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인 21일,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는 "과학기술이 가자 집단학살(Genocide)의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과학기술인들이 한국과 이스라엘의 과학기술교류 동결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번 선언은 이공계 대학원생 네 명의 제안으로 시작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정치적 입장 발표가 쉽지 않은 연구자들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인 121명이 선언에 참여했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등 6개 과학기술계 단체를 포함한 25개 시민사회단체, 시민 410명도 함께했다.
선언의 제안자들은 "과학과 전쟁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서 "끔찍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과 과학기술자의 책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인들의 한국-이스라엘 과학기술교류 동결 촉구 기자회견. 참세상
박재용 ⟪노동자가 만난 과학⟫ 저자는 이날 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발언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AI 기반 표적 선정 시스템을 대규모로 도입해 전례 없는 속도로 민간인과 건물을 공격하고 있다"면서 "라벤더(Lavender)는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남성을 인공지능이 잠재적 표적으로 분류해 암살 대상으로 추적하고, 웨얼 이즈 대디(Where is daddy?)는 표적 인물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그가 가족과 함께 집에 있을 때 공격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가스펠(The Gospel)은 건물이나 이 인프라를 공격 추천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이러한 시스템은 이스라엘 군이 수년간 축적한 대규모 감시 데이터와 결합되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량 학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한국과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협력 역시 인공지능, 감시, 무기 기술 등 민감한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 협력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와 팔레스타인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협력 동결은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연대를 실천하는 첫걸음이자 과학기술인의 윤리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행동"이라 강조했다.
김강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은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이후에 선 우리는, 우리가 생산한 정보와 지식이 지식은 사회와 유리된 진공 상태에 있지 않으며 언제든 전쟁과 학살에 악용될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식 생산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저항하는 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 이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대한 집단 학살을 규탄하며 한-이 과학기술 교류를 동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이야기했다.
유스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활동가는 "한국의 대학들과 연구소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기술을 개발하는 기관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무기 기업인 이스라엘 항공 우주 산업(IAI)은 한국의 기술 박람회에 초청되고 있고, 한국-이스라엘 R&D 펀드는 AI, 통신, 반도체, 감시 기술 등 군사 인프라에 직접 연결되는 협력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스라 활동가는 이어서 공동행동은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점령과 감시, 분단의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 와서 과학이 어떻게 무기가 되고 억압이 동원되는지, 삶, 기억, 존엄이 어떻게 쓰레기처럼 여겨지는지 안다"면서 "그래서 침묵하지 않겠다. 저희의 교실과 연구실이 또 다른 민족의 박해에 쓰이게 두지 않겠다"고 힘 주어 말했다.
"과학기술이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참세상
자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우리는 지금 당장 총칼로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에 맞설 수 없다. 심지어 무기를 보내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협력을 당장 끊어낼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결단은 더 이상 도덕적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면서 이스라엘의 점령과 아파르헤이트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을 판결한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과 유엔 총회의 이스라엘 제재 결의안 이후 이어진 국제 사회 곳곳의 이스라엘 보이콧 행동을 환기했다.
자아 활동가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7만 2천여 명 규모의 대학교수 협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범죄를 비판하며 보이콧과 투자 철의 제재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베이징 대외 경제 경영대학은 이스라엘 캠퍼스를 폐쇄했으며, 미국의 사회학 협회는 군수 무기 회사에서 투자를 철회할 결정을 내렸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은 이스라엘의 무기 공급 단계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고, MIP 대학생위원회는 이스라엘 군 연구 자금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는 84%의 교직원의 지지로 이스라엘 학생 학교 보이콧을 위한 사흘간의 역사적인 파업을 벌였다. 이탈리아 중동학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범죄에 연루된 이스라엘 학술 기관과의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했고, 스페인에서는 76개 대학이 속한 총장 협의회가 모든 이스라엘 대학과의 협력을 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자아 활동가는 "오늘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이 이 흐름에 역사적으로 동참했다. 한국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이스라엘과 FTA를 체결한 나라로, 우리는 이제 공모자가 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더 분명한 연대의 책임이 요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짚고는 "오늘의 선언은 그 책임을 자각하는 우리의 첫걸음"이라며 "멈추지 말고, 우리의 연구실과 회의실, 세미나와 논문과 투자와 교육의 모든 지점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우리의 삶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실천적 연대로 보여주자"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참세상
선언에 참여한 이들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한국과 이스라엘은 1994년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2022년 양자 협력 협정을 체결하여 연구 기금을 조성하고 한-이 산업연구개발재단을 통해 농업과 통신, 에너지, 반도체, 교통수단, 보건 분야 등 전 산업에 걸쳐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산업부가 주관한 한-이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에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IAI(Israel Aerospace Industries)가 직접 참석해 협력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연세대학교에는 재단과 별도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과 협력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성명은 "국가 총력전 상황에서는 모든 과학기술이 전쟁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고, 이스라엘은 최소한의 윤리를 무시하고 집단학살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산업을 우리나라가 함께 발전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한국과 공동 개발할 기술이 전쟁과 학살에 이용되었을 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울러 "우리 한국 과학기술인들은 자신의 연구가 반인도적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연구자들에게 다음을 제안한다: 이스라엘이 휴전에 다시 응해 영구적인 휴전 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만이라도, 협력 사업 진행과 지원을 멈추자.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집단학살 중단하라. 한국 정부와 기업, 대학은 이스라엘과의 과학기술협력 동결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