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브 스미스 주: 곧 닥칠 식량 위기에 관한 글을 보내준 루벤 바우어 나베이라(Ruben Bauer Naveira)를 환영한다. 그는 이란 전쟁으로 상황이 바뀐 점을 반영해 원고도 업데이트했다.

이 사이트는 다른 많은 곳과 마찬가지로 비료 공급 감소와 높은 에너지 비용, 특히 디젤 가격 상승이 결국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일찍부터 경고해 왔다. 여기에 초강력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수확량 감소는 더욱 심해지고, 주식 가격은 더 크게 오르며, 광범위한 기아를 넘어 아사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이른바 '가로등 아래에서만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식의 사고에 빠져 있었다. 공직자들과 이를 따라가는 언론, 논평가들은 전쟁 상황과 정치적 셈법, 그리고 가장 눈에 띄고 당장 부족해질 자원인 원유와 디젤·가솔린·항공유 같은 주요 연료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이미 예정된 식량 부족은 절망을 낳을 뿐 아니라 사회적 격변까지 촉발할 수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식량 폭동을 떠올려 보라. 아랍의 봄 역시 상당 부분 식량 가격 급등이 촉매가 됐다. 그럼에도 지금 식량 문제에는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암묵적인 태도는 어차피 손쓸 방법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거나, 더 나쁘게는 결국 고통받는 사람은 원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허리띠만 조금 졸라매면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루벤은 서로 얽힌 공급 부족의 심각한 규모를 설명하며, 농가의 파종 현황을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는 탓에 당국도 농업 생산이 얼마나 감소할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재앙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평소와 다름없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진 이유를, 대부분의 분석·의사결정 자리에서 넓은 시스템적 시각을 가진 사람보다 선형적이고 협소한 사고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루벤은 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서로 다른 신념과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을 피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는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개발한 구조화된 '대화(Dialogue)' 과정이 이러한 쟁점들을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화 방식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과테말라의 국민 화해 과정, 그리고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활용됐다.

브라질의 활동가이자 평화주의자인 루벤 바우어 나베이라(Ruben Bauer Naveira)가 썼다. 그는 『모두 함께 아니면 모두 함께 끝난다:핵전쟁 이후의 삶』(One and all or none at all: Life after nuclear war)의 저자다. 원문은 aterraeredondaviomundo에 포르투갈어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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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고다. 이란 전쟁과 그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농식품 시스템을 떠받치는 공급망을 붕괴시키면서 전 세계 식량 위기가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경제 주체는 이 위험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공급 위기는 대체로 수요·공급의 법칙으로 해결한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불평하면서도 값을 치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 싼 대체재를 찾는다. 아니면 아예 포기한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식량이다. 식량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시장은 스스로 조정한다'고 믿으며 이번 공급 위기도 결국 가격 상승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즉 식량 가격은 비싸지겠지만 그래도 식량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한계점이 있다. 공급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문제는 식량이 비싸지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모두에게 돌아갈 식량 자체가 부족해진다는 데 있다. 이 글은 그 작동 원리를 잘 설명한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충격 이후 균형을 회복하는 세계 경제의 항상성 메커니즘이라면, 공급망은 그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공급망 교란과 이상기후는 그동안에도 특정 국가를 주기적으로 괴롭혔지만, 세계 무역이 이를 상쇄해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세계 모든 지역의 농민이 동시에 공급 감소와 투입 비용 상승이라는 문제를 겪는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비료, 농약, 디젤, 윤활유, 운송비가 모두 오르고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 어디에서든 농민은 보통 사람보다 초강력 엘니뇨 소식에 훨씬 더 민감하게 귀를 기울인다.

