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민정
사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지선
지하철 차량 중정비를 아십니까?
2004년 서울지하철공사가 운영하는 1~4호선을 이용한 승객은 하루 평균 397만 2천 명이다. 승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1~4호선에는 1,944량의 지하철이 부지런히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지하철을 문제 없이 운행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차량 검수를 받는 것은 물론, 지하철 안의 부품들을 일제히 뜯어내어 분해하고, 세척하고, 검사하는 중정비를 받아야 한다.
회전기, 환타, 하우징, 제동도어엔진, 대차BFC, 윤축, 도어, 축상... 보통 사람은 들어보지도 못한 지하철의 부품을 일일이 중정비하는 곳 중 하나가 지축 차량사무소이다. 서울지하철에는 3VF, GEC 등 여러 종류의 열차가 있는데 이 열차들은 약 2년마다 한 번씩 차량기지에서 모든 부품을 점검받고 손질된 후에 운행된다. 일단 열차가 기지에 들어오면 10량이 붙어 있는 열차를 한 칸 한 칸 분리시키고, 그 열차들을 기지 안에 하나씩 옮겨 놓는다. 그러면 각자 책임지고 있는 부품을 일일이 분해해서 떼어가느라 한동안 기지 안은 쿵쾅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고 한다.
넓고 넓은 지축기지는 겉으로 보기엔 한가로웠지만, 서울지하철노조 윤상진 산안차장을 따라 다녀보니, 넓은 지축기지 곳곳에서 책임진 부품을 닦고, 분리하고, 조립하는 작업들이 한창이었다. 일단 부품들을 분해해가면 각자의 작업장소로 흩어져서 조별로 작업을 하게 되는 것.
“근골격계는 한 사람이면 돼요.”
한쪽 작업장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가 단품을 분리하느라 한창 분주하다. 어떤 작업인지 자세히 보려 한 발 짝 다가서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 기름 튀어요.”라며 염려해준다.
“요크라고요, 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잡는 거에요.”
모든 장비를 갖추고 사람 태울 채비를 마친 지하철만 봐왔던지라 일일이 분해된 부품의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딱 보기에도 기름, 먼지로 범벅이 돼 시커먼 부품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있는데 착용한 장갑은 평범한 목장갑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 사용하라고 준 장갑은 얼핏 보기에도 미끄러워 보였는데, 그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면 부품이 미끄러져 다칠 염려가 있어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목장갑 사이에 김장 담글 때 쓰는 비닐장갑을 끼는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걸로 기름을 막아내기엔 부족해 보였다.
제대로 된 작업대도 아닌 이동수레 위에서 한 명은 앉아서, 또 다른 한 명은 서서 작업을 하고 있길래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앉아있으면 어깨 위로 팔이 올라가잖아요. 앉아서 하면 더 힘들어요. 같이 아프면 안 되니깐. 근골격계는 한 사람이면 돼요. 이거는 작업도 아니에요. 아주 미세한 작업이죠. 이따가 다시 오세요. 진정한 분리작업을 보여줄 테니깐. 지하철 일은 이런 거다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이 파트에서만 산재환자가 3명이나 나왔단다. 지금 만지는 부품은 5kg이지만 42kg 단품도 수시로 옮겨야 해서 중량물 작업이 많은데다 좋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작업환경 또한 아니었다.
“정비하기 좋은 차가 어디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보통 10칸의 차량으로 이루어진 지하철 1개 편성은 일단 기지에 들어오면 18일이나 21일 안에 부품을 분해해서 정비하고, 다시 조립해 시운전까지 마쳐야 한다. 지축기지에서는 5개 편성까지 작업을 하게 되는데 편성이 밀리게 되면 그 작업기간마저 더 단축해야 한다. 지축기지 안에는 한 칸씩 떼어낸 차량들이 여기저기 서있었는데 열차 바닥, 지붕 위 등 곳곳에서 부품을 테스트하고, 떼어내고 하는 작업들이 한창이었다. 단순한 지그 위에 올려놓은 열차는 바닥 작업을 하기에도, 지붕 작업을 하기에도 영 애매한 높이였다. 게다가 지붕작업을 하는데 안전장치 하나 없는 것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열차 높이를 더 높일 수는 없냐고 물어보자 “너무 높이 있다가 넘어지면 옆에 있는 열차랑 도미노 현상이 생길 수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한다.
혹시 정비하기에 좋은 차종이 있냐고 물어보자 “정비하기 좋은 차가 어디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라는 깔끔한 대답이 돌아온다. “차종이 바뀌면 작업이 바뀌는 거죠. 단품이 가벼운 건 제어부분이 힘들고 하는 식이죠. 1호선은 1호선대로, 2호선은 2호선대로 다 나빠요. 열차 안에 부품이 몇 만 가지인지 기억도 안 나요.” 하긴. 밀려오는 열차 때문에 정신없이 부품을 정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차인들 정비하기 좋을까.
줄어든 인원, 밀려나는 작업량
요즘 서울지하철에서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한창이다. 사업장이 서울시 전역에 흩어져있는 데다가 조합원 수만 1만 명에 이르니 그 조사 규모 또한 엄청날 것이다. 서울지하철에서의 근골격계 직업병 조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에서 2003년 근골격계 직업병 조사를 진행해 다음 해인 2004년 2월 31명이 산재신청을 해 전원승인을 받아냈었다.
TM(전동차 변형모터)를 정비하는 조합원은 “저번 근골격계 조사하고 나서 근무환경 개선조치가 아직 안 이뤄졌어요. 그런데 이번에 공사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합니다. 저번 지축지회 작업환경개선 요구안에서는 조치하기 쉬운 부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부분만 처리하고 안 된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라며 이번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게다가 달리는 열차가 점점 노후되서 작업은 더 힘들어지는데 작업인원은 더 줄었다. “우리 조가 14명이에요. 좀 줄었죠. 더 많았었죠. 여기가 일이 부하가 걸리니깐 조금 덜 걸리는 데서 충원을 했어요. 그 대신 다른 조 인원이 줄은 거죠.”
작업인원은 많이 줄었는데, 정비주기는 그대로이니 일이 더 힘들어진 것은 물론이다. 자연퇴직자에 대한 인원보충도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사는 되려 차량부분을 외주 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축정비지회 허준규 분회장은 “지회에서 분석해봤는데 확실히 작업량이 더 늘었어요. 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단순수치로만 봐도 그렇고, 차량도 노후되고.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작업인원도 산정해야 되는데 그런 건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퇴직하시는 분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죠. 지축에서도 퇴직한 분이 있는데 충원이 안 되고 있어요.”라고 지하철의 부족한 인력상황을 설명해준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적자철의 오명을 벗고 2006년에는 흑자경영시대를 맞이하겠노라 선언했다. 화려한 흑자경영 시나리오 뒤에는 99년 이후 현장인원의 꾸준한 감소가 뒷받침되어 있다. 1999년 1,621명 감원을 시작으로 정년은 단축하고, 휴가는 폐지해가며 흑자경영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축정비지회는 산안부 소식지를 통해 “99년 구조조정으로 증가된 노동강도는 그 이전 10년 동안 증가된 노동강도보다 더 크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이것은 곧 지하철 앞에 필연적인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징조이다. 이 먹구름을 걷어내는 것은 오직 현장 노동자의 투쟁뿐” 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지하철 노동자의 머리 위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더 큰 먹구름을 깨끗하게 걷어낼 수 있는 투쟁이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작업환경은 물론, 부족한 현장인력충원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