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심의하는 가운데, 노동계가 구체적인 제도 설계안을 담은 자료집을 공개하며 “도급노동자 최저임금은 당장 도입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도입방안'은 그동안 경영계와 정부가 제기해 온 “노동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 “제도 설계가 어렵다”는 반론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방안은 뉴욕·시애틀 등 해외 사례와 국내 안전운임제 운영 경험을 근거로 시간과 비용을 산정해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이 방안을 4일 열린 3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표했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아니어도 최저임금 가능”
민주노총은 첫 번째 쟁점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반박한다.
민주노총은 철도매점 운영자와 유튜버 사례를 언급하며 법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사례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저임금법은 근로기준법과 별도의 법체계이며, 최저임금위원회가 도급노동자 최저임금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 혼란보다 불공정 경쟁이 더 문제”
경영계가 우려하는 시장 혼란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본래 역할이 저임금 경쟁을 억제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비용을 외부화하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최저임금 적용이 오히려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시간’과 ‘비용’ 계산
민주노총이 제시한 모델의 핵심은 일반 노동자의 시급 계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은 먼저 사회보험료와 업무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산정한 뒤, 대기시간을 포함한 실제 노동시간을 계산하고,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최저 보수를 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쟁점인 대기시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민주노총은 “배달 앱에 접속해 콜을 기다리는 시간 역시 노동시간”이라고 규정하며, 뉴욕시와 시애틀의 제도를 근거로 대기시간을 포함한 최저임금 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업종별로 다른 산식 제안
민주노총은 모든 직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별도 산식을 제시했다.
배달·대리운전·택시 등 이동 노동의 경우 시간과 거리를 함께 고려하는 ‘모빌리티 모델’을 제안했다. 건당 최저임금을 시간계수와 거리계수를 합산해 산정하는 방식이다.
학습지교사나 방문교사 등 방문노동자는 영국 농업 분야에서 활용하는 생산량 기준 최저임금 모델을 참고해 건당 단가를 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문점검 노동자의 경우 이미 하이케어솔루션 단체협약에서 건당 수수료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국도 이미 안전운임제 경험”
민주노총은 한국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이미 운영된 경험이 있다고 강조한다.
자료집은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를 대표 사례로 제시했다. 안전운임제 역시 고정원가와 변동원가, 적정 소득을 계산해 운임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으며, 이는 사실상 도급노동자 최저임금과 유사한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복잡해서 제도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로 제시됐다.
플랫폼 데이터 공개가 최대 쟁점
제도 도입의 가장 큰 과제로는 데이터 확보 문제가 꼽힌다.
민주노총은 뉴욕시 사례를 들어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시간·주행거리·수입 정보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EU도 플랫폼 노동 관련 지침을 통해 알고리즘 정보와 노동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어 제도 설계에 필요한 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논쟁에서 ‘적용 범위’ 논쟁으로
이번 민주노총의 문제 제기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의 성격이 기존 임금 수준 논쟁에서 적용 대상 논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민주노총은 자료집 첫 장에서 “40년의 기다림, 870만의 열망,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제도 안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올해 심의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4일 열린 3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현재 870만에 달하는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도둑맞은 이름과 임금을 되찾아 주는 것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지난 수년간 이어져 온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의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싸움에 ‘더 기다려라, 알아서 살아남아라’라는 식의 결론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실제로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의결할 경우, 배달라이더·대리운전기사·방문점검원·학습지교사 등 수백만 명의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제도 변화가 될 전망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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