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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허용기준, 이내면 괜찮은가?

직업병이 발생하면, 사측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매년 작업환경측정을 하지만, 우리회사는 언제나 노출기준보다 낮았다. 그런데 뭐가 직업병이란 얘기냐.” 어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말은 노출기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사업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노출기준은, 그 기준 이하에서는 보통의 작업환경이라면 거의 모든 노동자가 특정 질병에 걸리지 않을만한 환경농도로 정해진다. 여기서 ‘보통의 작업환경’이라는 용어가 중요하다. 주 40시간의 노동과 호흡기를 통해서만 유해물질이 체내에 들어오고, 작업강도가 보통(?)이라 할 수 있는 조건에, 적절한 환기시설이 있고, 적절한 휴식이 보장되며, 작업환경을 측정하지 않은 날에도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없는 사업장이라면 ‘보통의 작업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은 특히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주 70시간 이상의 노동이 매우 흔하다. 또한 이번 이주노동자들처럼 적절한 보호구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으며, 호흡기를 통한 노출 외에도 피부를 통한 노출이 큰 몫을 차지한다. 상당수의 사업장이 작업환경 측정을 하는 날에는 작업량을 줄이거나 작업시간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 즉, 작업환경을 측정한 날과 다른 날의 결과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출기준의 반이 넘으면, 측정하지 않은 날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노출기준이란, 법에서 정해진 노출기준의 절반값을 의미한다.

이런 점들을 반영하여 미국 산업위생학회에서는 이러한 노출기준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허용농도 적용상의 주의사항(미국 산업위생학회, 1994)>
허용농도는 산업장의 유해요인을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지침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다음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① 허용농도는 대기오염 평가 및 관리에 적용될 수 없다.
② 24시간 노출 또는 정상작업시간을 초과한 노출에 대한 독성 평가에는 적용될 수 없다.
③ 기존의 질병이나 육체적 조건을 판단하기 위한 척도로 사용될 수 없다.
④ 작업조건이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⑤ 허용농도는 안전농도와 위험농도를 정확히 구분하는 경계선은 아니다.
⑥ 허용농도는 독성의 강도를 표현하는 지표는 아니다.
⑦ 허용농도는 반드시 산업위생 전문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한다.

이번 노말헥산 사건에 대한 대안은 노말헥산을 다른 유기용제로 대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노출기준을 낮추거나 노출기준 이하로 작업환경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8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져 있는 노출기준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보호구, 해로운 물질인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알권리 박탈, 한 여름 더위에 걷어 올린 팔이나 손으로 흡수되는 어마어마한 유기용제... 이런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단지 노출기준 이하로 작업환경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덧붙이는 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김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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