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의 LCD/DVD 부품업체인 주)동화디지털의 검사실에서 일하던 타이 노동자 5명이 집단적으로 유기용제인 ‘노말헥산’을 취급하다 중독되어, 작년 10-11월 경부터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 증상을 보였다. 이들의 주작업은 밀폐된 공간에서 노말헥산을 세척제로 사용하여 전자제품이 출하되기 직전에 세척하는 일이었고, 하루 평균 5시간 정도씩 길게는 3년 정도 일하였다. 작업 당시 이들은 본인들이 사용한 기름 같은 액체에서 나쁜 냄새가 났었으며, 유해물질인 ‘노말헥산’을 일상적으로 다루면서도 개인보호구 지급이나 작업환경측정 등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어떠한 조처도 없이 가운 하나만을 걸치고 일하였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2002년 경기 안산시의 LCD액정모니터 생산업체인 ㅅ사에서도 중국 노동자 3명이 노말헥산에 중독되어 같은 판정을 받았고, 벌써 2년이 넘도록 고통받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과 발끝에 힘이 빠져 식사와 용변 등 기본적인 거동조차 어려운 상황인데, 대부분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귀국하였다가 뒤늦게 한국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이다.
<b>노동부, 부랴부랴 산안법 위반사실 수사하기로</b>
노말헥산은 주로 공업용 세척제와 타이어 접착제 등의 소재로 폭넓게 쓰이고 있는 공업용 물질이다. 하지만 직접 노출되었을 경우 상당한 위험성이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는 이 물질에 대한 직접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보호용 장구를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번 사건의 해당 사업주는 ‘노말헥산의 유독성을 몰랐다’면서 실제로는 공상처리를 하거나 독성 없는 세척제로 대체한 사실이 드러나, 작업자의 증상과 위험성을 알면서도 사실을 은폐하고 법정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이번 노말헥산으로 인한 다발성 신경장애 발생․은폐와 관련하여, 노동부는 13일 노말헥산 사용 사업장 367곳에 대한 특별점검 조치를 발표하고, 14일 대검 공안부의 집중 단속 지시를 내리는 등 이례적으로 발빠른 행보를 취했다. 경인지방노동청은 ‘노말헥산’ 사용업체 25곳에 대한 특별단속을 벌여 23개 업체에서 72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하여 2명의 사업주를 불구속 입건하고, 나머지 사업장에 대해 각각 과태료 부과, 작업환경 개선 등의 명령을 내렸다. 또한 ‘외국인 고용 유해물질 취급사업장’ 5천여개 중 취급량을 고려한 1,254개 사업장에 대한 특별점검이 병행실시 되었고, 2월 5일까지 완료되었다. 한편 주)동화디지털에 대하여는 산안법 위반으로 2천 6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해당 측정기관, 특수건강진단기관, 안전보건관리 대행기관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에 1-1.5개월의 업무정지 조치를 하였다.
<b>진짜 원인은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b>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의 이주노동정책을 근본원인으로 지적하였다.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이하 공대위)’는 1월 21일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부가 사고 재발을 방치하였으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출국 위협이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 대응에 근본적 한계를 가져온다고 강조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주노동자인 안와르(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지부장)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재해 사건이 많다.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이 날 이주노동자 실질적 산재보상 권리 완전 보장/진상조사 실시/노동부 장관 사과와 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대책 수립/강제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였으며, 향후 노동부 항의방문과 도심집회 등을 예정하고 있다.
노말헥산 중독은 이번에 크게 사회화되기는 하였으나 비단 이번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부의 ‘노말헥산으로 인한 직업병 발생현황’자료에 따르면 이미 1999년과 2001년에도 노말헥산 중독으로 산재요양을 승인한 사례가 있으며, 근래에도 부산에서 중독 환자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노말헥산 함유 유기용제로 중고기계 세척작업이나 선박 땜질작업을 하다가 팔다리 마비 증세를 호소하게 되었는데, 중고기계수리업체 박모(44)씨는 1차 불승인 이후 재신청하여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업병 인정을 받았고 일용직인 선박수리업체 박모(47)씨는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승인을 받은 박모씨는 한 인터뷰에서 "영세 사업장의 근로환경에 사업주나 정부가 모두 제 일처럼 관심을 가져줬으면"이라고 밝혔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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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