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

백기완 5주기, '문화예술 한바탕’으로 노동절 전야 밝힌다

“세상이 어려울 때 예술은 늘 등불이고 횃불이야. 길이 막히면 길을 내고 빛이 사라지면 스스로 별이 되고, 걷다가 지치면 기댈 언덕이 되는 것이 예술이라고!” - 고 백기완 선생의 이야기 중에서

한살매(한평생) 거리에서 투쟁하는 민중의 곁을 지키며 길을 내온 ‘불쌈꾼(혁명가)’ 고 백기완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선생을 기억하는 일은 곧, 그의 뜻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해 나가는 부단한 분투다.

올해에는 생전 선생이 “주어진 판을 깨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는 의미”라 설명했던 ‘한바탕’으로 노동절 전야, 광장을 밝힌다. 4월 30일, “광장의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부제 삼고,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이하 ‘문화예술 한바탕’)이 펼쳐진다.

‘문화예술 한바탕’을 공동 주최하는 ‘제1회 백기완 한바탕 조직위원회’와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백기완마당집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바탕의 취지와 추진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빛의 항쟁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뿌리내린 차별과 소외의 늪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일과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서 길을 낸다”던 백기완 선생의 말씀을 환기하고, 문화예술 한바탕을 통해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 맞서는 노동자·시민의 저항의지를 북돋우며, “함께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함께 열어갈 연대와 희망을 모아 가겠다고 밝혔다.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 기자 간담회 현장. 참세상 류민.

“노동절 전야제 되살려,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이번 한바탕은 힘을 잃어가던 노동절 전야제의 역사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자리로서도 뜻깊다. 조직위는 개최일을 4월 30일로 정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백기완 선생의 뜻에 따른 것이라 설명했다. 앞으로도 해마다 같은 날 노동절 전야제로서 한바탕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4·30 노동절 전야제의 역사를 되짚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중적 민주노조운동이 확산되던 가운데, 1989년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은 노동법 개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본부를 꾸렸고 한국전쟁 이후 중단됐던 노동절 대회를 다시 열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서울로 모여 4·30 전야제를 치르며 밤을 지새웠다.

당시 전야제는 대부분 토요일까지 일하던 노동자들이 서울에 모여 다음날의 투쟁을 함께 준비하는 자리였다. 이후 노동운동의 조건이 달라지고 대회 형식도 바뀌면서 전야제는 점차 축소되어 왔지만, 노동절 대회가 다 담아내기 어려운 비정규·불안정 노동의 현실과 여러 현장의 고민들을 함께 톺아보는 공론과 연대의 장으로서 여러 주체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려 노력해 왔다.

김 본부장은 이처럼 4·30 전야제가 품어온 문제의식이 오늘의 노동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짚었다. 그는 노동자 민중의 오랜 투쟁으로 63년 만에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선원·운송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들은 온전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슴 벅차고 설레기보다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한바탕은 4·30 전야제의 역사와 백기완 선생의 뜻, 오늘의 노동 현실을 잇는 자리라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자본 중심의 이 사회를 넘어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의지와 뜻을 모으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백기완 선생이 생의 끝자락, 마지막으로 써내려간 네 글자 "노동해방"(백기완마당집 전시물). 참세상 류민.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이 주인공인 참여형 예술제”

30일 오후 6시 40분부터 9시 30분까지 청계광장 일대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 한바탕은 음악·시·춤·풍물·연극·영상·사진·그림 등 여러 장르가 어우러지는 복합 공연으로 꾸려진다. 조직위는 이번 한바탕을 노동자와 시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민중이 함께 주인공이 되는 참여형 예술제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3부로 구성된 공연마당은 풍물 전통 양식을 살린 사전마당으로 판을 연다. 1부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는 청년학생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단위가 ‘인터내셔널가’를 함께 부르고, 백기완 선생의 예술정신과 사회적 실천을 오늘로 소환하는 주제영상과 이야기, 공연 등이 이어진다.

2부 ‘예술이 앞장서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고진수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팔레스타인 주민, 베트남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투쟁하는 민중의 일과 삶을 톺아보는 영상과, 고 김용균·고 장덕준・·고 이동우 노동자 유가족 등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합동공연, 창작 시 낭독, 춤, 노래, 창작 연극 등이 펼쳐진다.

3부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떼기에 목숨을 걸어라’에서는 한바탕을 준비해 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함께 오디션으로 새롭게 발굴된 청년 민중가수와 89년 첫 노동절 전야제 당시 무대에 올랐던 민중가수 선배들의 컬래버 공연이 준비돼 있다. 이어서 풍물 공연과 참가자들이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합창, 대동놀이로 한바탕을 마무리한다.

광장 한편에는 ‘백기완과 미술’을 주제로 한 스크린 그림전시도 마련된다. 이날 무대는 배우 권해효가 사회를 맡으며, 정태춘, 하림, 연영석, 꽃다지, 민중가수연합, 극단 고래, 소설가 정지아, 시인 송경동, 한국민족춤협회, 풍물패 15곳 등 200명이 넘는 예술가와 노동자·시민이 참여할 예정이다.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 포스터

한바탕 개최, 힘 보태는 조직위원들...“이름없는 이들을 주목하는 예술을”

조직위는 당일 행사에 앞서 ‘문화예술 한바탕’ 개최에 필요한 힘을 함께 모을 조직위원도 모집하고 있다. 조직위는 “노동절 전야, 다시 서는 민중문화예술”을 내걸고, 백기완 선생 5주기를 맞아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며 함께 잘사는 노나메기 벗나래”를 향해 다시 일어서는 투쟁에 예술이 앞장서 길을 내는 자리에 함께해달라고 제안했다. 조직위원으로 함께하고 싶은 단체 혹은 개인은 이 링크를 통해 참여 신청을 할 수 있다.

개인 조직위원으로 힘을 보탠 20대 ‘말벌 동지’ 박수연 씨는 천안에 살며 전국 곳곳 여러 투쟁 현장에 연대하고 있는 시민이다. ‘말벌 동지’라는 표현은 지난해 겨울 윤석열 퇴진 광장 안팎을 넘나들며, ‘꿀벌’을 지키려 분주히 내달리는 ‘말벌 아저씨’처럼 투쟁하는 이들의 곁을 밝혀온 연대 시민들을 일컫는 표현 중 하나다.

수연 씨가 이번 한바탕에 기대하는 것은 예술이 다시 사회운동 속에서 자기 역할을 찾는 일이다. 그는 참세상과의 전화 통화에서 “예술은 현실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에 주목하게 하고, 회피하고 싶은 문제와 모순들을 마주 보게 만드는 불편함”을 환기해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예술이 노동자·시민이 마주한 현실과 떨어진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로만 머무르려는 경향을 넘어, 더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예술”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직위원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노동절 전야제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는 시도이기도 한 이번 한바탕이 “노동자들의 명절”처럼 노동절의 의미와 역할을 함께 더 오래 생각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도 이야기했다. “광장의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부제가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우리 사회와 운동을 지탱해 온 사람들을 주목하는 예술”의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고도 짚고는, 그러한 예술의 책무를 구현할 “이 문화예술 한바탕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함께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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