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참사에도 여전한 “죽음의 발전소”…다단계 하청 구조, 누가 왜 붙드나

고 김충현 1주기 토론회, 노무비 착복·위험 전가 실태 지적…“정부·원청, 직접고용 약속 이행해야”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충현 씨의 죽음 이후, 현장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의 투쟁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짚고 하청노동자 직접고용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이끌어냈지만, 정부와 원청은 여전히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노무비 착복 등 중간착취로 이윤을 나눠 갖는 원하청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김충현 중대재해 1년, 현장은 바뀌었나?” 토론회 현장. 참세상 류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빛을 만들어온 2차 하청 비정규직 김충현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앞서 같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홀로 일하다 숨진 뒤에도 거듭된 참사였다. 발전산업 민영화 정책 속에 공고해진 다단계 하청 구조에 뿌리를 두고 위험은 “더 아래로, 아래로” 흘러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노동자에게 가야 할 노무비가 하청 단계마다 착복되어 원·하청의 이윤으로 흡수되는 중간착취 구조도 함께 굳어졌다. 반복되는 죽음에도 ‘위험의 외주화’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고, 하청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견디며 발전소 현장에서 빛을 밝히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 현장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는 파업과 노숙농성, 대규모 행진 등 고된 투쟁을 이어가며 더 이상 누구도 일하다 다치거나 죽지 않는 발전소 현장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약속을 이끌어냈다. 정부와 원청 발전 공기업 등이 참여한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이하 고용·안전 협의체)는 한전KPS 하청노동자 직접고용과 노사전협의체 구성, 발전소 노동자 고용안전 대책 등을 합의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죽음에서 출발한 이 약속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고 김충현 대책위)는 28일 ‘김충현 중대재해 1년, 현장은 바뀌었나?’ 토론회를 열고 지난 1년 발전소 현장의 실태와 이후 과제를 짚었다. 이날은 고용·안전 협의체가 정한 화력 분야 직접고용 완료 시한인 5월 31일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합의에 따르면 화력 분야 노사전협의체 협의를 3월 31일까지 마치고 직접고용을 5월 31일까지 완료해야 했지만, 현장에서는 노사전협의체 구성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토론회에서는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 이후 부분적인 현장 개선이 있었다는 평가도 확인됐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사고를 낳은 구조적 원인, 곧 다단계 하청과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국면에서 하청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더 커지고, 발전산업 민영화와 외주화 속에 만들어진 하청 구조가 폐쇄의 비용과 위험까지 현장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거듭된 죽음에도 여전한 위험과 차별, 근본적 해결 출발은 직접고용

전주희 고용·안전 협의체 간사는 발전노동자 1만7천228명이 참여한 실태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고용형태에 따라 위험과 노동조건이 다르게 배분되고 있음을 짚었다. 하청으로 갈수록 위험하고 힘든 일이 집중되고 사고 경험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2차 협력업체 노동자의 87.3%는 자신이 하는 일이 2인 1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계약 구조 탓에 안전조치가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됐다.

고용·안전 협의체가 직접고용을 핵심 합의로 삼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김용균 특조위 이후 안전설비와 제도 개선이 논의됐지만,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책임을 여러 단계로 쪼개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현장의 위험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직접고용은 단지 노동자의 소속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작업 지시와 안전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하고 노동자가 위험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출발점으로 제시됐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법원과 고용노동부 판단도 직접고용 요구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한전KPS 하청노동자들이 한전KPS 조직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지휘·통제를 받아 일했다고 판단했고, 고용노동부도 태안화력발전소 한전KPS 협력업체 2곳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보고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린 바 있다. 공 실장은 정부 역시 고용·안전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확인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 검토가 아니라 합의 이행을 위한 책임 있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위험을 멈출 권리, 하청 구조 안에서 멈춰 섰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였던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청 구조가 현장에서 어떻게 위험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했다. 정철희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은 발전소 정비 현장이 고전압 설비와 회전체, 고온·고압 배관이 얽힌 위험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하지만,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는 원청의 지시와 현장의 판단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늦어지거나 흐려진다.

위험을 이유로 작업중지를 요구해도, 하청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정 지연과 일정 준수에 대한 압박인 경우가 많았다. 정 분회장은 현장에서 “공정을 왜 지연시키느냐”,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말이 돌아온다고 했다. 계약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하청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은 법에 적힌 권리로 남기 쉽다. 정 분회장은 “직접 고용은 단순한 소속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위험 업무를 외주화한 구조를 바꾸고 책임과 안전관리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의 다단계 하청구조, 왜 바뀌지 않나

최진일 새움터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활동가도 김충현 노동자의 사고가 “김용균 사건보다도 한 단계 더 아래인 2차 하청” 구조에서 벌어진 죽음이었다고 짚고, 발전소를 소유한 한국서부발전, 1차 하청이자 실질적 작업지시 주체인 한전KPS, 2차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는 안전관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2차 하청업체가 자체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기 어렵고, 원청과 1차 하청의 위험성 평가와 합동점검에서도 2차 하청은 배제돼 왔다는 것이다.