농업은 원래 이윤이 박하고 불확실성이 큰 산업이며, 생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이번 파종을 건너뛸지, 아니면 재배 면적을 줄일지는 각 농민이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농업은 분산된 산업이어서 느슨하게나마 조정하는 수준에 그친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생산자가 파종을 포기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228일 이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농민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오늘 심은 식량은 수확하고, 가공하고, 운송하고, 유통해 소비하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우리가 오늘 먹는 식량은 몇 달 전, 경우에 따라서는 1년 이상 전에 심은 것이다. 가축도 식물성 사료를 먹고 자라므로 축산물도 마찬가지다. 이는 세계가 내일이 아니라 몇 달 뒤, 어쩌면 내년에 위기를 맞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수확량은 집계하지만, 파종량은 집계하지 않는다. 애초에 심지 않은 면적은 더더욱 알지 못한다. 줄어든 수확이 실제로 나타나야만 문제의 진짜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는 이미 '비싼 식량'에서 '실제로 부족한 식량'으로 넘어가는 임계점을 넘었을까? 누구도 알지 못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된 날이 하루 늘어날 때마다 상황은 더 악화했다.

대규모 기아는 사회적 격변을 낳는다. 이란 전쟁 이후 조용히 진행되는 상황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경제·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공급망 붕괴

먼저 분명히 해두겠다. 이것은 단지 세계 식량 위기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세계 공급망을 관통하는 위기다. 석유 파생제품이 사실상 모든 공급망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부족은 플라스틱, 페인트와 수많은 하위 산업으로 파급되며 자동차 산업까지 타격한다.

○ 항공유 부족은 관광산업을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호텔과 외식업에 영향을 미친다.

○ 화물선을 움직이는 벙커유 부족은 전 세계 해상무역을 교란하며 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산한다.

○ 윤활유와 그리스(윤활제) 부족은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기계는 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정유 과정의 부산물인 황 부족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학물질인 황산 생산을 위축시킨다. 황산은 수많은 생산 공정에 쓰인다. 광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구리와 니켈 생산 감소는 전력 산업 전반과 배터리 산업으로 이어져 세계 청정에너지 전환에도 차질을 빚는다. 황산은 도시 상·하수 처리, 정유, 철강, 섬유, 펄프·제지, 고무, 가죽, 화학제품, 의약품, 화장품 생산에도 사용한다.

○ 천연가스 액화 과정의 부산물인 헬륨 부족은 반도체 생산을 위협하며 전자산업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도 헬륨이 있어야 작동하기 때문에 의료 분야도 타격을 받는다. 중국은 이미 헬륨 수출을 중단했다.

○ 전쟁 전까지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세계 알루미늄 수출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

○ 이런 모든 요인은 결국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파급효과는 너무 광범위하고 심대해서 실제 영향이 연쇄적으로 확산하기 전에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닷새 뒤인 34, 크레이그 틴데일(Craig Tindale)은 이미 이런 교란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확산할지를 큰 틀에서 제시했다. 그는 5년 이상에 걸쳐 12단계의 연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결국 문명 차원의 세계 재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석유와 석유 파생제품에 의존하는 공급망 교란은 지금까지는 각국이 위기 대응을 위해 비축해 둔 석유를 사용하면서 어느 정도 완화했다. 미국은 비축유를 대부분 소진했을 뿐 아니라 이를 낮은 가격에 수출해 국제 유가를 억눌렀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도 이 기간 수입을 줄였다. 그러나 세계 비축량은 이제 사실상 바닥났고, 중국도 다시 수입을 늘리면서 더 이상 위기를 미룰 수 없게 됐다.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설령 실제로 끝났더라도 이런 여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예를 들어 이 영상을 보라).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정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해상 운송이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공급망이 가능한 범위에서 어느 정도 정상화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전쟁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하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장애물이 있다.

○ 석유·가스 시설 폭격으로 물리적 피해가 발생해 일부 공급 능력은 수년 동안 회복하지 못한다.

