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악몽은 계속된다

정부의 후속조치 진단

지난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의 전체회의에서 핵심 쟁점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 기아자동차의 채용비리 문제,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노말헥산 중독 문제였다. 노동계의 최근 핵심 사안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건이 중요한 안건으로 토론되었으며 여야모두 입을 모아 근본적인 산업안전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노동보건운동의 역사 속에 이렇게 정치계의 관심을 받은 사안은 매우 드물다.

지난 1월 12일 밤 이주노동자들의 앉은뱅이병이 첫 언론을 탄 이후 노동부의 행보는 이례적으로 빨랐다. 신속하게 산재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노동부에서 할 수 있는 법적조치는 ‘다(심지어 불법 이주노동자의 강제출국까지) 했다’고 할 수 있다. 유래 없이 빠른 행정 절차에 법무부까지 동원된 특별점검이라니, 그 동안의 관례(?)와는 매우 다른 행보이다. 그 이유는 뭘까? 정부는 이번 일로 인하여 비인간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면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무리 아파도, 최저 임금도 못 받고 착취당해도, 하루에 14시간이 넘게 일을 할 수밖에 없어도, 감금을 당해도, ‘불법’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 못하는 것이 지금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 유독물질을 다루다가 쓰러져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공고한 착취의 구조에 가두어, 자본의 이해를 배가시키고 유연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가 아닐까? 이번 사건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의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무서운 정부는 서둘러 사건을 ‘치료’와 ‘보상’문제로 국한시켜 해결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특별점검 과정에서 주)동화디지털에 근무하던 다른 불법취업 이주노동자 7명은 임시건강진단 후 건강하다는 판명을 받고 강제 출국되었다. 국회 환노위 답변에서 “불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 힘들다”라는 답변을 했다는 노동부 장관이나 “불법 체류인데 왜 근로기준법을 지켜줘야 하냐?”고 물었다는 사업주나, “어떻게 14시간이나 일할 수 있냐? 못 믿겠다.”던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이상한 게 아니다. ‘불법’이니 ‘법’의 적용을 못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발성 신경장애’가 아니다. 최소한의 법정 장치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는 ‘불법’이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확산은 이주 노동자 정책 근본에 대한 직접적 문제제기로 확대될 수 있다. 거대 자본의 잇속을 채우는데 집중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의 위기를 중소영세사업장으로 분산시키면서 생산비용과 노동강도에 대한 이전을 유발하고 있다. 즉, 대자본을 비롯한 전체 자본의 이윤창출구조 속에서 중소영세사업장은 최대한의 착취를 도모하게 되고 이는 이주 노동자라는 ‘불법’을 통해 해결된다. 이러한 착취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생산성을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자본의 탐욕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노동통제와 유연화 기제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니 자본과 정부는 최대한 ‘관리’하고 무마해야 하는 것이다.

17일 발표에 의하면 노동부는 이번 사건 관련하여 △외국인근로자 안전보건 집중관리 △화학물질 관리 강화 △외국인근로자 고용 사업장 안전보건 기술지도 확대실시 △작업환경측정제도 혁신위원회의 구성·운영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확대 및 주기단축 요건 확대 △산업보건서비스의 질적 수준 향상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소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보건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정부측의 관심이 증가하고, 규제완화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던 ‘자본 도와주기’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이 ‘불법’인 이주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오히려 침해하는 것으로 작용할 소지는 충분히 있다. 동화디지털의 다른 이주노동자처럼 확인된 ‘불법’ 노동자를 강제 출국 시키는 것은 ‘법무부’의 소관이다.

따라서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런 신속한 조치를 통해 정부와 자본이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가려지고 해결은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직접적 균열의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산재로 인정받고 보상받고 추후 남을지도 모르는 장애에 대해 국가가 민사상의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이 노동부 장관의 이야기처럼 “이제는 한국 정부에서 모든 치료와 배려를 해준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게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단속추방 중단과 노동비자 쟁취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몽은 계속될 뿐이다.
덧붙이는 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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