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대ㅣ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1. DMB가 뭘까?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는 이해하기 쉽게 말해 손전화(핸드폰)로 방송을 보고 듣는 것이다. 즉 이동하면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동차와 기차에서도 볼 수 있고 집과 사무실에서도 2.1-7인지의 화면으로 뉴스와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한국의 DMB는 위성DMB와 지상파DMB가 있다. 위성DMB는 위성을 이용하는 기술이며 사업자로 SK텔레콤이 최대 주주로 있는 TU미디어콥이 선정됐고 지난 1월부터 시범방송을 했고 5월부터는 12개 비디오 채널과 22개 오디오 채널로 전국을 대상으로 본방송 할 계획이다. 지상파DMB는 지상파만을 이용하는 기술이며 방송위원회가 3월 말까지 6개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1개 채널 사업자는 1-2개의 비디오 채널, 1-3개의 오디오 채널, 데이터 채널을 운영할 수 있다. 지상파DMB는 주파수 문제로 서울에서만 가능하다. 지역에서는 언제 상용화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
일본을 제외한 외국에선 아직 손전화로 방송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상용화할 기술적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거니와 특별한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위성DMB의 상용화는 일본이 몇 달 먼저 시작했지만 동영상 압축 기술이나 중계기 기술, 단말기 기술 등은 한국이 더 우수하다. 지상파DMB는 한국이 최초이며 한국만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기술로 디지털 오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2. “그래도 DMB를 모르겠다”고요?
DMB를 이야기하는데 고민이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일하는 정책연구원들에게도 DMB의 D만 말해도 슬슬 피한다.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DMB를 비롯한 뉴미디어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줄 것과 정책이 매우 중요한 것을 안다. 그래도 역시 슬슬 피한다.
이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 정책에서 나타난 전송방식의 기술적 논란이 한 몫을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 전문용어의 난무, 유럽식과 미국식 등 기술 우위 논란 등 기술 중심의 논쟁이 사람들에게 지레 겁을 먹게 했다. 또 정통부와 전자업체들이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큰 숫자를 써 가며 기대되는 뉴미디어 산업의 결과에 대한 ‘장미빛 환상’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뉴미디어도 미디어이기 때문에 미디어가 지닌 고유 속성인 언론으로서의 사회 감시와 비판, 오락 제공, 지역성, 문화적 다양성, 이용자 참여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기술 중심의 어려운 논쟁과 명확하지 않은 산업적 성과에 대한 기대는 정작 뉴미디어가 미디어이기 위한 논의를 상실하게 했다.
어려운 기술적 논쟁과 산업적 효과에 대해 이용자들이 다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없다. 기술과 산업적 효과에 대한 논쟁은 전문가들이 하면 된다. 그 전문가 중 미디어 공공성의 원칙에 충실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과 입장을 함께 하면 된다. 더구나 기술적 논쟁과 산업적 성과에 대한 예측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기술적 문제에 있어서는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에서 보았듯이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다채널, 이동수신 등에서 우수하다고 방송기술인 관련 단체 전문가들이 주장했으나 미국식을 채택한 정부와 전자업체들의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로 어느 정도 문제점을 해결했던 실례가 있다. 산업적 성과에 대한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이다.
뉴미디어에 있어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칠 문제들은 돈을 투자해 연구를 많이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지역 관련 프로그램들을 만들 것인가’란 선택의 문제 등은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대기업이 YTN과 같은 보도 전문 채널을 만들어 뉴미디어의 채널 사업자로 들어 가냐 마느냐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미디어 공공성 즉 지역성, 다양성, 참여, 이용의 보편성, 수신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말이 있다. 또한 미디어 운동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들에 대해 누구나 정책 담당자와 사업자들에게 열심히 묻고 주저 없이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과 사업에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3. DMB 환상을 버리쇼!
이 쯤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DMB면 DMB지, 위성DMB는 무엇이고, 지상파DMB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서만. 사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 두 DMB는 거의 차이점이 없다. 둘 다 손전화 또는 작은 전용단말기로 방송을 보거나 듣는 것이다.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전용단말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위성DMB 전용단말기를 구입한 사람은 지상파DMB를 보기 위해선 하나에 8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전용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숨이 턱 막힐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2006년 언젠가부터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이 상용화되어 또 DMB 유사하게 손전화 또는 작은 전용단말기로 방송(콘텐츠와 동의어로)을 즐길 수 있다. 휴대인터넷은 말 그대로 방송에 초고속 무선 인터넷 서비스까지 된다나. 휴대인터넷 방송을 즐기기 위해선 또 새로운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다.
머리 속이 복잡할 것이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올해부터 손전화로 방송 보는 것이 가능한데 자신이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청취하기 위해서는 80만원을 넘어서는 3개의 손전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상파DMB를 제외하고 시청료를 따로 지불하면서까지.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뉴미디어 산업에 뛰어 든 사업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시장도 형성되기 전에 또 새로운 미디어가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적정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불명확한 상황에 사업자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는 매우 우려스런 결과를 부른다. 사업자가 뉴미디어 사업을 더욱 상업적(간접광고 홍수, 성인 채널 도입, 심각한 시청률 경쟁 등)이어야만 한다는 명분까지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공공성’이란 말은 ‘소귀에 경 읽기’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누굴 위해서 이렇게 뉴미디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세계 정보통신과 IT산업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대한민국이 무조건 일등을 해야지만 한다’란 생각을 가진 몇몇 정부 관료(특히 정통부), 정통부 산하 연구기관의 전문가들과 전자업체 경영진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욕구와 야망을 채우고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대부분의 국민들이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실패한다면 이들이 책임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뉴미디어 산업 중 하나만 대박 터지면 면죄부를 줘도 되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자 뻔한 대답을 가진 이런 궁금증을 나열하면서 DMB의 환상들을 하나 식 거들 떠 보자.