○ 저장 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강제로 가동을 중단했던 유정을 다시 생산 상태로 돌리는 일도 느리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오랜 제재 속에서 이에 적응해 온 이란보다 걸프 국가들에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 선사와 보험사는 선박과 화물의 가치, 장기 승무원 운용, 연료비, 항만·통관 비용 등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다. 따라서 이들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선박을 보내려면 실제로 안전하다고 확신해야 한다. 예를 들어 후티 반군은 1년 넘게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홍해 항로의 통행량은 공격 이전의 75% 수준에 그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후티 반군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역시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 계속 주둔할 것이다. 분석가들은 예측일 뿐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설령 오늘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되더라도 올해 말 통행량은 전쟁 이전의 약 40%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본다. 여기에 자국민이 페르시아만으로 향하는 선박의 승무원으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들이 등장하는 등 전례 없는 새로운 변수도 생겨나고 있다.

○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려면 이 영상의 2715초부터 시청하면 된다.

세계 식량 위기

식량 공급망 역시 비료, 농약, 농기계, 디젤, 윤활유, 운송 등 다른 모든 공급망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교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식량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만약 슈퍼마켓에서 쓰레기봉투가 사라진다면(쓰레기봉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플라스틱은 고분자로 만들며, 고분자는 나프타로 만들고, 나프타는 석유에서 얻는다)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씻으며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식량 부족에는 그런 대안이 없다. 식량 생산망이 조금이라도 끊어지면 사회 혼란은 불가피하다.

세계 식량 위기를 초래할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전쟁 이전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세계 요소 생산의 약 35%, 황 생산의 40%,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의 20%를 차지했다. 요소는 질소비료의 핵심 원료이고, 황산(황으로 생산)은 인산비료의 핵심 원료이며, LNG는 요소 생산의 원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는 카타르산 LNG를 사용하는 요소 공장을 운영했지만, 카타르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산업 가운데 하나였고 현재 공장들은 가동을 멈췄다. 페르시아만 봉쇄는 세계 비료 공급망을 끊었고, 이는 곧바로 세계 식량 공급망에 영향을 미쳤다.

○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주요 비료 수출국들은 자국의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수출을 중단했다. 인도는 중국에 긴급히 비료 공급을 요청했지만, 중국은 자국 수요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 전쟁 이후 세계 비료 가격은 폭등했다. 최근 가격이 다소 하락했지만 이는 수요 파괴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농민이 파종을 포기하면서 비료가 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미국은 최근 비료를 둘러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여기와 여기 참조).

○ 세계 최대 황산 생산·수출국인 중국(세계 생산량의 40% 이상)은 황산 수출을 중단했다. 이 조치로 칠레와 콩고민주공화국의 구리 광산,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 카자흐스탄의 우라늄 광산이 위협받고 있다. 전 세계 황산 소비량의 약 절반은 인산비료 생산에 사용한다.

○ 모든 작물은 계절에 맞춘 짧은 파종 시기를 가진다. 전쟁 이전에 파종을 마친 작물은 영향받지 않지만, 그 수확은 아직 몇 달 뒤이기 때문에 당분간 위기를 가릴 것이다. 지금 세계가 소비하는 식량은 수개월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전에 심거나 수확한 것이다. 전쟁 발발 이후 예정된 파종도 필요한 비료를 미리 비축하면 정상적으로 진행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농민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예정이던 비료를, 희망봉을 우회한 선박으로 약 20일 늦게 받았다. 비료를 더 비싼 값에 구했더라도 적기를 놓친 탓에 수확량은 감소했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투입 비용 상승 때문에 농민이 아예 파종을 포기하는 경우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는 대두 재배(중국이 미국산 대두 시장을 다시 개방했음에도, 태국에서는 벼 재배(이 보고서 참조)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9~10월까지 이어진다면 황 생산이 없는 국가들은 비축분을 모두 소진하고 인산비료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 같은 면적에 비료를 덜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오랜 연작으로 토양은 이미 고갈됐다. NPK(질소··칼륨) 비료가 없으면 토양은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다. 더욱이 관계는 선형적이지 않다. 비료를 10% 줄이면 수확량은 30% 감소할 수도 있다(비율은 작물마다 다르며, 예를 들어 옥수수는 대두보다 비료를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 대규모 농가는 비싸고 부족한 비료를 대체할 방법이 없으며, 소규모 농민들은 필사적으로 임시방편을 찾고 있다.

