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봉쇄를 지속하는 가운데, 국가 공기업 한국석유공사가 자회사를 통해 팔레스타인 해역 천연가스 탐사 사업을 벌여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전쟁범죄와 자원 약탈에 공모하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천연가스 훔치지 말라!”며 “한국석유공사와 이재명 정부는 전쟁범죄 국가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가자지구 자원 수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긴급행동은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 집단학살을 멈추기 위해 구성된 연대체로 현재 한국 시민사회 34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가자지구 천연가스 수탈 규탄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문제가 되는 사업은 이스라엘 정부가 2023년 10월 가자지구 해역을 포함한 해상 유전 및 가스전 탐사권 12개를 각국 자원개발사에 판매한 데서 비롯됐다. 이 중 6개 지역 탐사권을 한국석유공사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낙찰받았는데, 해당 지역의 약 60%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영해 및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한다.
때문에 한국석유공사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해역에 해당하는 곳에서 이스라엘로부터 천연가스 탐사 면허를 취득하고 보유하는 것은 단순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침해하는 자원 약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긴급행동은 이 행위가 유엔해양법협약, 헤이그협약, 제네바협약, 로마규정 등 대한민국이 비준하거나 준수해야 할 국제법 질서에 어긋나며, 나아가 집단학살과 점령 체제에 대한 공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컨소시엄에 함께 참여했던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Eni(에니)는 동지중해의 불안정한 안보 상황 등을 이유로 지난 3월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다나페트롤리엄은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니가 갖고 있던 가스전 운영권까지 넘겨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김지혜 플랫폼C 활동가는 “이탈리아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벌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총파업 등의 힘으로 에니가 철수를 결정한 이후에도 한국석유공사의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은 이 도둑질을 멈추기는커녕 사업을 더 확장하려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첫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참세상 류민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이날 발언에서 “5월 15일은 팔레스타인 대재앙의 날, 나크바”라고 환기하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난민이 된 역사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봉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자원 수탈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식민 지배와 전쟁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짚었다.
명숙 활동가는 “에너지는 제국주의 지배의 주요한 도구”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대안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고 병원 운영과 생존에 필요한 전기·연료를 통제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식민 권력에 종속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가스전 보안을 명분으로 이스라엘 해군이 팔레스타인 해안을 불법 순찰하고 어부들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천연가스 개발은 그 자체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점령 체제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국석유공사와 한국 정부가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긴급행동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석유공사를 규탄하는 서명 캠페인을 벌여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모았고, 지난해 11월 울산 한국석유공사 본사 앞에서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 규탄 국제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올해 3월 26일에는 1,480명의 청구인 서명을 모아 감사원에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5월 3일에는 팔레스타인, 말레이시아,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활동가들과 함께 이스라엘 에너지 약탈과 기후 파괴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 웨비나도 진행했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가운데). 참세상 류민.
전날 울산 한국석유공사 본사 앞 행동에 참여한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들과의 면담 내용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면담과 비교해 한국석유공사의 태도 변화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의 연대와 실천이 공사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는 여전히 “공기업이기 때문에 세금을 낭비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철수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뎡야핑 활동가는 이를 두고 “집단학살이 시작된 뒤 탐사 라이선스를 받고 이스라엘에 라이선스비를 낸 순간부터 이미 세금 낭비는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낭비로 끝나면 다행이다. 지금 전범국가의 공범이 되게 생겼다”며, 향후 발생할 국제법적 책임과 기업 평판 훼손, 민형사상 위험을 고려하면 지금 철수하는 것이 오히려 공적 책임에 부합하며 세금 낭비를 줄이는 일이라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공사와 정부에 실제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며 “지금이 기회다”, “앞으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석유공사와 정부를 더욱 압박해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자”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보라(첫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참세상 류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보라는 다나페트롤리엄의 사업 참여가 국제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제사법재판소가 2024년 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이 집단학살방지협약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잠정조치를 명령한 점, 같은 해 7월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고 판단한 점을 언급했다. 이러한 판단 이후 국가와 기업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과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경제·교역 관계를 중단해야 할 의무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산업의 특성에 대해서도 짚었다. 에너지는 민간용과 군사용이 구분되기 어려운 이중용도 자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에너지 부문과 거래하는 기업은 점령과 전쟁범죄에 공모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와 거래할 뿐 아니라,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해역으로 인정되는 구역에서 가스 탐사를 계획하며 약탈 혐의를 스스로 추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더 늦기 전에 컨소시엄에서 탈퇴하고 이스라엘 정부와의 거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유에스더 활동가(첫 줄 가운데). 참세상 류민.