- 이동성
며칠 동안 위성DMB 손전화기를 들고 다녀 봤다. 아직 서울 시내에서 수신이 끊기는 지역이 제법 있다. 그런데 문제는 화면이 너무 작다 보니 눈이 아프다. 수십 분 들고 있기는 팔도 아프다. 음악은 끊기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들을 만 하다. 길을 걸으면서 보는 것은 사고를 자초하는 일이다. 택시 안에서 전용단말기로 손님들이 방송을 시청하게 하는 것은 양질의 서비스가 될 것 같다. 수신이 잘 되지 않는 음영지역의 문제와 보다 향상된 성능의 전용단말기 생산 문제는 자본이 해결할 것이다. 따라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 개인 미디어
위성DMB는 실내에서 수신이 잘 안 된다. 지상파DMB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 미디어로서의 특성이라 하면 실내외를 떠나 자기만 혼자 즐기는 것이어야 할 것인데 전파가 건물의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의미를 상실한다. 또 광케이블망을 활용한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양질의 인터넷 VOD 서비스가 인터넷TV(IP-TV라고 하는데 2006년에 상용화 예정)를 통해 가능해지면 실내에서 작은 화면의 DMB를 이용할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2-3 달 임금의 합계와 맞먹는 금액인 80만원을 넘어서는 단말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수 있을까.
-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절대 기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동하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몇 십 초에서 몇 분 단위의 콘텐츠가 적합하다. 현재 이에 적합한 콘텐츠는 뉴스, 뮤직비디오, 개그 프로그램 등을 제외하면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업자들은 DMB에 적합한 콘텐츠를 만드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재전송할 수 있을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계획으로는 수 천억원의 돈을 들여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고 한다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콘텐츠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매체와 채널은 굉장히 늘어났는데 여전히 지역과 밀착한 뉴스와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똑 같은 연예인이 서로 다른 채널과 매체에 동시간에 나타나 이용자들을 짜증나게 할 것이다. 장애인,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의 이야기 역시 찾기 힘들다. 현재로선 퍼블릭엑세스 채널을 계획하는 사업자는 없다.
오히려 뉴스 보도에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 수도 있다. 특정 사업자만이 뉴미디어 전 매체에 프로그램을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뉴스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 공급자(PP)가 YTN을 포함해 2-3개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상파DMB는 지상파 메인 뉴스를 동시 재전송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지라도 뉴스 보도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 산업의 활성화와 고용증대
**연구소에서 다양한 예측 자료들이 나와 있다. 하나만 이야기하자. 연구소 사람들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위성DMB, 지상파DMB, 휴대인터넷은 그 시장이 겹칠 가능성이 많은데도 이들 미디어는 수개월의 차이만 두고 방송이 상용화된다. 과연 이 모든 매체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사업 부실로 국민의 돈인 공적자금을 한없이 투여해야할지도 모른다. 분명 이것은 산업의 활성화, 고용증대와는 정반대이다. 우리에겐 시티폰 사업 실패의 뼈 아픈 기억이 있다.
4. 우리의 매체가 될 수 있을까?
DMB와 뉴미디어에 대한 환상을 버렸을 것이라 확신한다. 환상을 주며 상품을 파는 것이 자본주의라 했던가. 여하튼. 현재의 시점에서 DMB 자체를 막기에는 힘도 부족하고 논리와 근거도 부족하다.
사실 DMB 자체가 우리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상용화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상용화에 이용자들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이미 사업자들이 수익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했고 정책의 틀이 거의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입의 여지는 분명 있다.
- 개별 사업자, 정통부와 방송위원회에 적극 요구
위성DMB와 지상파DMB 모두 본방송을 하기까지에는 수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따라서 채널 정책의 수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위성DMB는 현재 계획에서는 비디오와 오디오 예비채널이 1-2개까지 있고 지상파DMB는 사업자 선정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업자에게 이용자들이 적극 요구하고 정통부와 방송위원회에는 수용자 혹은 시청자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에 대한 규제 및 지원 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
보다 저렴한 서비스 가격과 다양한 서비스,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성을 담고 퍼블릭엑세스 채널 혹은 프로그램 등을 요구하자.
- 미디어 관련 법 개정 및 제정
방송과 통신의 벽이 허물어지는 현 시점에서 새로운 미디어 관련 법의 개정과 제정은 필연적이다. 이미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 된지는 오래이다. 올 정기 국회에서 이와 관련된 법안이 개정되거나 제정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미디어의 공공성 원칙으로 한 미디어 관련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발의하고 이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법 개정 및 제정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5. 글을 맺으며
민주노동당 미디어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과 빈민 등 비주류, 소외층,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미디어에 담을 수 있게 하고 누구나 미디어를 이용(미디어 직접 제작과 방송을 포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 정책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큰 고민이 생겼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많은 매체와 무한대의 채널이 생겨나고 있지만 진보,민중 진영은 단 한 채널만도 진보적 콘텐츠를 채울 만큼의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많은 양질의 진보적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확보해 나가는 것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미디어 운동 진영 일부에선 ‘소출력공동체라디오’ 사업을 준비하고 ‘새민중언론’의 창간을 준비하는 등 진보적 콘텐츠의 생산,유통,방송의 싹을 틔우고 있다. 진보,민중 진영은 이런 활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함께 해야 한다. 물론 민주노동당도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