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인공지능(AI)을 ‘디지털 기술’로 생각한다. 더 똑똑한 챗봇, 더 빠른 자동화, 더 편리한 서비스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앞에서 확장을 막으려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디지털 노동에 맞서 조직을 만드는 노동자들, AI로 일자리를 잃은 뒤 다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까지.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AI는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 아니다. 데이터센터, 광물 채굴, 전력, 물, 그리고 디지털 노동을 통해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들은, 바로 그 ‘보이기 시작한 AI’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이 답하는 챗봇: 칠레 퀼리쿠라의 하루
2026년 1월 31일, 칠레 퀼리쿠라에서는 조금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은 챗봇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질문에 답하는 날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40명이 넘는 주민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전 세계에서 들어온 질문에 하나하나 답했다. 하루 동안 쏟아진 질문은 2만 5천 개가 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Quili.AI’. 겉으로 보면 단순한 이벤트 같지만, 목적은 분명했다. “이 일을 AI가 했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했을까?”
“한 마을이 물을 지키기 위해 하루 동안 ‘AI’가 되다.” 퀼리.AI는 Fundación Avina와 Corporación Ngen의 이니셔티브이다. (Quili.AI 웹사이트 메인 화면) 출처: Quili.AI
퀼리쿠라는 물 부족이 심각한 지역이다. 주민들에게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기술 시설이 아니라, 자신들의 물을 사용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들은 AI를 비판하는 대신, 직접 다른 방식을 보여주기로 했다. 예상 밖의 일도 벌어졌다. 사람들이 직접 답을 하면서, 기계적인 응답이 아니라 깊고 개인적인 대화들이 이어진 것이다. 주최 측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대화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하루의 실험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AI가 사용하는 자원, 그리고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칠레에는 현재 약 70개의 데이터센터가 있으며,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대규모 물·에너지 소비를 자원 착취로 인식한 지역 사회의 반대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AI 뒤에 있는 사람들이다”: 케냐의 데이터 라벨러들
AI가 학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누군가가 직접 분류하고, 검토하고, 수정한다. 케냐 나이로비에는 바로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지에 태그를 붙이고, 텍스트를 정리하고, 때로는 폭력적이거나 충격적인 콘텐츠를 반복해서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이 노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금은 낮고, 노동 환경은 열악하며, 정신적 부담은 크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일부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데이터 라벨러 협회(DLA)’를 만들고, 개별 노동자들이 감당해오던 문제들을 집단적인 의제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보수를 받지 못하는 구조,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콘텐츠에 대한 반복 노출, 그리고 이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는 환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은 공정한 임금과 노동 보호, 그리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 있는 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AI를 지탱하는 인간 노동이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혁신의 중심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터라벨러협회 웹사이트 메인 화면 출처: DLA
콜센터에서 거리로: 필리핀 노동자들의 대응
필리핀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회사 업무를 외부 업체(종종 해외)에 맡기는 서비스 산업) 산업은 오랫동안 필리핀 경제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런데 최근 AI가 이 구조를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한 콜센터 직원은 회사가 AI를 도입해 품질 관리 업무를 대신하게 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가 해고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들은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단체는 ‘Code AI’.
이 조직은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해고에 대한 보상과 권리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돕고, 관련 법안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문제를 겨우 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곳에서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AI는 한 번에, 그리고 빠르게 노동 시장을 바꾸고 있다.
Code AI 멤버들이 2025년 1월 25일 필리핀 Quezon City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모습. 출처: Rest of World/BPO Industry Employees Network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면?” 새로운 기본소득 실험
한편, AI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돈을 직접 지급하는 작은 실험도 시작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AI 배당금(AI Dividend)’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단순한 정부 정책이 아니라, 두 개의 비영리 단체가 함께 만든 실험이다. 하나는 AI로 인해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일반적인 애드보커시 단체인 '왓 위 윌(What We Will)'이고,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에 더 초점을 맞춘 'AI 커먼즈 프로젝트(AI Commons Project)'이다. 이들은 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이익의 일부를 사회로 다시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 이 실험은 규모가 크지 않다.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거나 소득에 영향을 받은 25~5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으며, 매달 1,000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받는다. 이 프로그램은 기술 기업이나 정부가 아니라, AI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를 문제로 인식해온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설계되었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현재 약 3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빠르게 확대해, 주요 AI 기업들의 참여를 통해 연말까지 300만 달러를 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AI 기술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새로운 대응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특히 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소득 보장 방식과는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장면들
이 글에서 소개한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칠레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지역의 물과 전기를 둘러싼 갈등의 중심이 되고, 퀼리쿠라의 주민들은 직접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AI의 ‘보이지 않는 비용’을 드러낸다. 케냐에서는 AI를 훈련시키는 데이터 라벨러들이 스스로를 “AI 뒤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필리핀에서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AI 도입 이후의 해고와 불안정한 노동에 맞서 조직을 만든다. 그리고 민간에서 시작된 국제적 실험에서는 아주 작은 규모지만, AI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는 실험까지 등장했다.
이 장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거대한 이론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질문이다. AI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그 비용과 책임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들은 “AI를 막자”는 구호라기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 기술이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그 대가는 누구의 삶에서 지불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각국의 거리와 노동 현장, 데이터센터 주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참고 기사]
[Rest of World] From Chile to the Philippines, meet the people pushing back on AI (2026-3-24)
[Gizmodo] A Program Is Now Sending Basic Income Payments to AI-Impacted Workers (2026-3-25)
[Blood in the Machine] The first basic income for workers impacted by AI has begun sending out $1,000 monthly payments (2026-3-25)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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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은 독립미디어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본인과 다음 세대를 위한 더 나은 삶의 조건에 대해 고민과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