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한국 민주주의를 상대로 쿠데타를 시도한 불명예스러운 보수 성향 대통령 윤석열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석열에 맞선 대중적 저항은 권위주의적 위협에 직면한 다른 나라들에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로 2월 19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윤석열이 자기 쿠데타를 통해 헌정 질서를 전복하려 한 지 443일 만에 나왔다. 출처: KBS 뉴스영상 갈무리
마침내 판결이 나왔다. 탄핵당한 보수 대통령 윤석열은 2월 19일 서울 법원에서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의 결정은 2024년 12월 윤석열이 자행한 자기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전복하려 한 시도 이후 443일 만에 나왔다. 그 시도는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거부하고 서울 전역에서 자발적 시위가 분출하면서 6시간 만에 무너졌다.
그러나 정의는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윤석열의 권력 장악 시도 이전부터 나라를 뒤덮어 온 정치적 긴장과 얽혀 있다.
세계 좌파에게 이번 사태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은 극우 세력이 재결집하는 상황에서도 대중 시위와 선거 권력을 결합해 극우의 공세를 저지하려 한 유일한 선진 경제국이다.
심화하는 정치적 분열
정치적 균열은 윤석열에게 2025년 7월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잠시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던 재판장 지귀연이 낭독한 판결문 언어에도 드러났다. 그는 17세기 영국의 찰스 1세 처형에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의 프랑스 헌법에 이르는 폭넓은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며 법치의 원칙과 강력한 대통령제의 특권 사이에서 오가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내란 시도의 일부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고, 법정에서 윤석열이 제시한 논리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가 좌파의 위협과 외국, 특히 중국의 선거 개입 위험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계몽”적 경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엄과 계몽을 합친 ‘계몽령’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냈다.
윤석열은 내란 유죄 가능성에 맞서 “나 같은 바보가 어떻게 쿠데타를 하겠느냐”라며 무능을 호소했다. 전직 검찰총장 출신인 그의 냉소적 법 논리와 교묘한 자기비하는 내란의 최고형인 사형을 피하게 했다. 다만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극우의 재부상
지귀연 판사는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보내 의원과 공무원을 체포하려 한 쿠데타를 기획한 혐의로 윤석열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촛불을 훔치지 말라”라는 옛 영국 속담을 인용하며 윤석열의 명분을 일정 부분 정당화하는 듯한 표현을 써 극우에 또 다른 결집 지점을 제공했다.
쿠데타 시도와 그에 맞선 대중 저항, 그리고 윤석열의 탄핵과 유죄 판결에 이르기까지 2024년 12월 이후 전개된 사건은 윤석열의 쿠데타가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에서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수십 년간 누적된 극우, 자유주의 세력, 좌파 사이 긴장이 표면화한 분기점이었다.
탄핵 찬성 시위에 맞선 극우 맞불 집회가 신속히 확산한 일은 놀랍지 않았다. 20대 사이에서 반중·친미 성향 극우의 영향력이 커졌고, 이는 60~70대 고령층이 지탱해 온 전통적 보수 블록을 결집했다. 악화하는 일자리·주택 시장과 사회적 이동성의 급속한 약화가 청년층을 극우 사상으로 끌어들였다.
표면적으로 분열은 세대 갈등처럼 보인다. 청년 남녀는 민족주의적이고 종종 좌파 성향인 부모 세대 상·중산층에 저항한다고 본다. 그 부모 세대는 1970~80년대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였지만, 이후 경제·정치 기회를 독점했다.
청년들의 반감은 반동적 성격을 띤다. 기성세대가 반미·친중 경향을 보였기에 그들은 친미·반중으로 기울었다. 유튜브 인플루언서와 행동주의적 기독교 목사의 설교가 그들의 언어와 충동을 형성했다.
미국의 MAGA와 기독교 민족주의 네트워크의 지원도 이들을 고무했다. 2025년 9월 암살되기 전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Charlie Kirk)는 서울을 마지막 해외 방문지로 삼았고, 그의 단체 ‘터닝포인트 USA(Turning Point USA)’의 한국판인 ‘빌드업 코리아(Build Up Korea)’ 집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커크 사망 후 청년 극우 세력은 서울 한복판에 그를 기리는 제단을 세웠다. 빌드업 코리아와 대학 단체 ‘자유 대학(Free University)’는 커크식 토론과 반중 시위를 조직하고, ‘윤 어게인’ 복권 운동의 선봉에 섰다.
한미 극우의 연결은 1950~53년 전쟁 이후 미국이 서울의 냉전 권위주의를 지탱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관계는 군사적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미국 민간 극우가 직접 사상과 전략을 수출했다.
한국 초보수 진영은 미국 네트워크를 통해 기독교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J. D. 밴스(J. D. Vance) 부통령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밴스는 1월 회동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장로교 목사 손현보가 구금된 데 우려를 표했다.
2월 법원은 손 목사를 석방했고, 그는 구금 중 두 아들이 백악관에 두 차례 초청받았다고 주장했다.
극우는 이미 윤석열의 국민의힘을 장악했다. 국민의힘은 300석 국회에서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판결 직후 장동혁 대표는 계엄을 내란 일부로 보지 않은 판단을 근거로 윤석열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는 당내에서 윤석열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과 대비된다.
자유주의적 도취
윤석열의 몰락 이후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였다. 그러나 2025년 5월 조기 대선에서 그는 과반을 얻지 못했다. 극우 부상과 그를 둘러싼 부패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취임 6개월 만에 이재명 지지율은 갤럽코리아 기준 약 60%로 올랐다. 이는 중대한 개혁 없이 달성한 수치였다. 쿠데타 이후 안정감이 이미지 개선에 기여했다.
무엇보다 그의 대표 성과는 코스피 지수 사상 최고치 경신이다. 성인 4명 중 1명이 주식 투자에 참여하는 한국에서 이는 상징적 공약이었다.
그러나 경제는 과열과 불균형을 보인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지수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는 상위 10개 종목이 41%를 차지하는 S&P500과 비교해도 위험한 집중도다.
이재명은 주가 상승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지만, 당내에서는 계파 갈등이 심화한다. 1980년대 좌파 민족주의 학생운동 출신 구주류는 전문직·신흥 부유층 중심 신진 세력의 부상을 견제한다. 후자는 국민의힘 대신 민주당을 대안으로 택했다.
민주당은 과거 약속한 노동개혁에서 후퇴했고,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도 미루고 있다. 어느 계파가 승리하든 노동은 주변화하고 친노동 수사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국민은 6시간 만에 쿠데타를 저지하고 한 달 만에 주동자를 법정에 세웠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극우 확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인상적인 성취다. 그러나 독립적 좌파 없이 대중적 성과는 서서히 침식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다.
[출처] South Korea’s Would-Be Coup Leader Has Been Jailed for Lif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갑 설(Kap Seol)은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이자 연구자다. 그의 글은 「레이버 노츠(Labor Notes)」,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비즈니스 인사이더」 (Business Insider) 등 여러 매체에 실렸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