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의 엇갈린 유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22,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나는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미국의 경제학자로,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인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의 별세를 계기로 그가 남긴 공로는 분명하게 인정하고 싶다. 동시에 그가 두 차례의 거대한 자산 거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이 거품이 붕괴하면서 미국 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또한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제도(Fed)를 지나치게 불투명하게 운영했던 방식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새 연준 의장인 케빈 워시(Kevin Warsh)가 다시 그 시절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듯해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먼저 긍정적인 부분부터 보자. 그린스펀은 2000년 연평균 실업률이 4.0%까지 떨어지도록 허용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당시 경제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는 실업률이 6.0% 아래로 내려가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기 시작한다고 봤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주류 경제학자가 아니었고, 이런 통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5년 실업률이 이미 6.0% 아래로 떨어졌을 때 그는 당시 연준 이사였던 재닛 옐런(Janet Yellen)과 로런스 마이어(Lawrence Meyer)와 공개적으로 의견을 달리했다. 두 사람은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린스펀은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상 실업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그린스펀은 실업률이 5.0%, 다시 4.5%로 떨어질 때도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2000년에는 연평균 4.0%를 기록했고, 몇 달 동안은 3.9%, 심지어 3.8%까지 내려갔다. 덕분에 옐런과 마이어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일자리를 얻지 못했을 수백만 명이 실제로 취업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점은 1990년대 후반의 낮은 실업률이 수천만 명의 노동자에게 임금 협상력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저임금·중간임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것은 1970년대 초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이 시기는 경제학자들에게 실업률 6.0%가 결코 넘을 수 없는 하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준점이 되었다. 물론 연방정부의 일자리 보장 정책이 있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그린스펀의 역할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린스펀과 자산 거품

반면 그린스펀은 자신의 재임 기간에 형성된 두 차례의 거대한 자산 거품을 사실상 방치했다.

그는 1996년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해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그 발언 직후 주가는 급락했다. 그러나 곧 경제성장이 현재의 주가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모호한 설명을 내놓았고, 시장은 다시 반등해 이후 3년 반 동안 계속 상승했다.

거품은 20003월부터 꺼지기 시작했고, 결국 주식시장은 시가총액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다. 주요 기술주가 상장된 나스닥은 거의 80% 폭락했다. 사람들은 흔히 2001년 경기침체가 짧고 경미했다고 말하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무려 4년 동안 순고용을 늘리지 못했고, 1990년대 후반 계속되던 실질임금 상승도 곧 멈춘 뒤 오히려 후퇴했다.

다음에 찾아온 거품은 훨씬 심각했다. 주택시장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거품 조짐이 나타났다.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전반적인 물가와 비슷한 속도로 오르던 임대료 상승률과도 점점 괴리가 벌어졌다.

이 괴리는 2000년대 들어 더욱 커졌다. 낮은 금리도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지나치게 느슨한 대출 심사가 큰 원인이었다. 거품이 정점에 달한 2006년에는 실질 주택가격이 10년 전보다 70%나 높아졌다. 이후 거품이 무너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미국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실업률은 거의 10%까지 치솟았다.

거품이 붕괴한 뒤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누가 이런 일을 예상할 수 있었겠느냐"며 스스로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답은 명확하다. 모두가 알았어야 했다. 주택담보대출 기관들의 위험한 대출 관행은 비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를 자랑했다. 계약금 한 푼 없이 집을 사는 사람이 넘쳐났고, 이사 비용과 각종 수수료를 충당하려고 집값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리는 사례도 흔했다. 대출을 실행한 뒤 곧바로 이를 증권화해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는 관행도 마찬가지였다. 대출의 건전성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린스펀은 금융위기 이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005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중이 25%까지 늘어난 사실을 뒤늦게 우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퇴임하면서 이 사실을 후임인 벤 버냉키(Ben Bernanke)에게 전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화가 나는 대목이다. 연준 의장이 서브프라임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실조차 몰랐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웠다. 더 위험했던 알트-A 대출(신용도가 좋은 우량 대출(프라임)과 저신용 대출(서브프라임)의 중간에 있는 주택담보대출)도 전체의 15%까지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린스펀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느 쪽이 더 심각한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자산 거품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나

나는 이 문제를 이전에도 여러 차례 썼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짚겠다. 우선 주식시장 거품은 말만 했어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린스펀이 무심코 던진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연준이 미래 GDP와 기업이익 전망에 비춰 현재 주가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높은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해 보라.

투자자들이 반드시 그린스펀의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명의 사람들이 거품을 경고할 때는 "누가 알았겠느냐"는 변명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연준 의장이 직접 경고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연기금이나 대학기금에서 수백억 달러를 운용하는 사람이 거품 붕괴 뒤 "그린스펀의 경고를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다음에 서게 될 곳은 투자위원회가 아니라 실업급여 창구일 것이다.

주택시장 거품은 경고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연준은 금융기관을 감독할 상당한 권한도 갖고 있었다.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위험한 대출을 남발하는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연준이 규제를 강화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연준은 거품이 터진 뒤에야 주택담보대출 지침을 개정했다.

그린스펀은 연준이 불투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문제는 새 연준 의장인 케빈 워시가 다시 그린스펀 시절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여 더욱 시의적절하다. 지난주에도 이 문제를 썼지만, 당시 글의 일부를 다시 인용하겠다.

"앨런 그린스펀 시절 연준은 의도적으로 불투명하게 움직였다.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전날 그린스펀이 중요한 연설을 했고, 당시에는 길거리 신문 판매대에서 신문을 사곤 했다. 지나가면서 신문 1면을 훑어봤는데, 절반은 '그린스펀, 금리 인상 시사'라는 식의 제목을 달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린스펀, 금리 동결 시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언론 보도를 꼼꼼히 챙겨보던 그린스펀은 이를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큰 연설을 했는데도 아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임인 벤 버냉키는 연준 운영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는 연준 정책에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가까운 미래 금리 방향에 대한 연준의 전망을 미리 시장에 알려주겠다는 뜻이다. 이후 재닛 옐런과 제롬 파월(Jerome Powell)도 이 정책을 이어갔다. 이들은 연준의 정책 결정이 시장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나는 이런 접근이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밝히면 기업들의 투자 결정이 훨씬 예측 가능해질 뿐 아니라, 부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당시 나는 이렇게 썼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연준 이사를 지낸 웨인 앤절(Wayne Angell)은 퇴임 후 분당 100달러(현재 가치로 약 220달러)를 받는 고액 컨설턴트가 됐다. 그가 미국 경제를 통찰력 있게 분석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시장이 돈을 지불한 이유는 전직 동료들이 금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준이 정책 의도를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준다는 이유만으로 분당 220달러를 받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케빈 워시가 연준의 투명성을 얼마나 후퇴시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투명성이 줄어들수록 부패가 개입할 여지는 커진다."

어쨌든 그린스펀이 의도적으로 연준을 불투명하게 운영한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니었다. 케빈 워시가 의장으로서 그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Alan Greenspan’s Mixed Legacy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딘 베이커(Dean Baker)는 1999년에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를 공동 설립했다. 주택 및 거시경제, 지적 재산권, 사회보장, 메디케어, 유럽 노동 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현대 경제의 규칙은 어떻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가'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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