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ndrés Silva, Unsplash
미군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그의 아내를 납치하고, 이후 부통령 로드리게스가 권력을 장악해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수익을 통제하도록 허용하며 미국 에너지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일련의 사태는 25년 넘게 이어진 차비스타 혁명의 마지막 국면을 알린다. 이런 시점에 베네수엘라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다룬 새 책이 출간된 일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헤이마켓 북스(Haymarket Books)가 펴낸 『위기의 베네수엘라』(Venezuela in Crisis)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 반자본주의 사상가들 가운데 일부를 한데 모았으며, 다양한 좌파 정치 전통과 조직을 대표한다.” 스페인어로 글을 쓴 이 저자들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 영어권 독자들이 베네수엘라 좌파의 주장과 경험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일부 필자는 차베스(Chávez) 내각에서 일했고, 현재는 마두로 정부를 비판한다. “이 목소리들을 영어권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은 베네수엘라 좌파의 현재 논쟁과 관점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은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학(North Carolina Agricultural and Technical State University)의 앤더슨 빈(Anderson Bean)이 편집했다. 그는 이전에도 베네수엘라에 대해 글을 썼다. 그의 서문은 책의 핵심을 요약한다. 빈은 2000년대 베네수엘라의 차비스타-볼리바르 혁명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큰 영감을 주었고, 어쩌면 1960년대 쿠바 혁명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수십 년간 부패하고 친자본·친미 성향 정부가 집권한 뒤 1998년 대선에서 우고 차베스가 당선된 일은 신선한 돌풍이었다. 이후 차베스 정부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물질적 삶을 개선했고, 사회적 평등을 확대했으며, 전통적으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됐던 계층에 권한을 부여했다.”
빈은 차베스 집권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 광범위한 시민 참여와 포괄적 인권 보호를 촉진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 둘째,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석유 수익을 재분배해 공식 빈곤율을 37.6%, 극빈율을 57.8% 낮췄다. 2008년까지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았고, 불평등 수준도 미주에서 가장 낮은 수준 중 하나로 떨어졌다. 2011년에는 서반구에서 두 번째로 평등한 나라가 됐고, 캐나다만이 더 낮은 불평등 수준을 보였다. 셋째, 빈이 “가장 변혁적”이라고 평가한 요소는 대중 집회와 노동자 통제, 지역 평의회 실험을 통해 권력을 대중 부문에 이전한 일이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상황은 급격히 악화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75% 감소했고, 2018년 인플레이션은 13만%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빈곤 가구 비율은 2014년 48.4%에서 2022년 81.5%로 급증했다. 당시 월 최저임금은 2.23달러로 중남미에서 가장 낮았다. 하루로 환산하면 0.15달러로, 세계은행이 정한 절대빈곤선 1.25달러의 8분의 1 수준이었다. 이는 차베스 집권기 월 최저임금 300달러와 비교하면 60배 이상 낮은 수준이다.
2010년대 실질소득 붕괴와 빈곤 급증은 이주 위기를 초래했다. 2016년 이후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해외로 떠나 송금을 통해 가족을 부양했다. 현재 전 세계 베네수엘라 난민·이주민은 약 7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달한다.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실향민을 낳았고, 세계에서는 시리아에 이어 두 번째다.
영감의 원천에서 악몽으로 전락한 원인은 무엇인가. 빈은 두 가지를 지목한다. 첫째는 미국의 제재와, 정권 교체를 목표로 미국 정부와 베네수엘라 국내 우파가 협력해 경제를 흔든 시도다. 미국 제국주의는 차베스가 석유 산업을 재국유화하고, 미국 주도의 무역협정 밖에서 중남미 국가들과 교역을 확대하며, 중국 등과 무역·투자 협력을 모색하자 이를 위협으로 간주했다. 차비스타 정부의 초기 성공은 미국에 눈엣가시였다.