○ 그 결과 작물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옥수수 농가는 대두로 바꾸고, 태국에서는 벼농사 대신 논에 물을 채워 물고기를 키우는 농민도 나타나고 있다. 결국 소비자도 식생활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

○ 비료뿐 아니라 농약 공급망도 붕괴할 것이다. 농약은 석유화학 나프타를 원료로 생산한다. 톨루엔과 자일렌이 풍부한 개질유는 중질 나프타에서 추출하고, 벤젠이 풍부한 열분해 가솔린은 경질 나프타를 스팀 크래킹해 생산한다. 벤젠·톨루엔·자일렌(BTX)은 거의 모든 상업용 제초제·살균제·살충제의 핵심 화학물질이다. 또한 농약을 효과적으로 살포하려면 유효성분을 중질 방향족 용제에 녹여야 하는데, 이 역시 BTX 유도체다. 현대 농업은 집중적인 화학적 보호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 오늘날의 작물 품종은 농약이 없으면 병해충을 견딜 고유한 저항력을 갖추지 못했다.

○ 세계 농업은 원래 낮은 수익률과 높은 고정비용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비싸고 부족한 비료와 농약뿐 아니라 디젤 가격 상승, 트랙터와 콤바인의 윤활유 가격 상승, 운송비와 물류비 상승까지 겹쳤다. 많은 농민은 이번 파종을 포기하고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고, 아예 농업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일은 정부가 문제의 규모를 파악하고 대응에 나서기 훨씬 전에 벌어진다. 오늘 심거나 심지 않은 작물은 수개월 뒤에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의 전면적 충격은 2027년에야 나타날 것이다.

○ 예상대로 자본력이 부족한 소농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며, 빼돌린 비료나 가짜 비료·농약을 거래하는 암시장과 회색시장이 확대할 것이다.

○ 축산업도 곡물 생산만큼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옥수수와 대두는 육류 산업의 핵심 사료다. 곡물 부족은 가금류와 돼지를 조기 도축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 각국은 식량 수입 확보 경쟁에 뛰어들 것이며, 세계 시장과 국내 시장 모두에서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 곡물, 칼륨비료, 인산염, 농약을 비축한 국가는 이를 거래 상품이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 취급할 것이다. 중국이 황산을 그렇게 취급한 것처럼 말이다. 수출 통제, 긴급 배급, 사재기가 정상적인 상거래를 대신할 것이다. 자국 식량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정부는 비료와 농약 원료, 완제품 비료와 농약, 그리고 식량 자체를 비축할 가능성이 크다.

○ 이것만으로도 아주 심각하지만, 2026년 하반기부터 2027년에 걸쳐 극한 기후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는 식량 위기가 가장 심각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진정한 '초대형 경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기상학자들은 이미 '초강력 엘니뇨' 발생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으며, 전 세계에 가뭄·홍수·극심한 폭염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한다. 그 규모는 전 세계 5천만 명 이상이 사망한 1877년 대기근 역시 엘니뇨로 발생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파괴적인 기상 재난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확실히 알게 됐다.

○ 가뭄과 홍수는 모두 비료 효과를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가뭄 지역에서는 물이 영양분을 녹여 식물 뿌리로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토양 수분이 부족하면 비료는 흡수되지 않는다. 반대로 홍수 지역에서는 과도한 강우가 질소와 인산염을 식물이 흡수하기도 전에 토양에서 씻어낸다.

○ 이미 기후변화에 큰 충격을 받은 농민들은 엘니뇨의 피해를 예상하고 아예 파종을 포기할 수도 있다.

○ 적도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해양 이상 현상인 엘니뇨는 차갑고 영양분이 풍부한 심층수의 용승을 근본적으로 방해한다. 그 결과 세계 생선가루와 어유 생산의 핵심인 페루 멸치 어장이 붕괴한다. 이는 축산과 양식 사료 시장 전반에 단백질 부족을 일으킨다. 어분 부산물은 고급 유기비료와 토양 개량제로도 널리 사용한다. 황산과 요소를 원료로 하는 합성비료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엘니뇨와 어선 연료비 상승(여기 참조)으로 어업까지 붕괴해 유기비료도 사라진다면 세계 농민들은 또 하나의 초대형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다른 변수도 겹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러시아의 흑해 밀 수출까지 중단시켰다.

