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霖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지선
(intro)
왠지 설레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날,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뭇가지 한가득 조그만 새싹들을 담은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하얗던 들판에 푸른색을 칠하고 개나리, 진달래가 노랗고 빨간 꽃물을 들여 차창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짧은 기차 여행을 마치고, 한산한 도로를 굽이굽이 따라가다 도착한 곳은 붉은색 벽돌의 나지막한 공장이었다. 공장 앞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생겼잖아요.”
“노동조합이 생겼잖아요.”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 여성조합원 김귀미씨가 작업장의 활기를 한 마디로 표현했다. “전에는 언제 짤릴지 불안하고, 1년씩 계약 연장할 때마다 나이 드는 게 걱정되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정규직이 되었으니까요.” 당장 많이 받게 되는 돈보다도 안정적인 직업이 있다는 게 크나 큰 힘이라며 자신도 이제 정규직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더욱이 노동자들의 손으로 따낸 것이기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규모 자동차 공장에 자동차 냉/난방기를 제조하여 납품하는 곳이 대전의 한라공조이다. 유진과 미래유통은 이 한라공조의 하청업체다.
“정시 작업은 아침 8시부터 오후5시까지 하고, 잔업은 5시 30분부터 9시까지 해요. 유진은 말 그대로 포장단계이고, 저쪽 미래물류센터에서 포장된 것을 납기일에 맞춰서 수출하는 거죠.” 손문호 노조 사무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에어컨 라인은 에어컨 관련 모든 부품을 다 포장하는 거예요. 작은 부품들을 앞쪽에서 정리해서 포장하면 다시 대포장을 하게 되죠. 일은 포장 부자재를 준비해서 포장을 한 뒤 랩핑을 해서 쌓으면 되는 거지만 쉬운 게 아니에요.”
장정 5명은 족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상자에는 수많은 작은 상자와 부품들이 빼곡하게 들어 앉아 있었다. 허리를 완전히 숙여 상반신을 부품과 함께 상자에 담아가며 일하는 모습은 마치 상자에 다리가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여기 하는 언니들 보면 어떤 언니들은 허리도 다쳤고, 저 같은 경우는 어깨가 아파 지금 병원 다니거든요. 그래도 일하면 다 가정에 보탬이 되니까 나와서 일하는 거죠.” 테이프를 길게 뜯어 상자에 붙이고, 3-10kg정도의 부품들을 전등 가까이 들어 확인한 후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해 가며 상자에 담는 모습을 보며 김귀미 조합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인의 끝 쪽에는 2,3천 가지의 박스들이 하나의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 라인을 돌아보며 근골격계 질환이 많겠다는 했더니, 무엇보다도 상자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한다. 비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데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더욱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하다보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는데 여름에는 냉방이 안 되는데다 통풍시설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쥐약이란다.
“여기가 환경이 안 좋아요. 약국, 매점도 없어요.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말하던 손문호 사무장이 무언가 급한 일이 생각난 듯 노조사무실로 향했다. 노조사무실에서는 현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간부, 조합원이랄 것도 없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우리는 단결한 거밖에 없죠.”
전국금속노동조합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는 지난 2월 17일 창립되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일한 지 1년 될 때까지는 실감을 못했어요. 1년이 다 되어서야 잘릴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생기면서 ‘아, 우리가 비정규직이구나!’ 실감을 했죠. 연봉계약 1년차가 생기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근데 어떤 사람은 올려주고 어떤 사람은 연봉계약을 작년과 똑같이 동결을 시켜버린 거예요. ‘동결된 상태로 안 하면 집에 가라’ 그런 식이었던 거죠. 그걸 계기로 해서 노조가 결성된 거예요.” 김귀미 조합원은 대표이사의 임금동결 때문에 노조가 만들어졌다면서 노조창립은 대표이사 덕이라는 농담을 건넸다. “처음에는 점심 때마다 모여서 노래도 배우고 교육도 듣고 그랬어요. 그냥 우리는 노조 간부들 하는 거 따라했을 뿐이고 단결한 거밖에 없죠.” 단결밖에는 한 게 없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도 겸손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현장노동자의 힘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대전 제3공단 한라공조 물류센터에 위치한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전에는 모두 유진업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04년 9월, 연월차 및 수당 등의 문제로 관리직이 파업을 했고 이에 한라공조에서 05년 1월 1일부로 이원화를 해서 유진과 미래유통으로 나뉜 것이라고. 관리직 파업으로 연월차와 잔업수당 등을 따낸 것은 긍정적이지만 업체가 둘로 나뉘게 되면서 노조를 결성하는데 함께하지 못한 지점이 있다면서,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앞으로는 미래유통 사람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의도 들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관리직을 비롯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첫 날 모두 노조에 가입했어요. 근데 이전에 같이 유진에서 일하던 사람들인데 하청업체 소속이 바뀌면서, 한 마디로 회사가 달라지니까 가입하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초동은 유진노조였겠지만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로 만들었으니까 이제 한라공조 하청업체 사람들이면 누구든 가입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잘 하면 다들 보고 있으니까 가입하게 되겠지요.”
