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카이스트, "집단학살 공범"과 문화유산 논하나?

한국 시민사회,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 CIPA 심포지엄 참여 규탄나서

“전쟁과 학살에 연루된 기관에 우리가 무대를 내어줘도 괜찮습니까? 테크니온과 같은 대학이 학술 교류의 장에 서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폭력과 학살을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문화유산 보존'을 논하는 자리에,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데 가담하는 기관을 초대하는 것이 과연 옳습니까? …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마십시오. 우리 학문이 누군가의 무덤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KAIST 연구자 모임’의 김태영 씨 발언 중에서

25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CIPA(국제문화유산기록위원회) 국제심포지엄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이 참여하는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모였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24일 오전, CIPA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Technion IIT)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범”이라며 이들이 주최하는 워크숍을 심포지엄 프로그램으로 편성한 조직위원회와, 심포지엄 공동주관 단위에 “전쟁 범죄 연루 기관과의 모든 학술 교류를 동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이번 CIPA 국제심포지엄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의 기록과 보존”을 주제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의 공동 주관하에 25일부터 29일까지 53개국에서 500여 명이 참가하는 42개 세션을 진행한다.

CIPA, 이스라엘 테크니온 참여 규탄 기자회견.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제공, Studio R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이스라엘은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지를 뿐 아니라 교육 시설과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는 장본인”으로 “가자지구의 모든 학교를 파괴하고 수많은 교수, 교사, 학생들을 살해했다”고 환기했다.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ICOMOS) 팔레스타인 지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35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 중 3분의 2 이상을 파괴했다고 밝혔다”는 사실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은 이러한 “문화유산 파괴와 집단학살 전쟁 범죄에 참여하는 기관”이라 짚고는, 이같은 테크니온이 CIPA 심포지엄에서 “문화유산 보호와 관련한 워크숍을 주최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심포지엄을 공동 주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현재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국가기관”이라며 “한류 열풍의 중심에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런 의무는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공동 주관 단위로서 조직위원회와 함께 “테크니온의 심포지엄 참가를 즉각 취소”하고, “테크니온의 워크숍에 대한 모든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262개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연대체로,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과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 종식을 위한 여러 국제적 실천을 함께하고 있다.

CIPA, 이스라엘 테크니온 참여 규탄 기자회견. 긴급행동 제공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팔레스타인 타르시하 출신 고고학자인 마흐무드 하와리 베들레헴 대학 교수가 보내온 규탄 성명도 소개됐다. 하와리 교수는 팔레스타인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이번 CIPA 학회의 후원기관이자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자문 기구 역할을 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전문성을 발휘해 온 연구자다.

하와리 교수는 성명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CIPA 2025에서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을 배제하라는 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테크니온 대학은 드론과 AI 등 민간인을 살해하고, 대학과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군산복합체와의 연구 및 협력을 통해 가자에서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직접 공모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동은 반인도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CIPA와 ICOMOS의 사명과 근본적으로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같은 “테크니온 대학을 CIPA 2025에서 초청하는 것은 “집단학살, “문화학살” 및 “학술학살”, 즉 교육 기관과 대학, 고고학 유적지와 유물, 문화유산의 기억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표적화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관을 정당화하는 것”이라 짚고는, “학술적 자유와 문화유산은 가자지구의 학생, 학자, 공동체의 무덤 위에서 보존될 수 없다”면서 “CIPA와 후원 단체들, 특히 ICOMOS가 전쟁 범죄에 대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온 대학의 워크숍을 취소하지 않은 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CIPA, 이스라엘 테크니온 참여 규탄 기자회견.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제공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KAIST 연구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김태영 씨도 “테크니온을 비롯한 이스라엘 대학들은 단순한 방관자일 뿐 아니라, 집단학살의 적극적인 공모자”라면서 “이스라엘군은 라벤더(Lavender)라는 AI 시스템을 이용해 불과 24시간 만에 37,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 연관자’로 분류하였고, 분류된 사람들의 집은 폭격 대상이 되었다”고 환기하고 “테크니온 대학이 군사 기업 및 군과 협력해 연구해 온 자율 무기, 드론, AI 기반 매핑 기술이 팔레스타인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잔혹한 현실을 비판했다.

김태영 씨는 “학문은 생명을 살려야지, 살상을 정교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대학들의 이스라엘 학술 보이콧과 연대해 “KAIST도 생명 편에 설 것인지, 죽음의 기술과 손잡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짚고는, “우리 학문이 누군가의 무덤이 되게 하지 말라”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문화는 무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 전범 대학 테크니온을 CIPA 2025에서 제외하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범 테크니온을 CIPA 2025에서 제외하라”고 함께 외치며,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학술보이콧 등 국제적 연대를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인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과 전시관 사이 계단에는, 커다란 팔레스타인 국기가 펼쳐졌다.

CIPA, 이스라엘 테크니온 참여 규탄 기자회견.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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