시스템 사고의 부족

인간은 세상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려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단순화해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만나면 우리는 전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을 따로 연구한다.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각 부분 안에서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찾아내 예측 가능성을 얻으려 한다.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허용 가능한 오차 범위 안에서는 이런 방식이 어느 정도 잘 작동한다. 실제보다 단순한 세계처럼 다루면서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민은 Y주 안에 X만큼의 비료를 사용해 W톤의 수확을 거두고 Z의 이익을 기대한다.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선형적 사고방식이다.

이처럼 선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즉 대체로 일반론자보다 전문가들은 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고 기업과 정부의 최고위직에 오른다. 예측 가능성이 성과를 만들고, 성과가 보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본래부터 근본적으로 복잡했으며, 지금 다가오는 식량 위기처럼 때때로 우리의 단순화 도구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재편된다. 세계가 더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복잡했다. 다만 복잡성이 어느 순간 우리의 예측 능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커지고, 예측은 희망 사항에 불과한 믿음으로 전락한다. 지금 사람들이 전쟁 이전 수준의 걸프 지역 수출이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그런 믿음 가운데 하나다.

예측할 수 없으면 사람도 기업도 정부도 사회도 사실상 앞을 보지 못한다.

복잡성 과학은 오래전부터 진정으로 복잡한 시스템은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변수들이 많고 서로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복잡성 과학은 예측 대신 다른 과학적 목표를 제시한다. 복잡한 시스템 전체의 행동 양식을 정량이 아니라 정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식량 생산 공급망만 하나의 독립된 연구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 충분히 타당했다. 물론 신용시장, 보험시장, 운송비, 정부 개입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안정된 시기에는 그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충격이 세계 금융 시스템까지 전파될 것이며(문제는 언제냐뿐이다), 운송비와 물류는 예측할 수 없이 변동하고, 정부는 수출하던 투입재를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 경제에 개입할 것이다. 이제 식량 안보를 연구하려면 세계 경제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봐야 한다. 이는 곧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자들은 습관적으로 남아 있는 예측 가능성에 매달릴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위험 대시보드, 상황실, 위기대응위원회다. 이런 도구는 필요하며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최소한 세계가 다시 안정돼 예측이 의미를 되찾을 때까지는 기본적인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예측이 아니라 행동 양식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한 도구는 선형적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 사고다.

시스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보다 일반론자인 경우가 많으며,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추적하기보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 행동 양식을 이해한다.

크레이그 틴데일은 그런 사례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에 일으키는 연쇄 충격을 분석했으며,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룬 다른 분석도 발표했다. 특히 식량 위기와 관련해서는 압박을 받는 농식품 시스템의 행동 양식을 일련의 도표로 정리해, 선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도 시스템의 역학을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시스템 사고가는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이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 이번 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과 영상을 강력히 권한다(예를 들어 여기, 여기, 여기 참조). 지정학 분야에서는 아르노 베르트랑(Arnaud Bertrand), 에마뉘엘 토드(Emmanuel Todd), 앨러스테어 크룩(Alastair Crooke)이 중요한 시스템 사고가다.

대부분의 사람이 선형적으로 사고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시스템 사고가는 드물고, 지도자급에서는 더욱 드물다. 해결책은 시스템 사고가를 찾아 권한을 주는 데만 있지 않다. 물론 그것도 도움이 된다. 진정한 해결책은 가장 뛰어난 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관된 시스템 사고를 구축하는 데 있다.

