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희망전국순례 마무리 기자회견. 참세상 박도형 기자.
한파가 기승을 부린 20일, 탈핵희망전국순례단이 856.9km를 걸어 16일 만에 청와대에 도착했다.
탈핵시민행동은 20일 오후, 탈핵희망전국순례를 마무리하며 신규 핵발전소의 공론화 절차와 건설계획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었다. 탈핵희망전국순례단은 지난 1월 5일, 고리 핵발전소가 위치한 부산, 한빛 핵발전소가 위치한 전남 영광, 기후부가 있는 세종에서 각각 출발한 바 있다.
이들이 순례에 나선 이유는, 이재명 정부의 신규 핵발전소 2기 건설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월 9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에서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을 국민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조기에 확정하고, 12차 전기본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신규 핵발전을 전원으로 채택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와 2번의 토론회는 정치적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탈핵시민행동 등 전국 시민사회 단체들은 12월 3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의 본질을 흐리는 모든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탈핵희망전국순례에 참여한 성원기 교수. 참세상 박도형 기자.
게다가 2차에 걸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의 경우 ‘친원전’ 인사들로만 채워졌으며, 비공개적이었다는 지적이 참여자들로부터도 나왔다. 탈핵시민행동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졸속 진행된 대국민 토론회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비공개적으로 운영”되었고, “핵발전의 필요성만을 주창하는 원전업계 학술대회에 가까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후부가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에 3,024명을 대상으로 의뢰한 여론조사 또한 찬성 69.6%를 기록하며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탈핵시민행동은 여론조사에 대해 “충분한 정보 공개조차 없”다며, “공론조사라고 부를 수도, 단순한 여론 청취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하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술수,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의 민낯”이라고 평했다.
탈핵희망전국순례 마무리 기자회견. 참세상 박도형 기자.
지역·세대 없는 민주주의?
이현숙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대표는 “저희 집이 월성 핵발전소로부터 17km 거리”에 있고, “고리·세울 핵발전소로부터도 24km 위치”라고 말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이 공동대표는 “저희는 60년간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수명연장을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핵발전소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은 적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공동대표는 “신규 핵발전소를 여론조사 3,000명으로, 그것도 핵발전소 지역 주민이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조사를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재명 정부는) 소통하고 국민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민주사회”로 가겠다더니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는 이렇게 핵발전소 지역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무명의 도시로 만들 수 있냐”고 일갈했다.
심민강 청소년 활동가는 “(핵발전소에 대해) 고작 보름이라는 시간 안에 국민 의견을 듣겠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짧고 알맹이 없는 두 번의 토론회로 전문가 의견을 전부 수용했다 말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심 활동가는 “남겨지는 핵 폐기물을 떠맡는 세대”로서, “정부는 당장 날치기 행정을 멈추고,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탈핵희망전국순례 마무리 기자회견. 참세상 박도형 기자.
신규 원전을 여론조사로? “서울 한복판에 짓겠다고 물어도 똑같겠나”
유에스더 탈핵시민행동 집행위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부의 신규 핵발전소 공론화에 대해 “지난 민주당 정부에서 했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보다 훨씬 퇴행적”이라고 평했다. 유 집행위원은 “연말연초에 국회에서 진행된 2번의 토론회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3,000명 대상 여론조사로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시민들 여론 뒤에 서서 책임감 없게 에너지 논의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갤럽이 기후부의 여론조사 의뢰와 별도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여론조사(2026년 1월 13일-15일)를 시행한 결과, ‘건설해야 한다’ 54%, ‘하지 말아야 한다’ 25%, 유보 21%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 집행위원은 “대안이나 설명 없이 찬반만 묻는 여론조사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신규 원전을 서울에 짓는다고 물었어도 찬성률이 같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찬성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서울(60%)이었다.

탈핵희망전국순례단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참세상 박도형 기자.
AI·데이터센터에도 필요한 건 핵 아닌 재생에너지
이재명 정부가 친원전으로 입장을 선회한 데는 AI·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8일에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인공지능 대전환은 이제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요소”라며, “인재 확보, 인프라 확충, 글로벌 협력 강화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유 집행위원은 “AI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라는 것은 당장 5년, 10년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신규핵발전소는 최소 15년 이상 건설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이를 연결해서 신규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무책임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접속에 전원 간 경쟁이 발생하는 전력 계통의 특성상, 지금도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송전망 접속에 제약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원전을 확대하겠다는 ‘투트랙 전략’은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후솔루션이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24년 5월, 계통포화를 이유로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하여 신규 재생에너지 접속을 제한했다. 특히 호남 지역은 전 변전소가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되면서, 신규 송변전설비가 건설되는 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접속이 원칙적으로 제한되었다.
유 집행위원은 “더 빠르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여 전체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원전 신규 건설에 이렇게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탈핵시민행동 또한 20일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을 이유로 전력부족을 과장하며 신규핵발전소 2기 건설 계획을 이미 전제해 두고, 공론화라 포장한 요식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규탄했다.

탈핵희망전국순례 중 발언하고 있는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참세상 박도형 기자.
“핵발전을 제외한 에너지 믹스만이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탈핵시민행동은 기자회견에서 “핵발전을 제외한 에너지 믹스만이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에 부합하며, 그것이 기후위기에 ‘실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2026년은 후쿠시마 핵사고 15년, 체르노빌 핵사고 40년이 되는 해다. 민주당 정권은 채 1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탈원전에서 감원전으로, 이제는 친원전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특히 이번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근거가 되는 11차 전기본은 윤석열 정권이 추진했고, 당시 시민사회와의 마찰 또한 컸던 전기본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파면으로 집권한 이재명 정부임에도, 에너지 정책에서는 ‘내란 청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반응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탈핵시민행동은 순례 종료 직후, 청와대 관계자와의 협상 끝에 김성환 기후부 장관과의 면담을 약속받은 상태다.
탈핵희망전국순례단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참세상 박도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