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임금차별 해법으로 ‘노동운동’을 내놓았다.
공공부문에서는 충분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이 아니라 ‘적정임금’을 주겠단다. 그런데 민간에 강제할 방법은 없단다. 그러면서 한 말이 “그러면 어떻게 해결하냐,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경남 창원컨벤션센터 타운홀미팅, 2026.2.6)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에서 계보 이어지는 ‘민주당’
해방 직후 1945년 9월 16일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지주들이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설립했다. 한민당은 해방 정국에서 남북협상 반대, 반민특위 활동 반대, 농지개혁 반대 등을 주장한 대표적인 반통일 극우 정당이었다.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에 반대하고, 이승만이 결성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여해 중심세력으로 활동했다. 1946년 6월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자 이를 지지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시까지 정치기반이 취약한 이승만 일파와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하며 연립내각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헌법제정 과정에서 약속했던 내각책임제 헌법안이 이승만의 반대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고, 초대 정부의 인선에서도 배제되면서 점차 이승만과 대립했다. 한민당 일부는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내세우며 신익희의 대한국민당, 지청천의 대동청년단 등 세력과 통합해 1949년 2월 10일 ‘민주국민당’을 만들었다. 이승만은 1951년 자유당을 결성하고 1952년 이른바 ‘발췌 개헌’을 강행했다.
1955년 이승만 정권이 사사오입 개헌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자 민주국민당, 흥사단계열, 자유당 탈당파들이 9월 18일 반독재민주화를 천명하며 ‘민주당’을 결성했다.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이 당을 자신들의 시작점으로 보고 매년 9월 18일 창당 기념행사를 연다. 지난해 9월 19일에도 ‘창당 70주년’ 기념식을 했다.
반독재민주화 기치 아래 신자유주의 첨병 역할
1960년 4·19혁명으로 민주당 장면 정부가 출범했으나 1961년 5·16쿠데타로 해산됐다가 1967년에 다시 신민당을 결성했다. 1972년 박정희가 시월유신을 강행하자 신민당은 반독재민주화를 기치로 하는 야당으로 변모했다.
1979년 박정희 피살 직후 신군부가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정세 인식은 안이했다. 신민당 총재 권한을 되찾은 김영삼과 미국에서 돌아와 복권된 김대중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로, 향후 20년 가까이 이어질 대권 경쟁을 시작했다. 대중에게 민주정부수립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유포하며 투쟁 전선을 교란했다. 결국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의도가 노골화됐을 때는 무기력하게 5·17쿠데타와 광주민중학살을 지켜봐야 했다.
신민당은 1980년대 이후 주요 선거 시기마다 이합집산하면서 신한민주당(1985) →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1987) → 통합민주당(1991) → 새천년민주당(2000) → 열린우리당(2003) → 민주통합당(2011) → 더불어민주당(2015) 등으로 이름을 바꿔왔다. 그 과정에서 ‘반독재민주화를 기치로 하는 보수야당’으로서의 지위를 확대 강화했고, 끝내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여당이 됐다.
그들이 집권하면서 학생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등으로부터 이른바 ‘386 정치인’으로 지칭되는 인적 역량이 대거 유입됐다. 이로써 한민당이 지녔던 지주와 친일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반통일 극우 정당의 면모는 탈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편입해 들어간 인물들은 노선이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운동적 노선과 정책을 제도정치권에서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대체로 운동적 전망을 상실한 개인적 전향이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독점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친자본가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화됐다. 민주당 정권이 IMF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는 가운데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의 협력자가 됐다. 비정규법 등 노동법 개악 과정에서 노동운동 출신 국회의원들이 선봉에 섰다.
반민족·군사독재·내란 세력 청산 가로막으며 이어온 역사
1980년 이후 역사의 고비마다 그들이 아쉬울 때는 민주대연합이라는 미명으로 민중 세력에 손을 내밀었다가, 결국에는 민중을 배신하고 그들의 당리당략을 챙기며 역사를 퇴행시켜 왔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민중운동 세력과 반독재민주연합을 추진했으나, 노동자·민중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대중투쟁으로 나아가면 즉각 보수대연합으로 회귀했다.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보수정당과의 관계는 언제나 중대한 운동노선의 문제로 대두됐다.
해방 후 민주당의 원조인 한민당이 반민특위의 반민족 세력 청산을 가로막음으로써 친일 세력이 한국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등장했다. 한민당의 후신인 민주당은 1980년대에 군사독재 세력 청산을 가로막았다. 1990년대에는 12·12쿠데타와 광주민중학살 책임자들을 사면함으로써 면죄부를 줬다. 그렇게 살아남은 군사독재 세력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으로 이어졌다. 2025년까지 계속되고 있는 내란 사태의 주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이러한 역사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사수를 외치며 내란 사태 해결의 정치적 대표 세력으로 자처하고 있는 민주당 세력 역시 이러한 역사의 산물이다.
2016년 광장투쟁과 달리 2024년 말 내란 직후 진행된 대중투쟁 과정에 더불어민주당은 시종일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2025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분배보다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며, 실용주의와 성장 담론을 강조했다. 2월 19일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민주당은 중도 보수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본색을 드러낸 ‘중도 보수’ 정권이 6월 선거를 통해 재집권했다.
대통령의 경남 타운홀미팅 나흘 전인 2월 2일 경찰이 서울 세종호텔에서 고진수 지부장을 연행하고 있다. 출처: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그런 그가, 우리에게, 노동운동을 하라고?
바로 그 ‘중도 보수’ 대통령이 노동운동을 하란다. 어이가 없다.
경남 타운홀미팅에서 그는 “(정당한 임금을 받으려면) 결국 그것도 역시 누가 해야 된다? 국민들이 해야 되는 거죠. 여러분이 직접 하세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색내듯 “대신에 제가 과거처럼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탄압하거나 이런 거 절대 안 할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이 발언을 한 지 고작 나흘 전에 세종호텔 농성장은 폭력적으로 침탈당했고, 노동자들은 연행됐다. 민간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탄압에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노동운동 열심히 하시라”고 한 셈이다.
반면, 민간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행보에는 할 수 있는 게 많은지 거침도 없다. ‘인공지능 3대 강국’을 목표로 내걸고 데이터센터 건설, 100조 원 투자 등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AI에 더해 방산, 원전 등 ‘그들이 말하는’ 핵심 산업 육성에도 민간 투자를 확대하고, 재벌총수와 자본가들에게는 기업이 경제 성장의 중심이라며 ‘그들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대통령이 꿈에 부풀어 그리는 청사진 속에 노동자는 없다. 요란스러운 MASGA프로젝트는 트럼프의 환심을 샀는지 모르지만, 정작 한국 ‘민간’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은 알아서 챙기라고 한다. 정당에 있는 기구라기엔 이름도 생경한 ‘코스피 5000위원회’는 목표를 달성했다며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로 명칭을 바꿨다는데, 역시 ‘자본시장 성장’이 핵심이다.
이 모두 한민당에서부터 도도히 이어오는 민주당 류가 지닌 성질의 핵심이다. 그런 대통령이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고 하니,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노동자들은 투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민주당 70년 역사보다 더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가 있다.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단결할 권한을 헌법이 인정”한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헌법에서 단체교섭, 그리고 안 되면 집단행동할 권리를 준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나선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것이 수구든 중도든 보수 세력이 집권해 온 한국 사회의 역사다. 그래서 노동자는 저항했고,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해 왔다.
2026년 오늘, 노동자들이 강고하게 투쟁해야 할 이유는 더욱 확실해졌다. 민주노총은 이재명 정부와 한 테이블에 앉으려 애쓰기보다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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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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