높은 복잡성 조건에서 선형적 사고가 실패한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의 의사결정이 잘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그런 결정으로 자신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지금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원유를 자급할 수 있으며, 지도부는 이를 근거로 공급 충격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심지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세계 다른 나라의 문제"일 뿐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래 그림(출처)은 그런 논리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은 이 논리 가운데 핵심인 5번 항목, 미국 정유시설은 중질 고유황 원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발전시킨다. 미국이 생산하는 경질 저유황 원유가 과잉 공급돼도, 미국이 수입해야 하는 중질 고유황 원유가 부족할 때만큼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시스템적 파급효과의 한 사례다.

어쨌든 봉쇄가 시작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미국의 윤활유 공급망은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선형적 사고만으로는 사실상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서라면 이해하고 어느 정도는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디젤 공급도 미국 소비자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모든 디젤 수출을 중단했다.

이런 붕괴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윤활유는 승용차 엔진오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농기계에도 필요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항공기 조종계통, 산업용 승강기, 유압실린더, 굴착기 등 수많은 장비에 윤활유가 필요하다. 식량 문제에서는 생산 실패보다 유통 실패가 먼저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윤활유가 부족해지면 물류센터에서 식품을 옮기는 데 필수적인 지게차의 가동 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형적 사고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호르무즈 해협이 대규모 경제 충격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빨리 다시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미국은 이를 전제로 전략비축유와 가스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세계 시장에 풀어 국제 가격을 억제하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소비자를 연료 가격 급등에서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다른 나라들까지 세계 위기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게 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기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전쟁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할 가능성도 낮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공급 충격에 대비한 완충 수단을 크게 소진해 훨씬 더 취약한 상태에 놓였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선형적 사고의 오류는 따로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고위 민간·군사 지도부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수 주 동안 대규모 폭격을 이어가면 정권이 반드시 무너지고 이란이 항복할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이 점은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모델의 실패와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

위기가 시작해 변곡점에 이르기까지는 임시방편과 긴급대책 외에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하강 곡선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하면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둘러싼 더 폭넓은 거시적 문제 제기가 힘을 얻을 것이다.

현재의 대규모 산업농업 모델은 이미 많은 문제와 외부효과를 안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늘리는 육상·해상·항공 장거리 운송 의존, 전통 농법으로 기른 식품보다 낮은 영양가, 농민과 소비자 모두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공중보건 위험, 토양 고갈, 집약적 관개에 따른 대수층과 지하수 고갈, 토양과 수질의 화학오염,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 공공재정과 보조금 의존 등이 그 예다. 이런 취약성을 전반적으로 다룬 시스템 분석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이런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용인해 왔다. 마치 기아가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노골적인 재앙으로 바뀌고, 초강력 엘니뇨가 이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들면 이 모델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다.

그때는 대안 모델인 농생태학(agroecology)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분명해질 것이다. 농생태학은 현재 모델의 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만성적 식량불안에 놓인 수백만 가구에 생계와 일자리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다. 농생태학은 오늘날 어디에나 퍼진 단작이 아니라 생물다양성에 기반한다. 전 세계가 농생태학 모델로 전환하면 지구를 대규모로 재조림할 수 있다. 이는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출구일 수도 있다.

식량 생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세계 공급망의 위기는 세계 금융 시스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농식품 모델과 마찬가지로, 특히 서방 국가에서 산업자본주의를 대신해 금융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된 동력이 된 이후 채택한 금융 모델도 결국 분명한 소진 징후를 드러낼 것이다.

그 징후 가운데 하나는 세계 각국 정부가 다가오는 재앙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나타난다. 금융 시스템이 자기 지시적이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체계가 아니라 실물경제와 최소한의 연계라도 유지했다면, 모든 사람의 어깨 위로 쏟아질 문제들을 오래전부터 경고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비상사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움직여 왔다. 특히 스티브 킨(Steve Keen)의 이 영상을 보라. JP모건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는 시나리오에서 유가 흐름을 모형화했지만, 결과가 너무 불편해 연구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 글도 참조할 수 있다.

