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노강 투쟁,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강도 예비평가를 중심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콩아줌마

그동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구조조정과 노동강도의 문제를 조명하고,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비롯한 현장의 대응 사례들을 <일터>를 통해 소개해왔다. 이번 호에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의 노동강도 예비평가를 통해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위한 현장의 실천과 투쟁을 풀어가기 위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1. 노동강도 예비평가의 배경

전 세계를 휩쓸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광풍이 자동차산업을 비껴갈 리 없다. 이미 자동차 자본은 세계적 수준의 과잉 생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시장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산체제를 도입해온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 자본 역시 IMF 경제 위기를 기회삼아 권고사직과 1, 2차 희망퇴직으로 8,194명을 퇴직시킨데 이어 277명 해고, 1,261명 무급 휴직 등 그야말로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자본의 공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98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량이 97.9% 증가하였으나 생산직 노동자는 불과 12%만이 늘어났을 뿐이다. 고용을 늘리는 대신 모듈화/자동화/플랫폼 통합 등 신기술을 도입하고 노동과정을 초 단위로 통제하는 모답스를 도입하여 1인당 생산량을 77.1%나 끌어올린 것이다. 이와 함께 WIN21운동 등을 내세워 현장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현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동 유연화와 동시에 노동자의 조직적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일상적인 구조조정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노동자 건강에 미친 영향은 여러모로 확인되고 있다. 2002년 노사합동 프로그램이나 2004년 교대제 프로젝트에서 조사한 근골격계 증상 유병률은 각각 70.3%, 81.6%로 대다수의 노동자가 골병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으며, 실제 근골격계 요양 환자의 숫자도 2000년 165명에서 2004년 722명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사고성 재해도 연간 140건에서 391건으로 증가하여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유조차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짐작케 한다.

이에 대한 노동의 대응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자의 현장 통제력 상실이 건강권의 악화를 초래하였음을 역설해왔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자본은 근골격계 투쟁을 개별 환자의 문제, 예방이 아닌 치료의 문제, 근골격계 질환 그 자체의 문제로 국한시키기 위한 총자본의 흐름에 발맞추어 노동자의 참여를 배제한 일방적 현장 평가, 현장개선 없는 의학적 대책 제시 등으로 물타기를 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현장의 노동강도를 낮추고 노동자의 현장 통제권을 되찾아 반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자본 투쟁 전선을 만들어낸다는 투쟁의 목표와 의의를 대중적으로 확인하고, 현장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입각한 노동자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04년 하반기의 노동강도 예비평가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2. 예비평가의 주요 결과

총체적 노동강도의 강화 양상을 확인하다

이번 예비평가에서는 절대적 노동강도의 강화(총 노동시간의 연장), 상대적 노동강도의 강화(노동밀도의 증가), 업무배치․임금․고용의 유연화 등 다각도의 구조조정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맞물려 가며 현장 노동강도를 강화시켜왔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노동강도 변화 지표들 중 비정규직과 하청의 증가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였다. 무려 85.1%가 비정규직이 증가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98년 대규모 해고 이후 생산량의 증가에 대해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노동력을 보충해왔음을 현장 노동자들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5일제 시대가 열렸다지만 정작 휴일이 늘어난 사람은 8.5%에 불과하였다. 60.8%는 오히려 휴일이 줄어들었고 49.7%는 하루 노동시간이 늘어났다. 근무제도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총 노동시간이 연장된 이유는 잔업과 특근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80.1%). 잔업/특근을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실질적인 저임금 구조’로 인하여 노동자 스스로 휴식을 반납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 노동시간과 총 노동일 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작업이 여유로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작업 중 여유시간이 늘어난 경우는 10.8%에 불과하며, 작업속도가 느려진 사람도 5.8%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인은 작업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7.1%를 제외하고는 작업량이 늘었거나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는 결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한 마디로 전보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빡세게 일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의 대량해고와 그에 뒤이은 비정규직의 급증. 그러나 그조차도 충분치 않아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작업량과 작업속도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현실. 현대자동차의 노동강도는 총체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강도, 적어도 20-30%는 낮추어야 한다

