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죽였다” … APEC 빌미 강제 단속, 20대 이주노동자 목숨 잃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이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 성서공단에서 출입국사무소의 강제 단속을 피하던 20대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28일 오후 3시 20분경 대구출입국·외국인 사무소 단속반 등 30~40여 명이 대구 성서공단 내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 기습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 단속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당국에 “적발”됐고, 단속을 피해 숨어있던 20대 베트남 국적 노동자 ㅂ(25) 씨가 이날 저녁 6시 40분경 바닥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의 증언 등에 의하면 당시 ㅂ 씨는 공장 상층부에 에어컨 실외기가 위치한 좁은 틈에 숨어 있다가 2층에서 내려와 공장 펜스를 넘는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전한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구조대 도착 시 이미 의식이 없었으며, 다량의 출혈과 뇌 손상” 등이 있었다고 한다.

<뉴스민>의 보도 등에 따르면 한 동료 노동자는 ㅂ 씨가 사망 직전 나눈 메신저 대화에서 “비명이 난무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표했고, “숨쉬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눈 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전해졌다.

또 다른 동료 노동자는 당시 “단속반이 공장 주변을 에워쌌고, 겁에 질려 모두 뛰어다녔다”, “잡히면 추방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들 공포에 떨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ㅂ 씨가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불과 2주 전이었다. 고인은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한국으로 유학을 와 대구 소재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준비해 왔다고 알려졌다.

고인의 시신은 인근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었으며, 경찰이 국과수 부검을 비롯해 정확한 사인과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올해 4월 15일,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는 이주인권단체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29일, “이번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은 정부의 ‘APEC 성공적 개최'를 명분으로 한 무리한 합동단속이 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결코 우연이 아닌 사건”이라고 짚었다. 본부는 “단속 과정에서 숨기 위해 몸을 피했던 25세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라며 “사인의 규명이 진행 중이지만, 공포와 추적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며 “단기취업비자 제도와 사업장 변경 제한, 통제 위주의 출입국 행정, 그리고 이주노동자를 ‘불법'으로 낙인찍는 정책이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체류와 생명의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부는 덧붙여 “이번 사망 사건을 개인적 불행으로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이번 사건의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무리한 단속 중단과 제도 개혁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28일, APEC 개최를 빌미로 미등록이주민 정부 합동 단속을 규탄하는 전국 출입국사무소 앞 동시다발 1인 시위,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트위터(X) 갈무리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도 같은 날 오전 긴급 성명을 발표해 “이재명 정부가 사람을 죽였다”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강제단속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네트워크는 28일 “APEC 개최를 빌미로 한 미등록이주민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며, 전국 20여 개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1인 시위가 종료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는 보란 듯이 폭력적인 단속을 전개했다”며 참담한 심정과 분노를 전했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는 빛의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권이라고 이야기하며 이전 정권과는 다른 정책과 행정을 펼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다르지 않았다”라며 “우리는 이주노동자, 이주민도 차별과 배제가 아닌 평등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구성원이라고 외치며, 광장을 지켰”으나, “이재명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필요에 따라 언급하고, 필요에 따라 내치며 차별과 배제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UN 총회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 발언했으나 이는 거짓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을 뿐”이라고 짚었다.

또한 “미국 트럼프 정부가 반이민 정책을 펼치며 조지아주에서 벌였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나 한국 이재명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 이주노동자 합동단속은 다르지 않다”면서 “이주노동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력, 공포의 정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뿐”이라고 환기했다.

네트워크는 “우리는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정부의 강제 단속은 잘못되었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는 잘못된 제도부터 고치라고 요구”해 왔고, “이전 정부와 다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요구”해 왔으며, “정부의 합동 단속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라며, “그러나 또다시 자행된 정부 합동 단속은 이주노동자를 사망케” 했고, 결국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은 분명 이재명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자본가들의 축제를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일상을 파괴하고 죽음의 공포로 내몰고 있는 이재명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라며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는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이주노동자의 외침을 함께 외치며, 차별과 혐오, 공포의 정치를 일삼는 정부와 세력들에 맞서 함께 연대하고 투쟁해 갈 것”이라 결의를 밝히고 △지금 당장 정부 합동 단속을 중단하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강제 단속을 즉각 중단하라!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안정적 체류 비자를 발급하라!고 촉구했다.

법무부가 9월 30일 발표한 미등록 이주민 정부 합동단속 계획 관련 보도자료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68일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정부 합동단속 기간에는 ‘APEC 2025 KOREA’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인근 외국인 밀집 지역 등에 대한 순찰활동도 강화하여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노동계와 이주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한국 사회를 함께 지탱하고 있는 구성원인 “이주노동자는 단속의 대상이 아닌 권리 보장의 대상이어야 한다”면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단속·추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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