빅테크 기업의 가치는 컴퓨터 속 상징적 비트의 가치와 비례한다. 반면 실물경제 기업의 가치는 각자 공급망에 포함된 석유·가스 파생제품, 즉 물리적 탄화수소 분자의 가치와 비례한다. 이른바 시장이 비트 하나의 가치를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 하나보다 천 배 높게 매긴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비트는 언제든 만들 수 있지만, 탄화수소가 부족해지면 비트 천 개를 합쳐도 분자 하나를 만들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돈으로 돈을 버는 데 익숙해진 시장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가 실물경제라는 사실을 최악의 방식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애초에 경제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 순간 정부, 특히 서방 정부는 자동조종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그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방식대로 움직일 것이다. 2008년 위기 때 그랬듯 실물경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부터 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식량 가격이 오를 때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라고 경고하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금리를 올릴 것이다. 그러나 원유의 공급·가격 충격이 수요를 파괴하면 실물경제 기업들은 약해지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예고한다. 그때 금리 인상은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약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모델에서는 금융 시스템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산업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중국에도 민간 금융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공공 금융 시스템에 종속되고 통합돼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예측해 보겠다. 금융 시스템과 농식품 시스템 등 경제 전반의 기능장애를 부정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므로, 엘니뇨가 실제로 일으킨 문제와 일으키지 않은 문제까지 결국 모두 엘니뇨 탓으로 돌릴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기능장애를 잘 보지 못하지만, 이상기후는 누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붕괴의 모든 원인을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자연현상 탓으로 돌리는 일은 너무도 편리하다. 실제로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안

나는 위기의 전개를 추적하고, 앞으로 닥칠 문제를 예측하며, 가능한 대응을 찾기 위해 기존의 위기관리 도구인 위험관리위원회, 상황실, 비상내각에 진정한 시스템 사고 역량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이는 시스템 사고가를 찾아 권한을 주자는 뜻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핵심은 각자 좁지만, 고도로 전문화된 수많은 선형적 사고의 흐름을 하나의 일관되고 통합된 시스템 사고로 엮는 데 있다.

이를 위한 도구가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 1917~1992)40여 년 전에 개발한 대화(Dialogue)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지금까지 대규모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왜 이것이 적합한 도구라고 보는지 설명하려면 제안을 제시하기 전에 몇 가지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양자물리학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구성요소인 아원자 입자의 행동을 연구한다. 이런 입자는 물질과 에너지로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 양자물리학의 발견 가운데 하나는 거시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국소성(non-locality) 원리다. 이것은 직관에 크게 어긋난다. 입자가 먼 거리에서도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영상에 기록된 실험으로 이를 설명한다. 한 반려견이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주인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을 매번 정확히 감지했다.

봄은 전체성(Wholeness)’ 개념을 발전시켰다. 우주의 모든 아원자 입자가 서로 연결돼 일관되고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 현실의 층위를 내재적 질서 또는 근원적 질서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의 감각이 접근할 수 있는 외현적 질서 아래 놓인 미시적 토대다. 외현적 질서란 동물, 나무, 바위, 사물, , 우리 자신처럼 서로 분리된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이들은 전체 안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며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별도 죽는다. 그러면 별을 이루던 입자는 다시 전체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끝날 때 그렇게 해체된다.

봄은 이어 정신 상태, 즉 생각과 지식도 물리적 사물과 마찬가지로 아원자 입자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입자는 물질이면서 에너지이기 때문에 생각과 지식 역시 전체의 일관성 안에 속한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수십 년을 개인의 생각과 지식을 자신이 인간의 집단의식이라고 본 것과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 바쳤다. 모든 인간 문제는 우리가 서로 분리된 존재라고 잘못 믿는 데서 비롯된다는 전제였다. 다시 말해 전체 안에서 누리는 상대적 자율성을 실제적인 분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가 도달한 과정이 대화(dialogue)’였다. 그러나 봄이 말한 대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단순한 대화와 전혀 다르다. 봄의 의미에서 대화란 개인의 정신을 공동의 집단적 사고 흐름에 연결하도록 훈련하는 규율 있고 누적적인 과정이다. 이 집단적 사고는 계획하거나 설계할 수 없다. 스스로 출현한다. 복잡성 이론의 표현을 빌리면 전체의 창발적 속성이다. 여기서 전체는 대화를 실천하는 집단이다.

