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은 단지 지도에 붙어 있는 이름표 이상이다. 사람들은 지명을 통해 주변 세계를 배우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게 된다.
이름은 사회에서 무엇이 가치 있게 여겨지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명이 바뀌는 방식은 문화적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지금 지명을 다시 짓는 흐름 한가운데에 있다.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의 개칭부터, 포트 브래그(Fort Bragg)와 포트 베닝(Fort Benning)의 원래 명칭으로의 복귀, 그리고 알래스카 데날리 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 내 ‘매킨리 산(Mount McKinley)’의 재개칭까지, 우리는 지명 정치에서 중대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국가 지도에 대한 이러한 갑작스러운 재작성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일부 명칭을 공식화하면서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 정당화되었다. 이는 지명을 강력한 브랜드이자 정치적 도구로 인식하는 ‘이름 게임’의 일부다.
우리는 지명 연구를 통해, 이 ‘이름 게임’이 어떻게 공유된 상징을 장악하고, 풍경 속에 미묘하거나 노골적인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지를 탐구해왔다.
지리 교사이자 연구자로서, 우리는 이 이름 게임이 대중에게 교육적,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 또한 인식하고 있다.
지명은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명을 바꾸는 행위는 언제나 권력의 행사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지명 행위를 통해 그 장소의 정체성을 장악하고, 자신의 명성을 강화하며, 반대자에게 보복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왔다.
이러한 조치는 특히 그 이름이 위협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경우 강한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명을 바꾸는 것은 사람들이 그 장소를 바라보는 방식, 그 장소와 맺는 관계, 또는 그 장소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카운티에서는, 과거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두 학교의 학생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지명 변경이라는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경험해왔다. 이들 학교는 2020년,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살해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으로 전국적 분노가 일어나는 가운데, ‘마운틴 뷰(Mountain View)’와 ‘허니 런(Honey Run)’으로 개칭되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보수 세력이 교육위원회를 장악한 뒤, 지역 교육위원회는 원래의 남부연합 이름을 복원했다.
어젯밤 5대 1의 표결로,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카운티의 교육위원회는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세 학교의 명칭을 변경하기로 한 이전 결정을 뒤집기로 했다. 스톤월 잭슨 고등학교(Stonewall Jackson HS)는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Brown v. Board of Ed.) 이후 불과 몇 년 뒤에 개교했다.
마운틴 뷰 고등학교(Mountain View High School)—현재는 다시 스톤월 잭슨 고등학교(Stonewall Jackson High School)로 개명됨—에 재학 중인 흑인 8학년 학생 한 명은, 지명 변경 계획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증언했다.
“저는 제 조상들이 노예가 되도록 싸운 남자를 대표해야 해요. 이 위원회가 그 이름을 복원하기로 결정한다면, 저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을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럼에도 교육위원회는 5대 1로 변경을 승인했다.
학교 밖에서도 지명은 ‘숨겨진 교육과정’으로 작동한다. 지명은 공동체 또는 국가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어떤 역사와 관점을 중요하고 공적 주목에 값하는 것으로 여기는지를 드러낸다.
지명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며 정서적으로 연결되는지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형성한다. 심리학자, 사회학자, 지리학자들은 장소에 대한 이런 감각이 인간 심리에 어떻게 뿌리내리는지를 탐구해왔고, 그것이 특정 장소에 대한 애착 혹은 혐오로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 장소가 학교든, 산이든, 공원이든 마찬가지다.
두 요새의 이야기
지명을 바꾸는 것은, 리브랜딩을 통해 지도자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포트 브래그(Fort Bragg)와 포트 베닝(Fort Benning)의 원래 이름 복원을 명령했는데, 이 두 곳 모두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이 조치는 리브랜딩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요새는 2023년, 연방 시설에 남부연합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한 후 각각 ‘포트 리버티(Fort Liberty)’와 ‘포트 무어(Fort Moore)’로 변경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재선된다면 포트 브래그(Fort Bragg)의 이름을 “되찾겠다”는 선거 공약을 지지자들에게 내걸었다.