환경운동연합 유에스더 활동가는 “점령과 학살 위에서 이뤄지는 자원 개발은 결코 정당한 에너지 사업이 아니라 약탈”이라며,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면서도 공기업이 점령 체제와 결합한 해외 화석연료 개발에 참여하는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에스더 활동가는 또한 전쟁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군사주의는 화석연료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점령과 식민주의는 언제나 토지와 자원 수탈로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에너지 패권, 자원 수탈이 맞물려 작동해왔다며 “기후위기를 만든 바로 이 화석연료 중심 체제를 유지한 채 우리는 결코 정의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정의동맹 은혜 공동집행위원장(첫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참세상 류민
기후정의동맹 은혜 공동집행위원장도 “에너지는 전쟁을 뒷받침하는 필수적인 연료인 동시에, 전쟁을 야기하고 지속하는 핵심 이해관계이자 동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지상군을 투입하며 집단학살을 본격화한 시기에 팔레스타인 해역 가스전 탐사 라이선스를 발행했다는 점을 짚으며 “무엇을 위한 침략과 수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은혜 공동집행위원장은 에니가 빠진 지금 해당 컨소시엄에는 한국석유공사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과 이스라엘 라티오 에너지만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여기서 빠진다면 이 구역의 컨소시엄은 바로 무너지는 것”이라며, 한국석유공사의 철수가 단지 상징적 조치가 아니라 실제 약탈 사업을 멈춰 세울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석유공사의 해외 화석연료 개발이 기후위기 시대의 공적 책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이미 숱한 혈세 낭비 논란을 낳아온 한국석유공사가 막대한 재원을 들여 또다시 전쟁범죄와 식민주의적 자원 수탈에 공모하는 해외 가스 개발에 나설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을 공공재생에너지 등 신속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안을 구현하는 일에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 공동집행위원장은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적 에너지 개발에 반대한다”며,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팔레스타인 바다를 헤집는 약탈적 에너지 추출을 중단시키고, 이 땅에서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가자지구 자원 수탈하는 한국석유공사 규탄 행동 주간 웹포스터
한편 긴급행동은 5월 9일부터 전주, 순천,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와 다나페트롤리엄 본사가 위치한 스코틀랜드 애버딘 등에서 ‘가자지구 자원 수탈하는 한국석유공사 규탄행동 주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시민사회의 압박이 에니의 컨소시엄 철수를 이끌어냈듯, 한국 시민사회와 국제연대의 지속적인 행동도 한국석유공사와 다나페트롤리엄의 철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16일에는 나크바 78주년을 맞아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빼앗긴 땅 팔레스타인으로 마침내 돌아가리라’ 특별 집회가 열린다. 집회는 오후 2시에 시작되며,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팔레스타인인 타렉,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가자 봉쇄를 깨기 위한 항해에 오른 활동가들이 발언에 나선다. 가수 김목인의 특별 공연도 예정돼 있다. 주최 측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를 점령하고, 나머지 땅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분할해 78년간 식민점령과 집단학살을 지속하고 있다”며 “빼앗긴 땅을 되찾아 돌아가겠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다짐에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나크바 78주년 특별 집회 웹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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