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언론, “가자지구 언론인 표적 살해” 규탄하며 ‘검은 화면’ 물결

“이것은 제 유언이자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살해하고 제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 저는 매우 세세한 아픔을 겪고 고통과 상실을 여러 번 맛보았지만 왜곡과 허위 없이 진실을 전달하기를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 여러분이 사슬에 얽매여 침묵당하지 않기를, 국경에 제약받지 않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빼앗긴 우리 고향땅 위로 존엄과 자유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한 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 지난달 10일, 이스라엘 군에 살해당한 〈알자지라〉 소속 아나스 알-샤리프 기자의 유언 중에서

전 세계 언론이 9월 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언론인 표적 살해를 규탄하며 공동 행동에 나선다.

국경없는기자회(RSF)와 국제 비영리 캠페인 단체 아바즈(Avaaz)가 기획·제안한 이번 공동행동에는 전 세계 70 여 개 나라에서 250개 이상 언론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도 〈참세상〉을 비롯해 〈경향신문〉, 〈뉴스민〉,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시사IN〉, 〈프레시안〉 등이 함께한다. 각국의 언론들이 가자지구의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에 연대하며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맞선 항의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2023년 10월 7일 이후 지금까지 220명의 기자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지난 23개월간 유엔의 통계로는 최소 247명, 〈알자지라〉의 집계로는 270명 이상의 기자들이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같은 기간 197명의 언론인·언론 종사자가 숨졌고, 이들 중 189명이 팔레스타인 기자라고 밝혔다.

왓슨 국제공공정책연구소는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자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미국 남북전쟁,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6.25 전쟁), 베트남 전쟁(캄보디아·라오스 분쟁 포함), 1990~200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희생된 기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자들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8월 25일, 가자지구 남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의료시설인 나세르 병원을 폭격해 기자 5명을 포함해 20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학교나 병원 등 민간 시설을 먼저 폭격하고, 이후 의료진과 구조대원, 기자들 등이 현장에 도착하면 재차 폭격하는 이른바 “더블 탭(double tap)” 전술을 썼다.

앞선 10일에는 가자지구 북부를 지키며 전생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려온 〈알자지라〉 소속 기자 아나스 알-샤리프를 비롯해 6명의 기자를 표적 살해했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알-샤리프가 "하마스 내 테러 세력의 수장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해왔으나, 기자 본인은 자신이 정치적 소속을 갖고 있지 않다고 수 차레 밝혀왔으며 언론인보호위원회 등에서도 이스라엘의 이같은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비판해왔다.

알-샤리프 기자는 생전에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살해하고 제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자신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세상에 공개하기를 부탁하며 유언을 남겼다.

그는 유언에서 “저는 매우 세세한 아픔을 겪고 고통과 상실을 여러 번 맛보았지만 왜곡과 허위 없이 진실을 전달하기를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환기하고는, “여러분이 사슬에 얽매여 침묵당하지 않기를, 국경에 제약받지 않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빼앗긴 우리 고향땅 위로 존엄과 자유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한 다리가 되어 달라”고도 당부했다.

〈알자지라〉 소속 기자 아나스 알-샤리프의 모습.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스라엘 군은 또한 외신 기자들의 가자지구 진입과 취재를 금지해왔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는 현대 전쟁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 지적하고, “이 같은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기자들은 포화 속에서 전쟁을 홀로 보도하도록 방치”됐고 “추방과 굶주림, 지속적인 생명의 위협에 놓여 있다”며 “이는 언론의 자류와 알 권리에 대한 정면 공격”이라고 짚었다.

이같은 이스라엘 군의 폭력에 맞서 전 세계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기자들의 보호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이 저지른 범죄의 불처벌 종식 △외신 기자들에게 가자지구에 대한 독립적 접근 보장. △세계 각국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대피를 원하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며 이번 공동 행동에 나섰다.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신문 등 인쇄 매체는 맨 앞장의 전면 혹은 일부를 검은색 바탕으로 채우고, TV와 라디오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검은 화면에 공동행동 메시지를 송출한다. 온라인 매체는 홈페이지에 검은색 배너를 내걸고, 각 언론사와 개별 기자들 모두 소셜미디어 채널 등에 ‘#ProtectJournalistsInGaza(가자지구 언론인 보호)’, ‘#LetReportersIntoGaza(기자를 가자지구로)’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공동행동 메시지를 너르게 알린다.

공동 메시지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에서 계속 기자를 살해한다면, 당신에게 뉴스를 전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 입니다(At the rate journalists are being killed in Gaza by the Israeli army, there will soon be no one left to keep you informed)”이다.

티보 브뤼탱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이 “다만 가자에 대한 전쟁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 전쟁에서 “기자들은 표적이 되고, 살해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없다면 누가 기근을 알릴 것인가, 누가 전쟁범죄를 폭로할 것인가, 누가 학살을 보여줄 것인가” 라며 전쟁 참상을 세상에 전하는 기자들의 역할에 대해 환기했다.

그는 덧붙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2222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언론인 보호를 위한 국제법 보장이 침식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 언론사와 기자들의 연대는 필수적”으로 “연대가 모든 자유를 구할 것”이라며 이번 공동행동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지난 2015년 5월 27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제2222호는, 무력 분쟁 상황에서 언론인과 언론 시설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고, 기자 등 언론인을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행위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 같은 범죄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결의안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국제법에 따르면 분쟁 지역에서 언론인을 표적 살해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4건의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또한 오는 9일 열리는 제80차 유엔 총회를 앞두고 이번 공동행동을 조직하면서 “국제사회가 강력히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기자들에 대한 범죄를 중단시킬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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