현판식, 그 초심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
한라공조의 연간 매출액이 50-60억이지만, 유진은 도급 업체로 이윤율이 1억5천에서 2억5천이라고 한다. 또한 사업장 규모가 너무 작아 한라공조에서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나면 업체에서는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다른 제조 사업장이나 이런 곳은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힘이 있는데, 저희들은 한라공조에서 만든 제품을 포장을 하기 때문에 한라공조에서 ‘야. 너희들 못 믿겠다.’ 끊어버리면 끝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한정되어 있는 임금 폭을 가지고 교섭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도급계약 해지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여기 임금격차가 굉장히 심했어요. 25만원 차이가 났으니까. 남자는 105만원 여자 80만원 그랬는데, 모두 기본급을 100만원으로 맞추고 거기에 5% 임금 인상을 한 거예요.” 현판식을 함께하고자 온 성세경 동지의 잠깐 설명. 그러자 김귀미 조합원도 덧붙인다. “이전에 이주노동자가 6명 있었는데, 비자 만료가 되어서 5명은 출국하고 지금은 1명 남았지만, 진짜 이주노동자들 형편이 얼마나 어려워요. 여기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있는 돈도 다 집에 보내니까. 작년 12월에 출국일자가 정해졌는데 체불임금이 있었거든요. 근데 여기 노조 생기고 나서 다들 가입하고 그 체불임금 다 받았잖아요. 또 여기서 한 5년 일했거든요. 근데 5년 동안 보너스라는 것도 한 번도 못 받아 보다가 이번에 처음 받게 되었어요. 체불임금 다 받고 보너스 받았을 때, 찡그려졌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뀌어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너무 잘 되었다고 같이 일하는 우리도 다들 좋아했지요. 정말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우리나라 와서 엄청 고생하는 거잖아요. 근데 웃으면서 돌아가니까, 그거 보는 것도 행복인 거 같아요.” 같은 직장 동료의 일을 마치 자신의 행복처럼 느끼는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이런 것이 진정 ‘같은 뜻을 지니고 함께하는 사람, 동지’가 아니겠는가.
“애들 건강하고 잘 커주고, 신랑 건강하고 내 몸 건강하고 그게 꿈이죠. 그리고 요즘에는 경기가 어려워서 작은 회사들 문 닫는 곳이 많잖아요. 비정규직은 1년 계약해서 일 하다가 1년 되면 잘리고. 제 친구들도 그런 사람들 많거든요. 진짜 그런 게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회사측에 바라고 싶은 것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는 거. 아직까지도 자본가라고, 사업가라고 하면 움켜쥐려고 하는데 그러지만 말고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거.” 김귀미 조합원의 바램과 “오늘 현판식 하잖아요. 우리가 처음 노조를 설립했을 때의 그 초심을 끝까지 지켜 간다면 무엇이든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손문호 사무장의 바램을 기억하며 진행되는 현판식에 박수를 보냈다.
언제 어떤 색깔의 꽃이 필지 열매를 맺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의 새싹을 보면서 그 싹이, 줄기가 시들지 않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순간까지 계속 자라나길 염원하면서... 또 다른 새싹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