이 훈련은 20~40명 규모의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규모 자체가 방법론적으로 중요하다. 봄은 주 1회나 격주 1회 정기모임을 권고했고, 모임은 구체적인 지침에 따라 진행한다. 모든 참가자가 같은 과정을 동시에 거치면서 각자의 사고가 그 집단에 고유한 집단적 사고 흐름과 조화를 이루도록 훈련한다.

여기에서 이 방법론이 뿌리내리지 못한 두 가지 이유가 나온다.

첫째, 이 과정은 매우 고되다. 참가자 각자가 투입해야 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크며, 실제 훈련에는 진정한 규율이 필요하다. 참가자들은 흔히 이를 고된 과정이라고 말한다. 시간도 많이 든다. 봄은 한 집단이 최상의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약 1년이 걸린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대화의 결실이 익을 때까지 기다릴 인내가 있다면, 그 결과는 더 빠른 방법으로 만든 어떤 것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집단적 사고는 내재적 질서에 속하기 때문에 세계는 그것이 외현적 질서의 조건에 맞춰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이유는 더 근본적이다. 출현한 집단적 사고는 집단 내부 사람만 접근할 수 있고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다. 세계 식량 위기 상황에서 대화 집단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뛰어난 제안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해야 하는 의사결정자가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선형적 사고로 그 제안을 평가할 것이고 그 전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봄은 대화가 모든 인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이 겪는 가장 난해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실제로 그의 방법론을 통해 해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현재 이란 전쟁의 기원에도 이 갈등이 놓여 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단은 각각 약 20명 규모로 오슬로에서 비밀리에 만나 대화 집단 형식으로 협상했고 평화협정 조건에 합의했다. 이 협정은 1993913일 백악관에서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서명했다. 그러나 협상 집단이 도달한 집단적 사고, 즉 두 민족의 평화와 공존을 아우르는 사고는 양측 지도자가 지지했음에도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협정을 무너뜨릴 때까지 방해했다. 라빈과 아라파트 모두 나중에 목숨을 잃었다. 라빈은 자신의 경호팀이 사실상 방조한 암살로 총격을 당했고, 아라파트는 독살됐다.

오슬로 협정과 더불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과테말라의 국민 화해 과정처럼 이 방법론을 적용한 다른 사례들은 대화 집단이 갈등 상황에 특히 적합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생각과 관점이 충돌할 때마다 과정에 유용한 풍부한 재료가 생긴다. 갈등은 인간 조건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넘어선 새로운 현실은 생각이 충돌하는 개인이라는 부분의 수준에서는 출현할 수 없다. 오직 전체의 수준, 즉 집단의 집단적 사고로만 출현할 수 있다. 바로 그래서 이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는 세계 식량 위기처럼 복잡한 문제에도 특히 적합하다. 이런 문제는 참여자마다 필연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는 일 자체가 개인적 적대감이 없더라도 하나의 갈등을 이룬다.

대화 과정은 특히 초기에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집단이 집단지성을 형성하면서 매우 큰 보람을 준다. 모든 참가자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경험이 된다. 대화는 예상하지 못한 리듬과 속도를 띠고, 대화의 결은 더 섬세해지며, 집단적 통찰이 예고 없이 떠오른다. 전체가 부분을 조직한다. 각 참가자의 사고가 여전히 선형적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나온 집단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시스템적이다.

대화 집단이 세계 식량 위기를 치료할 수는 없다. 같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세계의 식량은 줄어들 것이고, 기아와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대화 집단은 우리가 함께 안고 있는 무능력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자료와 지식,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비교적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는 무능력, 그 그림을 제때 갱신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리고 그로부터 가능하면서도 필요한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줄일 수 있다.

[출처] The Global Food Crisis | naked capitalism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이브 스미스(Yves Smith)는 미국의 금융·경제·정치 분석가이자 블로거, 저술가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과 월스트리트의 권력 구조,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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