2002년 미국은 베네수엘라 기업 엘리트와 함께 쿠데타를 시도해 차베스를 47시간 동안 축출했지만, 대중 동원으로 복귀했다. 2002년 말부터 2003년 초까지 미국은 차베스 사임을 압박하기 위해 석유 생산을 중단하는 봉쇄를 지원했다. 2014년에는 ‘라 살리다(la salida, 출구)’를 요구한 우파의 폭력 시위를 지원했다. 2019년 1월 후안 과이도(Juan Guiadó)가 위헌적으로 대통령을 자처하자 미국은 또다시 쿠데타를 시도했고, 4월 재시도도 실패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경제 제재는 이어졌다. 트럼프 제재로 미국 기관과 시민은 베네수엘라 채권 거래를 금지당했고, 정부 자산은 동결됐으며, 외채 재조정과 상환도 막혔다. 우대 조건으로 석유를 수입한 국가들의 대금 송금도 차단됐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역신용 판매를 금지했고, 최대 석유 시장인 미국 접근을 차단했으며, 미국 소재 시트고(Citgo, 베네수엘라 정부 국영기업인 PDVSA가 다수 지분을 보유한 석유회사) 같은 해외 자산을 압류했다. 2018년에만 석유 수입 60억 달러를 잃었고, 2019년에는 자산 170억 달러를 동결하고 수출 손실 110억 달러, 하루 3천만 달러 손실을 초래했다.
워싱턴DC 소재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는 2019년 보고서에서 2017~2018년 사이 제재로 약 4만 명이 사망했고 더 많은 이들이 불안정에 빠졌다고 추산했다. 30만 명 이상이 의약품·의료 부족으로 위험에 처했고, 8만 명의 HIV 감염자가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을 수년째 받지 못했다. 1만 6천 명의 투석 환자, 400만 명의 당뇨·고혈압 환자, 1만 6천 명의 암 환자도 필요한 약을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붕괴 원인을 미국 제재에만 돌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점점 권위주의화한 마두로 정부의 경제 실패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가 붕괴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일부 좌파는 마두로 체제를 사회주의로 옹호하지만, 양측 모두 틀렸다. 저자들은 차베스와 마두로가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했거나 ‘사회주의로 가는 길’에 있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차베스의 성과는 2000년대 원자재 가격 호황에 기반했다. 유가와 가스 가격이 높아지자, 세율을 조금만 올려도 정부 수입이 급증했고, 이를 통해 사회지출을 확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 부문을 건드리지 않았다. “사회적 소유관계의 실질적 변혁도, 국제 분업의 전환도, 초국적 자본 특권에 대한 도전도 없었다.” 생산수단 대부분은 여전히 민간과 자본가 계급이 지배했다. 1999~2011년 민간 부문 비중은 65%에서 71%로 오히려 확대됐다. 주요 산업도 민간이 통제했다.
국영기업도 노동자가 아닌 관료가 통제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고, 단지 길을 시작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3년 원자재 호황이 끝나자, 타협도 끝났다. 2015년 가격은 1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고, 차베스 사망 후 마두로가 집권했다. 위기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선택해야 했다. 답은 명확했다. 루이스 살라스(Luis Salas)는 “정부와 우파의 경제 프로그램 차이는 거의 없다”라고 썼다. 로베르토 로페스(Roberto López)는 마두로가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권위주의 속에 신자유주의로 선회했다고 지적했다.
마두로는 2016년 오리노코 광구를 개방했고, 2021년 조세·규제 면제 특별경제구역을 도입했으며, 2018년 파업권을 폐지했다. 2020년 반봉쇄법으로 헌법을 사실상 정지했고, 생계임금 정책을 폐기했으며, 반정부 발언에 최대 20년형을 부과하는 법을 도입했다. 석유·철강·금 등 산업을 재민영화했다.
마두로 체제 아래 국가는 정치·군사 카스트가 자원을 나누는 피냐타가 됐다. 정부는 재계와 타협했고, 노동자 조직의 목소리는 배제했다.
저자들은 북반구 관찰자들이 사회주의 언어에 현혹돼 억압적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비판한다. 실패한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의 방해를 끝내고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사회주의 정책을 적용하지 못한 점이다.
2026년 2월 현재 로드리게스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 앞에 굴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우파의 마리아 마차도(Maria Machado)로 교체하지 않고, 선거를 준비하며 요구를 관철한다. 지난주 미 에너지장관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는 “우리는 베네수엘라 국민과 경제를 해방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마차도는 67% 지지를 얻었고, 72%는 마두로 체포 이후 나라가 긍정적으로 나아간다고 응답했다.
[출처] Venezuela: the end game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