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82호 리뷰] 새로운 상상력의 기점, 『우애의 미디올로지』

  『우애의 미디올로지- 잉여력과 로우테크(low-tech)로 구상하는 미디어 운동』 l 임태훈 | 갈무리 | 2012

이 책은 머리말 초입에 거두절미하고 『우애의 미디올로지』의 전선에 대해 말한다. 미디올로지가 무엇인지, 왜 우애인지, 그 배경 설명은 차치하고 심장부터 떡하니 꺼내서 내놓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다음 문단에서 설명하긴 하지만, 너무도 당돌하게 시작하는 첫 문단을 보고, 내가 세상사에 관심이 없던 사이에 이 ‘미디올로지’라는 것의 정체성에 대해, 혹은 그 ‘전선’ 이라는 것에 대한 분분한 논쟁이 있었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한번 거세게 휩쓸고 갔으며 그 사실을 나만 몰랐는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나는 ‘미디올로지’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보는데... 시종일관 이런 당돌함, 때로는 상상을 넘어서는 개방성이 이 책에 담겨있다.
‘미디올로지’라는 낯선 개념과 별로 관심 없는 ‘우애’의 결합. 어딘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첫 장을 펼쳤는데 난데없이 ‘싸우자!’라니... 그것도 불온하고 미천하여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의 ‘신체의 기술’로. 심지어 그 ‘기술’은 아직 완전히 개발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싸움 구경, 그 불온하고 미천한 존재들의 싸움이기에 좀 재미있을 것 같다.
『우애의 미디올로지』가 당차게 싸움을 건 상대는 신자유주의의 폭압적인 시장논리이자 그에 길들여진 신체요, 거세된 상상력이다. 또 함께 짱돌을 들자며 부르는 동무는 자본주의적 일상 밖으로 파선을 그리는 상상력을 가진 ‘신체’다. 정신은 이미 네트워크를 떠돌며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몸은 죽어가는 지하생활자의 그 ‘신체’를 끊임없이 호명한다. 그러니까 이 전선의 맨 앞에 대척하고 있는 자들은 곧, 동일인물들이다.
“자기 경영의 자산이자 자기 착취의 대상”이며 자기 자신에게조차 잔인하게 경멸당하는 “최상의 경영과 착취에 유리하지 않은 몸”, 이 시대에 흔하디흔한 경멸당하는 신체, 즉 자본주의에 세뇌된 신체, 무엇을 어디에서 소비할 것인가라는 질문만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신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이 생활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바로 그 신체 ‘안’에서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몸, 파선으로 나아가는 몸, 경제동물로 길들지 않은 숨겨져 있는, 삭제당한 ‘몸’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이 싸움은 시작된다. 투쟁에 임할 신체가 비로소 세워지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체’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이 신체는 단순히 물리적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다른 차원으로 시선을 이동시켜 미립자 단위에서 신체를 바라보길 권한다. 기관과 비기관, 신체의 안과 밖의 경계들이 허물어지면서 나, 너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하지만 각 입자가 살아있기에 모두 뭉뚱그려 하나는 아닌, 그런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동시다발의 다른 형태가 모두 공존하는 소리의 풍경을 더 닮아있다. 서로에게 뭉개져 묶이기도 하고, 탱글탱글 하나하나 살아있는 입자이기도 한, 언제나 하나이면서 여럿인 그런 ‘차원의’ 존재들이다.
이런 존재들의 살아있는 양태를 살피기 위해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서부터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까지, 1980년대식 복사기부터 삼성과 애플의 소송까지, ‘문학’에서부터 SNS 글쓰기까지 종횡무진 망라하며 자본주의 밖으로 삐져나가는 새로운 ‘신체’의 발견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저자는 당신을 끊임없이 호출한다. 특히나 2008년 촛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촛불에 참여 했는가 아닌가, 그 액션을 지지했는가, 아닌가와 별개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을 불러내는 2부 3장의 마지막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어쨌든, 그래서 일으켜 세워진 신체들을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것이 바로 미디어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주지하다시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롭게 발견된 이 ‘신체'이지 미디어 따위가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무기를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1980년대식 복사기도 좋고, 아이패드도 좋고, 최첨단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도 괜찮다. 다만 그것이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자는 말이다. 첨단기술에 대한 종속이 자본에의 종속과 같은 말처럼 되어가고 있는 지금, 그 ’기계‘를 운용하는 것은 나 자신의 뇌, 그리고 내 몸뚱아리라는 것을 잊지 말고, 움직임의 주체를 그것으로부터 나에게로 옮겨오자는 말이다. 복사기로 오토바이를 타고 아이패드로 떡을 썰고 휴머노이드와 저질댄스 배틀을 벌여도 좋겠다. 자본이 빚어준 욕망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으로, 우리를 둘러싼 ’상품‘을 가지고 삐딱선을 타보자. 그것이 바로 『우애의 미디올로지』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

[필자소개 - 넝쿨]
- 책 안 읽기로 유명한(?) 미디어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