최 활동가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바뀌지 않는 배경에, 이 구조가 유지되기를 원하는 이해관계가 있다고 봤다. 비용은 낮추고 책임은 흐릴 수 있는 구조가 일부 주체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2차 하청노동자를 안전관리의 바깥에 두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위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무비 중간착취가 떠받치는 하청구조

관련해서 이날 토론회에서 노무비 착복과 중간착취 문제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쟁점으로 다뤄졌다. 발전소 정비 업무의 위험과 책임은 현장에 남아 있지만, 계약 구조 안에서는 그 노동이 낮게 평가되고, 노동자에게 가야 할 노무비 일부가 하청 단계에서 이윤으로 흡수된다는 지적이다.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발전설비 정비를 맡는 하청노동자들이 계약서상으로는 낮은 단가의 ‘보통인부’로 산정돼 왔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주설비와 보조설비를 아우르는 전문적인 정비 업무를 수행하지만, 노무비 산정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그와 같은 숙련과 전문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또한 하청업체 산출내역에서 이윤이 0원으로 표시된 사례를 언급하며, 업체로부터 “하청노동자들의 직접노무비에서 이윤을 창출한다”는 노골적인 답변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서부발전이 소유·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전설비 정비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와 2차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 이뤄져 왔고, 고 김충현 노동자도 이 같은 2차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사진은 한전KPS와 또 다른 2차 하청업체 계약 자료로, 공식 계약서상 이윤율 10%와 실제 산출내역서상 이윤 0%의 차이가 노동자 직접노무비를 착복해 이윤을 확보하는 중간착취 구조의 사례로 제시됐다. 출처: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김 지회장은 노무비 착복이 “단지 노동자 개인의 경제적 빈곤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은 숙련공 이탈, 노동강도 강화, 안전사고, 발전소 정비 부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인정하고 원청이 지급한 우리의 정당한 노동 가치를 중간에 서류 몇 장으로 가로채는 이런 약탈적 구조”를 끊어야 한다며 원청 노무비 직불제 전면화와 중간착취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직접고용 합의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민간 정비업체와의 관계, 이른바 ‘상생’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를 민간업체의 역할을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생’의 전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문제로 다뤘다. 하청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안전 책임의 공백이 유지되는 방식이라면 그것을 상생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취지다.

고용·안전 협의체가 직접고용을 핵심 과제로 삼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임금, 고용, 숙련, 안전은 현장에서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노무비가 중간에서 사라지면 임금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숙련과 인력이 함께 약해지고, 책임이 하청 단계마다 나뉘면 사고 예방과 작업중지의 권한도 약해진다. 직접고용은 이 연결고리를 끊고 발전소 정비 업무의 책임과 안전관리 체계를 공적으로 세우기 위한 출발점으로 제시됐다.

토론회 공간 한 켠에 마련된 추모 사진전에서,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진을 바라보는 동료 현장 노동자의 모습. 참세상 류민.

발전소 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전환 시기 모두의 존엄한 노동 위한 첫 시험대

토론회에서는 한전KPS 하청노동자 직접고용이 발전소 하청노동자 몇 백 명의 고용 안정만을 위한 대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됐다. 석탄화력 폐쇄와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는 시기, 이 합의가 어떻게 이행되느냐는 전환 시기 일과 삶의 위기를 겪을 노동자들의 존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가늠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주희 간사는 토론회 말미에 이같은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한편, 직접고용 등에 대한 협의체의 합의의 이행이 형식적 전환에 그쳐서는 안 되며, “노동자들이 존엄을 지키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합의가 실제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정부와 원청의 결단을 촉구하는 사회적 힘,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도 짚었다. 

고 김충현 대책위는 이 같은 사회적 힘을 모아나가기 위해 30일 오후 2시 서울 보신각에서 고 김충현 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를 연다. 대회 뒤 참가자들은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고 김충현 대책위에 함께하는 114개 노동·시민사회·종교·정당·연대단체의 뜻을 담아 고용·안전 협의체 합의문 114부를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이번 대회가 “다시는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확인하는 공동 행동”이라며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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