작업과정에서 노동자의 몸이 얼마나 혹사당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은 예비평가의 또 다른 과제였다. 문제는 각 공정마다 작업의 특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다양한 평가 기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번 사업에서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작업, 고정된 자세로 하는 작업, 그리고 반복 작업 등으로 작업의 특성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각각 심박동수 측정법, 근육피로도 측정법, 관절 사용도 측정법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21.1%가 심박동수에 입각한 작업 중 에너지 소모량 기준을 초과, 100%가 한 가지 이상의 근육에서 근육 피로도 기준을 초과하고 있었으며, 관절의 평균 반복성은 유럽연합의 권고기준을 각 부위에 따라 20-30%씩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가 느끼는 피로도를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에서도 현재 작업량의 30% 정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결과를 보여, 노동강도를 얼마나 낮추어야 할지에 대해 객관적 평가와 주관적 평가 결과가 거의 비슷한 결론으로 수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에너지 소모량을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노동기구에서 제시한 공식을 활용하여 적정 휴식시간을 산출해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작업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8시간 작업시 1.4시간(84분), 10시간 작업시 1.7시간(102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는 약 47-48분 작업마다 적어도 10분의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관절 반복성 평가결과에 입각한 유럽연합의 권고(50분 작업에 10분의 휴식시간)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의 작업 속도를 유지한다면 작업량을 20-30% 줄어야 하고, 현재의 작업 강도를 유지한다면 적어도 50분마다 10분씩 휴식시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잠정적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3. 남아있는 과제

지난 몇 년간의 근골투쟁은 단지 근골격계 직업병을 폭로하고 공학적․의학적 대책을 마련하거나 사내 복지를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한 투쟁이 아니었다. 일상적으로 현장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우리 역시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현장의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강도 강화 저지와 일상적 현장 투쟁을 통하여 근골투쟁을 구조조정 분쇄 투쟁으로 발전시켜가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과 시도가 전국적으로 공유되고 실천으로 불붙기 이전에 이미 자본은 그 본질을 꿰뚫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집단요양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국화 되기도 전인 2003년 3월에 이미 경총은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안전보건위원회와 산업안전팀을 건설하여 당시 현대자동차, 현대삼호중공업의 집단요양투쟁을 비난하는 악선전을 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인 2004년 5월 17일에는 기업안전보건위원회 결의문을 통해 근골투쟁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으로 질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겠다는 총자본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다시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근로복지공단은 10명 이상의 요양신청을 지연시키고 근골격계 인정기준을 강화하여 집단요양투쟁을 직접 차단하고 있다. 노동부는 유해요인조사를 제도화하여 골병의 원인을 개별적 인간공학적 환경 문제로 협소화시키려는 자본의 의도를 관철시켰다. 개별 자본은 사업장 내의 힘 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얼마간의 비용을 들여서 포섭․관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전문가들이 ‘산재 요양기간이 너무 길다’면서 자본의 나팔수를 자임하고 나섰고, 사업주에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온 사법기관은 소위 ‘나이롱 환자’를 잡아들이는데 발벗고 나서 4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언론은 이 사실을 부풀려 하루 260여명씩 병들고 다치고 죽어가는 산재노동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여론전에 앞장서고 있다. 개별자본과 노동부, 심지어 사법기관과 언론까지 나서서 그야말로 전면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이번 노동강도 예비평가는 노동자의 눈으로 현장을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한 무기를 벼리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과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 노동자가 현장의 주인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재조직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예비평가를 기반으로 현재 진행 중인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의 성패는 고용불안의 공포와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떨쳐내고 자본의 생산 목표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기준으로 노동강도를 재설정하기 위한 실천을 얼마나 조직해내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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