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8월 27일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공동투쟁을 앞두고, 한국노동연구원의 송민수 전문위원이 참세상에 글을 보내왔다. 송 전문위원은 현재 충청남도의 의뢰로 진행 중인 태안 서부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송 위원은 연구가 아직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총파업·공동투쟁 등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고려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며, 연구 과정에서 마주한 현장 노동자의 고민들과 그에 대한 대안을 글에 담았다. 

2025년 8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단순한 고용 불안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외침을 들고 모였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총고용 보장”이라는 구호는 단지 슬로건이 아니라, 수년간 위험과 불안 속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였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 공공운수노조 제공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탈석탄 정책을 발표했지만, 폐쇄 이후의 고용 대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심층면접조사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와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고강도 업무에 종사하면서도 불안정한 고용 구조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계약 갱신 때마다 고용 종료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 노동자는 “우리는 발전소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폐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에겐 아무런 설명도, 대책도 없어요. 그냥 조용히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단지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통된 정서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재취업 가능성에 대해 “불가능하거나 불확실하다”고 응답했다. 고령, 자격 미비, 지역 일자리 부족, 이주 부담 등이 주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단순한 재교육이나 직무 전환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노동자들은 생계 보장과 심리적 안정, 가족 단위의 지원이 병행되는 통합적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을 받으라고 하지만, 수입이 끊기면 생계가 막막해요. 참여수당이 없으면 교육도 못 받습니다”라는 응답은 전환 정책이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삶의 재구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역 고착성도 중요한 변수다. 태안은 발전소 중심의 산업 구조로 인해 대체 일자리가 부족하며, 가족과 주거 기반이 지역에 고정된 노동자들에게 이주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요구하며, 지역 기반의 공공일자리 창출과 산업 다변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고용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보장에 대한 책임 주체의 명확화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지자체, 발전사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폐쇄를 결정했다면, 고용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원칙이다.

노동조합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대표성 부족과 조직 간 분절, 내부 갈등 등 구조적 한계가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식 협의체에서 일부 노조와 협력업체 직원, 지역 주민 등이 배제되면서 연대체의 대표성과 정당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균·김충현 씨의 사고 이후 현장에서는 안전 절차와 점검이 강화되었지만, 이에 상응하는 인력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강도 증가와 피로 누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설비 노후화로 고장이 잦고, 인력 부족으로 피로도가 높습니다”, “정년퇴직으로 한 명이 빠졌는데, 채용이 없어서 10명이 하던 일을 9명이 하고 있습니다”라는 현장 발언은, 강화된 안전 기준과 실제 인력 운영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안전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강화가 오히려 노동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제도 설계와 인력 운영 간의 정합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① 총고용 보장 원칙의 제도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총고용 보장은 노동전환 정책의 핵심 축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지자체, 중앙정부 간의 공동 책임 원칙을 법제화하고, 고용보장 협약을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② 지역 기반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이주를 전제로 한 재배치 방식은 현실적 제약이 크다. 태안 지역의 산업 구조와 생활 기반을 고려한 공공일자리 확대, 민간 일자리 연계 등 지역 특성에 맞춘 고용 전략이 필요하다.

③ 생계 보장과 심리적 안정이 병행된 재교육 프로그램 

참여수당 지급, 유급 교육시간 보장, 심리 상담 등 실질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하며, 교육 이후에는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의 실효성과 정책의 실행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조건이다.

④ 노동자 참여 중심의 정책 결정 구조 마련 

형식적인 협의체를 넘어, 당사자 중심의 거버넌스 모델을 도입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수용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⑤ 충남 노동전환지원센터의 전략적 기능 강화 

센터는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실태조사, 교육 연계, 공론화 기능을 수행하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 홍보와 디지털 서비스 확대를 통해 접근성과 인지도를 높이고, 교육기관과의 협업, 자격증 중심의 지원,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사례는 단순한 고용 재배치가 아닌, 노동자의 삶과 경력, 지역 공동체의 지속성을 고려한 정의로운 전환의 실질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 향후 에너지 전환과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반복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전환을 위한 제도적 모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이제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침묵은 끝났고, 이제는 응답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말

송민수는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