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그늘진 헌법재판소 앞, 무지갯빛 볕이 들었다. 성소수자 시민들은 “우리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증거”라며 “윤석열을 파면하고, 평등과 민주주의, 존엄이 보장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함께 싸워가겠다 마음을 모았다. “성소수자가 요구한다. 윤석열 파면!”이라 적힌 피켓을 든 이들의 곁으로 차츰 볕이 들어, 거리를 밝히고 온기를 더했다.
14일 오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은 헌재 앞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선언했다. 이들은 혐오정치에 기대어 “성소수자 존재와 권리를 부정하고, 성평등 정책을 무력화해 온”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성소수자에게 생존과 존엄의 문제”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파괴한 윤 대통령의 빠른 파면을 촉구했다.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참세상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지금 광장에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있다. 광장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단에 올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광장의 문법으로 만들면서 함께 윤석열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면서 “우리는 성소수자 시민의 이름으로 윤석열의 파면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한희 변호사는 또한 “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저지르고, 인권위를 점거한 극우세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우려하고 있다”며 “극우 세력의 주축인 전광훈 손현보와 같은 극우 개신교 목사들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고 짚었다.
박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차별과 폭력에 맞서 단호한 입장을 보여달라. 만장일치로 지금 당장 윤석열을 파면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하고, “성소수자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을 넘어, 평등과 민주주의, 존엄이 보장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계속 투쟁해 나가겠다” 말했다.
양선우(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활동가는 “서로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혐오를 멈추고,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지평이 없어지는 기적들을 우리는 매주 (광장에서) 만들고 있다.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기를,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 권력구조가 바뀌는 사회를 다양한 목소리들이 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고 짚었다. 홀릭 활동가는 “사회는 권력자들이 변화시키지 않는다. 사회에서 외면받고 차별받는 사람들, 보장받지 못한 인권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의 힘으로 변화시켜 왔다”면서 “지금 광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 강조했다.
서다은 한국교회를위한퀴어한질문 큐앤에이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는 계속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여성 성소수자인 저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키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소수자 복지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여 성소수자를 비롯한 여성 아동 장애인 이주민의 삶터와 일터를 망가뜨리며 성소수자인 제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고 환기했다.
서다은 활동가는 “스탑 더 스틸(Stop The Steal,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극우들의 구호)은 우리가 외칠 것”이라며 “성소수자의 삶터를 도둑질하지 말라. 성소수자의 일터를 도둑질하지 말라. 성소수자의 살만한 삶을 도둑질하지 말라. 성소수자인 우리의 권리를 박탈한 윤석열 씨를 내쫓을 우리의 권리를 도둑질하지 말라”고 소리 높였다.
이어서 “우리는 지금까지 견뎌온 폭력과 차별이 더 이상 우리의 언어가 아니기를 바라며 혐오와 배제와 작별을 고하고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 성소수자는 서로의 살만한 삶 모두의 살만한 삶을 지키기 위하여 윤석열 씨가 파면되고 그 공모자들이 적합한 처벌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정의를 외치고 우리 자신이 고유한 모습을 지키며 서로의 곁을 지킬 것이다. 그것이 바로 헌법이 헌법을 수호하는 일”이라 이야기했다.
"성소수자 요구한다. 윤석열 파면!". 참세상
HIV/AIDS 인권행동 알 활동가이자 성소수자이고 HIV 감염인인 최장원 작가는 “윤석열과 정부가 보이는 인권을 경시하는 태도들은 HIV감염인과 성소수자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많은 혐오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중에는 HIV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들도 있었다”면서 “모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윤석열은 시민에 의해 탄핵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혐오정치의 피해는 결국 사회 전체로 돌아온다. 차별과 편견이 고착되면 결국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혐오정치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몇몇 소수의 사람뿐이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라며 “광장으로 나오는 HIV 감염인과 성소수자 우리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누구도 빼놓지 않고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미안해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성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다. 우리가 지켜낼 HIV 감염인과 성소수자의 인권은 민주주의의 증거”라 힘주어 말했다.
기자회견 장소 맞은편 인도에서는 "부정선거 검증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과 성조기, 태극기를 손에 든 두세 명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탄핵 반대"를 요구하고 ‘혐오 표현’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작은 광장을 밝힌 무지갯빛 시민들의 온기와 희망을 꺼뜨리지는 못했다.
성소수자 시민들은 이날 같은 자리에서 ‘혼인평등 헌법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이어간 후 헌법재판소에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