연방 차원의 금지 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는 브래그(Bragg)와 베닝(Benning)이라는 성을 가진, 남부연합과는 무관하지만 훈장을 받은 두 명의 육군 참전용사를 새롭게 선정해 그들을 기리도록 했다.
이를 ‘손재주’라고 부르든, ‘기발한 발상’이라고 부르든, 이 전술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명칭들을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국방부가 부활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브래그(Bragg)와 베닝(Benning)이라는 이름의 복원은, 원래의 명칭 변경에 반대했거나 해당 기지에서 생활하고 복무했던 기억을 통해 그 이름에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상징적인 귀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는 특정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연결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름들은 여전히, 해당 군 기지가 과거 노예제 옹호자들과 연관되어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흔적이다.
지명 변경 게임
오바마 및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는, 공격적이거나 비하적인 지명을 제거하고 원주민의 이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지명 변경의 물결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Great Smoky Mountains)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던 클링먼스 돔(Clingmans Dome)은 2024년 9월 ‘쿠워히(Kuwohi)’로 개칭되었다. 이는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에서, ‘뽕나무의 장소’를 뜻하는 체로키어(Cherokee) 단어로 전환된 것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는 지명 변경이 개혁 노력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각성 문화(woke cultur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공격의 일부다.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Great Smoky Mountains)에 위치한 쿠워히(Kuwohi, 이전 명칭: 클링먼스 돔 Clingmans Dome)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출처: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알래스카의 ‘매킨리 산(Mount McKinley)’을 ‘데날리(Denali)’로 개칭해, 원주민의 유산과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산의 이름을 인정했다. 알래스카 당국은 수년 전부터 ‘데날리’로의 개명을 요청해왔으며, 2015년 당시에도 이 변경을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2025년 1월 취임 첫날, 알래스카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날리를 다시 ‘매킨리 산’으로 바꾸는 조치를 단행했다. 며칠 후 알래스카 주의회는 트럼프에게 재고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조지아주 하원의원 얼 “버디” 카터(Earl “Buddy” Carter)는 최근, 덴마크령 자치 지역인 그린란드(Greenland)를 트럼프의 팽창주의적 영토 매입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레드, 화이트 앤 블루랜드(Red, White, and Blueland)’로 개명하자는 입법 제안을 내놓았다.
덴마크 당국과 그린란드 주민들은 카터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모욕적이고 외교 관계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명 변경이 국제 관계에서 상징적 모욕의 형태로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바꾸는 일이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미 주요 내비게이션 앱들에는 이 변경이 반영되어 있다.
2025년 3월, Google 지도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 대신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이라는 명칭을 표시했다. 출처: Google, INEGI
지명을 선택하는 더 나은 방식
지도자들이 이념적 이유로 장소의 이름을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바꿀 경우, 그 이름을 기억, 정체성, 장소에 대한 애착의 형태로 깊이 연결해 온 공동체를 소외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의 견해로는, 지명이 붙는 공유된 풍경에 대한 변경을 참여적 방식으로 진행하고, 의미 있는 대중 참여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다.
이 접근은 이름 변경 자체를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경이 공동체의 사회적·심리적 요구와 장소의 변화하는 문화적 정체성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치적 득점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영향을 받는 공동체의 필요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경관 영향 평가나 비판적 감사 등의 방식으로 대중 참여를 장려하면, 이름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공유된 주인의식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그 지명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최근의 지명 변경들은 이미 교실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생들은 단순히 새로운 지명을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장소들의 의미와 자신이 국가 및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재평가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드러났듯이, 지도자들이 이름을 강제로 변경하는 방식의 주요한 단점 중 하나는, 다음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그 이름들이 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끝없는 이름 게임이 된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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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T. 카나르(Seth T. Kannarr)는 테네시 대학교 지리학 박사과정 연구원이고, 데릭 H. 올더먼(Derek H. Alderman)은 테네시 대학교 지리학 석좌 교수(Chancellor's Professor)이다. 조던 브래셔(Jordan Brasher)는 매칼레스터 칼리지 지리학 방문 조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