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제대로 된 요양치료와 복귀를 위하여

조합원의 방문

저녁 늦게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10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작업복을 벗으며 씻을 준비를 하는데 조합원 한 명이 기숙사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나와 다른 층에서 지내는 김성진(가명)씨인데, 늦은 시간에 들어온 나를 보고 이내 뒤따라 들어온 것을 보면 오랫동안 내가 들어오길 기다린 모양이었다. 이 조합원은 경추부 디스크와 근막통 증후군으로 1년 가까이 치료를 받고 복귀한 지 한 달 조금 넘은 사람이었다.

“견딜만 하세요? " 라는 나의 물음에 그 조합원은 대답도 없이 윗옷을 벗었다. 그리곤 나에게 등을 보여 주었다. 그의 등에는 파스가 가득 붙어 있었다. “너무 아파... 아파서 잠을 못 이루겠어...”

그리곤 1시간이 넘도록 현장에서 일하는 이야기, 통증에 잠 못 이뤘던 이야기,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과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동료에 대한 서운함 등을 털어 놓았다. 묵묵히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요양을 나갈 때부터 줄곧 환자모임을 통해서 그의 치료과정을 함께하고, 복귀하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해왔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치료할 곳이 없다

정말 힘들게 투쟁해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이제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만 받으면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오래지 않아 그 환상은 깨지고 말았다. 조기 종결하려는 의사와의 싸움, 그리고 별 효과도 없는 물리치료라는 것만 죽어라고 해대는, 뾰족한 방법 없는 치료방식 때문이었다.

김성진 조합원도 물리치료와 목 잡아당기기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통증이 더욱 심해짐으로 해서 이내 목을 잡아당기는 치료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물리치료를 중심으로 치료를 계속하였지만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1시간 이상씩 되는 곳에 차를 몰고 침을 맞으러 다녔다. 한 곳도 불안해서 이곳저곳 침 잘 놓는다는 곳은 다 찾아다니며 침을 맞아 보았다. 그러나 별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병원도 옮겨 보았다. 큰 병원도 다녀보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에서 치료도 해 보았다. 그러나 별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였다. 그러나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장병이 생겼다. 약 먹을 때는 통증을 몰랐는데 위장병으로 약을 줄이자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렇게 치료한 지 1년여가 되자 조금씩 통증이 없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날씨가 흐리거나 하면 쑤시는 것은 여전하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김성진 조합원이 이야기하였다. “병원 치료를 통해서 낫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오랫동안 쉬니까 좋아지는 것 같아.” “이 병은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어. 오랫동안 쉬는 것이 제일이야.”

요양을 하면서 겪는 고통들

“요양을 시작하자 몸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안 아픈 곳이 없었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꾀병 시비는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정신력도 많이 떨어졌다. 다시 복귀해서 일할 자신이 없어졌다.”
대부분의 요양자가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김성진 조합원도 치료를 하면서 현장에 복귀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했다. 회사 짤리면 어떻게 하느냐, 회사에 출근하라고 매일 성화시란다. 걱정하는 것은 애기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는데 회사도 출근하지 않으면서 병원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복귀 후 현장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깨 통증이 많이 없어졌다. 옛날에 비하면 어깨가 엄청나게 가벼워진 느낌이다. 특별히 흐리지 않는 한 밤에도 거의 깨지 않고 잠을 이룬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몇 번이나 요양을 연기하면서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현장에 복귀하였다.

현장은 바뀌어 있지 않았다. 현장 개선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원하는 곳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김성진 조합원은 내가 일하던 자리로 복귀하고 싶다. 다른 곳은 불안하다. 복귀해서 천천히 몸에 맞게 일하라고 이야기했지만 동료들의 눈치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동료와 보조를 맞추어 일할 수밖에 없다. 또다시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 동료들로부터 또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모른다. 일을 시작한 지 3주만에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집단요양투쟁 이후 500명 사업장에서 150여명이 넘는 요양자가 나온 사업장의 조합원 이야기이다. 이 조합원은 얼마 후 다시 요양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조합에서 요양자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요양자의 피나는 노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료도, 복귀 후 안정적 적응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치료는 어떻게

먼저 올바른 치료를 위해서는 규칙적 생활이 필요하다. 집단요양투쟁 초기, 조합간부가 요양을 하게 되었다. 난 조합간부에게 매일 아침 9시에 조합에 출근해서 조합활동을 하면서 치료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조합간부는 너무도 기쁘게 내 요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치료받고, 퇴근하는 일상을 같이 하였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합활동을 하면서 치료기간을 보냈다. 1년여 되는 기간이었지만 요양에 따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충분한 치료를 받고 복귀 후 현장에 잘 적응하여 지내고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의 몸에 맞는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요양자와 그렇지 않은 요양자와의 차이는 엄청나다. 물론 운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요양자도 있다. 그러나 경험상 대부분의 근골격계 직업병 환자들은 운동하는데 거의 지장이 없다. 조금 심하면 천천히 걷기에 시간을 투자하면 되고, 더 심하면 수영장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물 속에서 서서히 걸어다니면 된다.

셋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생활태도를 가져야 한다. 가족의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질병을 설명하고 가족을 설득해야 하며, 의사가 종결을 압박하면 아직 자신이 왜 더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대부분 병원의 종결 이야기는 공단으로부터 출발한다. 공단에도 방문하여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고 더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에 맞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병원에서 요양자의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하루 일정을 정리해서 운동과 물리치료 등을 병행하면서 요양자의 하루 일정을 도와주는 곳이 있었으면 하고 고민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덧붙임

분량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하게 하지 못한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두원정공의 경우 공단의 종결압력이라든지 요양승인의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자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종결압력이다.

노동조합이 공단을 찾아가 종결압력과 관련한 문제로 싸우면 공단에서 전혀 종결과 관련한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하게 병원의 사무장을 통하여 끊임없이 종결에 대한 간접적 입장을 전달한다. 종결과 관련하여 의사가 직접 나서도록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는 종결압력에도 불구하고 복귀의 문제는 전적으로 요양자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 충분히 치료가 되었는지, 현장에 복귀해서 일해도 될 만큼 자신의 체력을 단련시켜 왔는지, 이러한 모든 사안은 요양자 자신의 판단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말

일터 2005년 4월호 / 두원정공노동조합|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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