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경제 성장 유지, 민주적 정당성 유지, 실질적인 기후 행동이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상충 관계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는 추구할 수 있지만,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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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료 공급의 절반이 봉쇄에 묶였고, 국방군이 투입됐으며, 정부는 사태가 저절로 끝나길 바라며 5억 500만 유로 규모의 지원금을 내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직접적인 계기는 분명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며칠 만에 아일랜드가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현실이 단기적 해결책이 없는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운송업자, 농민, 농업 계약업자들처럼 연료 비용을 생계에 직접 반영해야 하는 사람들은 한 세대 만에 가장 파괴적인 시위 운동에 나섰다.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과 케이티 홉킨스(Katie Hopkins)는 해외에서 이 위기를 증폭시켰고, 코너 맥그리거(Conor McGregor)는 이를 이용해 왜곡된 우익 비전을 홍보했다.
총리가 화이트게이트 정유공장 봉쇄를 “국가적 파괴 행위”라고 규정했을 때 그는 그 결과에 대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대 역시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비용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틀리지 않았다. 이들의 소득은 화석연료 소비에 의존한다. 이들은 저소득·고배출 부문에 속하며, 바로 이 조합이 정치적 문제의 핵심이다. 아일랜드 농촌 지역 상당수에는 대중교통이나 비탄소 기계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농촌 난방은 석유와 가스에 의존한다. 가격 충격은 전기차(EV)로 전환할 수도 없고, 이미 히트펌프를 설치한 것도 아니며, 30킬로미터 이내에 철도 노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농업 계약업자들은 수출 중심의 낙농 및 육우 시스템 속에서 연료 비용, 기계 대출, 계절적 변동성의 재정적 위험을 떠안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생계를 좌우하는 정책 결정에는 거의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
양측 모두 직면하지 못한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일랜드의 지속적인 화석연료 의존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가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투자에 전시 체제에 준하는 수준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10년 전부터 명백했다. 그러나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탈탄소화는 우리 시대의 핵심 정치 문제이며, 이는 아일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나 슈반더(Hanna Schwander), 시릴 베누아(Cyril Benoît), 팀 블란다스(Tim Vlandas)와 공동 집필한 신간 『성장, 민주주의, 기후 행동? 선진 자본주의의 새로운 트릴레마』(Growth, Democracy, or Climate Action? The New Trilemma of Advanced Capitalism)(Agenda Publishing, 2026)에서 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세 가지 목표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상충 관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 유지, 민주적 정당성 유지, 그리고 실질적인 기후 행동이라는 세 목표다. 이들은 그중 두 가지는 추구할 수 있지만, 세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반에서 지배적인 접근법인 우리가 말하는 ‘자유주의적 현상 유지(Liberal Status Quo)’는 탄소 가격제, 기술 보조금, 기업의 자발적 약속을 통해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성장과 민주주의는 유지하지만, 조용히 기후 행동을 희생시킨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은 트럼프에 의해 폐기됐다. 유럽 그린딜은 후퇴하고 있다. 기업들은 법적 소송을 통해 규제를 잇따라 막아선다. 자유주의적 현상 유지는 탈탄소화가 요구하는 분배 갈등을 회피한다. 이것이 이 체제의 핵심 특징이다.
대안인 ‘거대 녹색 국가’는 실행력 측면에서는 효과를 낸다. 중국은 지난해 청정에너지에 거의 1조 달러를 투자했고, 전 세계 태양광 생산의 80%를 통제한다. 그러나 녹색 에너지 설비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붙여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녹색당 당원이라면 누구나 말하듯이, 다수 연합 없이 추진하는 계획은 선거 주기를 버티지 못한다.
세 번째 선택지인 탈성장은 과학적으로는 일관성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어떤 선진 민주주의 국가도 탈성장을 내건 정강으로 집권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더 많은 것을 약속한다. 더 적은 것을 내세우는 플랫폼으로 선거에 나서면 패배한다.
세 입장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점은 정치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어려운 문제를 외부로 떠넘긴다. 시장이 해결할 것이다. 전문가가 해결할 것이다. 과학이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누가 피해를 보고, 누가 결정하며, 정당 경쟁과 선거 연합을 통해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연료 시위는 바로 그 공백을 무엇이 채우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극우는 좌파보다 더 빠르게 기후 정치의 본질을 이해했다. 이들은 기후 정책을 평범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엘리트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Gilets jaunes), 네덜란드의 농민시민운동(BBB), 독일을 위한 대안(AfD), 마가(MAGA)가 그렇다. 그리고 이제 아일랜드에서도 M50 고속도로와 화이트게이트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국제 극우 세력은 72시간 만에 아일랜드 농촌 지역에서 청중을 확보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구조적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의 루카스 샹셀(Lucas Chancel)이 제시한 탄소 불평등 데이터에 따르면, 모든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하위 50% 인구는 이미 2030년 1인당 배출 목표 수준에 도달했거나 그에 근접해 있다. 반면 상위 10%는 약 90%를 감축해야 한다. 연간 1인당 10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CO₂)를 배출하는 상위 1%는 거의 100% 가까운 감축이 필요하다. 탄소 불평등은 부차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21세기 분배 문제의 핵심이다.
화이트게이트를 봉쇄한 시위대 자체가 기후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이들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된 것은 수십 년에 걸친 정책 실패의 결과다. 농촌 대중교통도 없고, 국내 에너지 안보도 없으며, 진지한 주택 개보수 프로그램도 없고, 전환의 부담을 떠안으라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매력적인 대안도 없다.
이 트릴레마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날카로운 충돌은 관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해체한 계획 역량을 다시 구축하고, 집중된 기업 권력에 맞서며, 부유층이 가장 큰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부유층을 위한 탈성장, 나머지를 위한 녹색 성장”이라고 부른다. 이것만이 민주적 다수파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배 프레임이다.
진보 정당들이 이러한 연합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극우는 계속해서 다른 선택지를 제시할 것이다. 즉 전환에 참여하는 대신 전환으로부터 보호받겠다는 약속이다. 그 길의 끝에는 단순한 도로 봉쇄보다 훨씬 더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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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단 리건(Aidan Regan)은 더블린대학교(UCD·University College Dublin) 정치·국제관계학부의 정치경제학 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