주제를 지지하는 구호가 등장했다는 점이다수십 년 동안 레자 팔라비즉 축출된 이란 국왕의 아들로 대표되는 군주주의는 주로 이란 디아스포라특히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었으며대중적 흐름이라기보다는 주변적인 경향에 머물러 있었다더구나 레자 팔라비는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가 옹호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극우 세력과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메시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미국 정부나 이들 국가의 개인 기부자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페르시아어 위성 텔레비전 방송들을 통해 이란 내부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최근 이란 시위에서 군주주의 구호가 결코 지배적인 것은 아니지만레자 팔라비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개입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호들은 외세의 영향과 결부돼 있다그는 지난해 여름 자국에 대한 공격을 환영했고이슬람 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한 외국의 군사적 지원을 분명히 선호하고 있다.

샤 만세와 같은 구호는 여전히 군주제에 대한 체계적인 지지를 의미하기보다는 현 정권을 향한 분노 어린 언어적 조롱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최근의 군주주의 부상은설령 그리고 특히 그것이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결코 가벼이 치부해서는 안 되며 단순한 반동적 환상으로 일축해서도 안 된다이란 외부에는 이에 필적할 만한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며이슬람 공화국은 수십 년 동안 자국 내부에서도심지어 체제 내 개혁 세력에게조차 어떤 대안의 출현도 체계적이고 폭력적으로 차단해 왔다.

막대한 과제

시위는 당장은 강제로 억제되었지만이슬람 공화국이 불안에 떨고 이제는 절망에 이른 사회에 강요한 정치적 교착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이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면 중대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지만정권은 그러한 가능성조차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트럼프가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 역시이란 현지에서는 시위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 탓으로 돌리는 정권의 억압적 대응을 강화하는 효과 외에는 아무런 가시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편 트럼프는 모순적인 수사를 더 고조시키며때때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통한 정권 교체를 암시하고 있다이는 극도로 위험한 구상으로이슬람 공화국은 이에 대응해 페르시아만에 있는 미국의 기지와 동맹국들을 공격하고 세계적인 석유 흐름을 교란하며 지역 전체에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전면전이 지닌 예측 불가능한 함의를 트럼프조차 인식하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그는 이슬람 공화국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실질적인 대안도 이란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동시에 이란 사회가 처한 이 참혹한 교착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로드맵의 기본 윤곽을 그려내는 일은여전히 이란 민중과 그들과 연대하는 진보적 국제 동맹들에게 남겨진 막대한 과제로 남아 있다.

[출처] Iran’s Protests Are a Turning Point for the Islamic Republic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아프신 마틴-아스가리(Afshin Matin-Asgari)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로스앤젤레스의 역사학 교수다. 그의 최신 저작은 ⟪제국의 축: 이란–미국 관계의 역사⟫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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