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선전위원회
산재은폐의 심각성을 얘기할 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산재은폐 고발 투쟁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산재은폐 실태조사는 2013년 시작되어 2015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 실태조사에서, 울산 동구지역 10곳의 정형외과 방문 조사, 사례 접수 등을 통해, 2주 동안의 조사에서 무려 106건의 산재은폐 사례가 무더기로 접수되었다. 2013년 총 3차에 걸쳐, 131건의 산재은폐를 고발했고, 2014년 4차(3월)와 5차(6~8월) 실태조사에서도 각각 83건, 32건의 은폐 사실을 확인했다. 올 해에도, 4월 20일부터 열흘간 울산 동구 지역 정형외과 10여 곳을 중심으로 산재은폐 실태조사를 벌여, 62건의 산재은폐 의심사례를 찾아냈다.
정동석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노안부장은 산재은폐를 밝히는 싸움이 추리 소설처럼 머리를 써야 했다고 회고한다.
“머리 아픕니다. 산재은폐 밝혀내는 거. 제일 처음에 1차, 2차 시도할 때는 병원 앞에서 진을 쳤어요. 처음에 약 1주일 만에 120건 정도가 나왔어요. 고구마 줄기 캐듯이 마구 나오더라고요. 그냥 줄줄이. 그 중 확실한 것들로 추려 노동부에 고발을 했고, 또 건강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에도 정보를 제공했지요.
실태조사를 시작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대응이 달라지더라고요. 분명히 회사에서 다쳐가지고 오는데도 옷을 갈아입혀서 병원에 보내기 시작하고요. 그다음 해 4, 5차 때에는 화상을 입어도 국물에 데었다 이렇게 진술하게 시키고요. 또, 환자가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 쪽 사람들이 먼저 차를 타고 와서, 말하자면 정찰조가 먼저 오는 거죠. 실태조사하는 사람 없는지 확인을 먼저 하는 거예요.”
최근에 사용했던 추적방법은 공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중공업의 산재 은폐는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청지회가 산재은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현대중공업은, 자신들이 산재를 은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언론사(<프레시안>)와의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꼬박꼬박 낸 산재보험료가 아까워서라도 회사 생돈을 들이는 공상이 아닌, 산재 처리를 하고 싶다." 면서 "하지만 산재 처리 했을 경우 (원청) 부서장으로부터 유무언의 압력을 받고, 재계약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데 어쩔수 없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라며, 하청 업체 재계약 과정에서 산재 발생 건수를 업체 평가에 반영하지만 이 탓에 하청업체는 산재 발생을 감추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하청 노동자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산재 블랙리스트가 있어, 산재 신청을 한 번 하고 나면 조선소에서 일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일반화돼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도 ‘산재 나갔다는 건 아프다는 얘긴데, 누가 환자 쓰겠느냐' 며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된다.
“현장에 가면 크게‘12대 중대재해. 퇴출제도' 이렇게 붙어 있어요. 중대 재해 발생하면 그 업체는 퇴출시킨다는 건데, 이 말은 ‘확실하게 숨겨라' 이런 거죠. 사고 났을 때, 뒷말 나오지 않게 확실하게 해라. 안 그러면 재해자와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묻겠다, 이런 얘기거든요.
용접 불에 얼굴 화상 입은 조합원이 한 명 있었는데, 화상 입은 채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 왜 의무실을 가지 않을까. 반장이나 소장이 아주 난리를 치고 괴롭히니까. 그 난리를 치고 의무실 가니 겨우 연고 두 통 주더래요. 그러니 의무실에 가겠습니까. 더 답답한 것은, 산재은폐 접수 후 이게 산재은폐였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 그 건은 산재신청을 내면 무조건 바로 산재승인이 되거든요. 그런데도 신청을 못 해요. 노동조합에서 산재은폐 건을 모아서, 고발하고 산재은폐라고 인정까지 받아서 무조건 산재신청서만 던지면 되는데, 그것도 안 합니다. 바보라서 그럴까요? 불이익 때문이죠. 산재 신청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사람 보내서 ‘야, 너 이제 현대중공업에 안 다닐 거야?' 딱 그런 식으로 공갈을 쳐요. 그러면 입 다물게 되죠.”
그래도 꾸준한 실태조사,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 노조 가입운동, 현장 내 캠페인 등 다양한 실천을 함께 벌인 결과 노동조합 문을 두드리고, 산재신청을 하는 노동자 숫자가 꽤 늘었다.
“산재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늘었어요. 산재 신청하고 같이 준비했던 사람들은 노동조합에도 상당히 가입을 하게 됩니다. 산재신청을 하러 여기 우리 지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그나마 용기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지금까지 지회에서 함께 100건도 넘게 산재 승인을 받았어요.
산재 신청하러 오면, 대부분 먼저 초진 진료 기록지부터 확인을 하게 돼요. 작업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인데도, 대부분 불명의 통증을 호소 이런 식으로 모호하게 돼 있어요. 이런 부분부터 다시 짚고, 확인하고 보강하는 작업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정동석 노안부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갑갑해 했다. 산재은폐 시도해서 고발하고, 과태료까지 물었던 하청 업체가 무재해 포상 대상이 되어 포상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은폐를 캐내고, 고발하고, 함께 할 사람을 조직 하는 그에게서 희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