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김남숙
정부가 지난 해 8월부터 실시했던 의료기관 서비스 평가 결과를 4월 14일 전격 발표하였다. 전국 78개 대형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평가는 애초 의료기관의 서비스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그 수준을 향상해나가겠다는 방향에서 추진된 것이지만,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마땅치 않다는 비판적인 우려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 평가는 의료법에 따라 종합병원과 300병상 이상 병원을 대상으로 3년마다 하도록 되어 있다. 복지부는 이에 따라 이번의 78곳을 제외한 254곳에 대한 평가를 올 하반기와 내년 중 2차례에 나눠 추가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평가를 위해선 390명의 요원이 투입됐는데, 의사 1명, 간호사 3명, 약사ㆍ의무기록사ㆍ영양사ㆍ병원관리자 각 1명 등 10명으로 구성된 평가팀이 병원 2곳을 맡아 평가를 수행하되, 한 병원 당 이틀의 시간을 배정하였다. 이번 평가는 총 18개 항목으로 분류됐다. 환자의 권리와 편의, 인력관리, 진료체계, 감염관리, 시설관리, 안전관리, 질 향상 체계, 병동, 외래, 의료정보ㆍ의무기록, 영양, 응급, 수술관리체계, 검사, 방사선검사, 약제, 중환자, 모성과 신생아 분야 등이 그것인데, 의료기관의 주요 영역을 포함하도록 되어 있었다. 평가의 결과는 각 영역에 대하여 A등급의 경우 최대 기대치의 90% 이상을, B등급은 70-90%, C등급은 50-70%를 충족한 것으로, D등급은 50%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해석했다. 어쨌든 의료기관의 반발과 잡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의료기관 평가의 보따리가 풀려진 셈이다.
이번 평가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초대형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하여 일류병원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들 세 개 병원은 A등급만 10개 항목 이상을 얻어 나란히 1, 2, 3위의 평점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은 A등급 12개 항목, B등급 5개 항목, C등급 1개 항목을, 서울아산병원은 A등급 12개 항목, B등급 4개 항목, C등급 2개 항목, 삼성서울병원은 A등급 10개 항목, B등급 7개 항목, C등급 1개 항목을 기록, 최상위권을 형성했다. 뒤를 이어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과 경희대 의대 부속병원, 강릉아산병원, 가톨릭대 강남 성모병원 등은 9개 항목에서 A등급을,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전남대병원은 8개 항목에서 A등급을, 가톨릭대 성모병원과 강북삼성병원, 이화여대 의대부속 목동병원은 7개 항목에서 A등급을 차지, 상위권을 형성했다.
지금까지 어떤 의료기관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지만 대부분 정확한 근거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그야말로 소문에 의한 평가라서 국민들은 대체로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어떤 의료기관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 국민들의 알 권리와 의료선택권 보장을 위한 것이 이번 평가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고 보면 그럴듯한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듯하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기관에 대한 질을 평가해서 국민들에게 알려 국민들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기관에 미비점 알려줘서 의료기관이 스스로 시설과 장비, 인력 등을 보강하도록 하는데 이번 서비스 평가의 목적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기존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한 자발적인 개선과 노력을 촉진하는 긍정적 역할이 기대되기도 한다. 또 이런 노력이 향후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의료기관들이 국제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유력 일간지들의 평가도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번 평가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과 말들도 많다. 먼저 1등을 차지한 서울대병원의 경우 이번 평가가 서울대병원의 장점인 ‘임상 진료 수준에 대한 평가’나 ‘의학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일면적인 평가일 뿐이라고 오히려 비판한다. 이런 부분들이 포함되었더라면 압도적인 점수 차이를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오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여러 언론에서는 두루뭉실한 평가기준을 비판하기도 한다. 각 평가의 등급이 A등급은 90점 이상, B등급은 70점-90점, C등급은 50점-70점, D등급은 50점 미만으로 기준을 정해 평가기준 점수대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지고 평가 결과 발표가 전체적으로 두루뭉실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은 시설, 인력, 장비 등에 대한 구조부문과 의료서비스의 제공 절차와 제공 성과, 환자만족도 등이 의료서비스의 주요 평가요인일 수는 있어도 과연 이들 항목만으로 의료기관의 수준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그래서 의료진의 진료능력과 같은 부분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막연한 소문에 의한 의료기관 평가로 국민들이 현혹되거나, 아픈 환자가 의료기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애태우는 폐단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하기도 한다. 한편, 이번 평가의 상위에서 밀려난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2000병상으로 다음 달 출발하는 신축병원 건축 중이어서 평가에 대비하지 못해 결과가 나빴다고 자평하면서 이번 평가가 진료 수준에 대한 평가 결과가 아닌, 단지 시설과 서비스에 대한 것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였다. 새 병원이 개원하면 다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빅4에 합류할 것이라는 게 의료계 세간의 공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병원들은 노동자들이 다가갈 수 없는 금지구역 병원들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최상위 의료기관의 공통점은 바로 산재노동자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 병원들 중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은 아예 산재보험 지정기관으로 신청한 적이 없으며, 신촌세브란스 병원은 2000년 지정을 취소하려던 시도를 했다가 산재노동자들의 반발로 이를 보류했던 적이 있다. 손목이 절단되거나 허리뼈가 부러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산재노동자들은 이들 병원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이들 기관이 바로 산재보험 비지정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병원들, 서울대병원, 서울삼성병원, 원자력병원, 강남성모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이 모두 비지정기관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제 40조)이나 시행령(제29조), 시행규칙(제 14조) 등에는 부득이하게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할 경우, 응급조치 후 지정 의료기관으로 전원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부득이 요양한 경우 수술비 등 진료비는 산재노동자나 혹은 사업주가 해당 진료비(요양급여)를 병원에 먼저 지급한 후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비 청구서"를 작성하고 영수증 및 진료비 내역서를 첨부하여 근로복지공단 해당지사에 사후 청구하도록 되어 있다. 이 경우 비지정 의료기관의 요양비는 일반환자 수가로 진료비를 청구하기 때문에 보험액수가 아닌 비보험 액수로 진료비가 막대하게 들어간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산재 인정여부는 진료가 개시된 지 빨라야 한 달이 소요되기 때문에, 만약 비지정기관에서 진료를 먼저 받았다가 산재인정을 받지 못하면 큰 낭패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산재 노동자든, 사업주든, 비지정기관에서 전전긍긍할 여유가 없게 된다. 결국 구조적으로 빅3병원, 빅5병원은 산재노동자가 이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의료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형평과 접근성이다. 형평은 경제적․사회적 계급 계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의료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며, 접근성은 지역과 거리에 관계없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 덕목은 의료서비스의 가장 본질적인 평가 항목인 셈이다. 따라서 진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든지, 1-2인실과 같은 비보험 병실을 많이 운영하든지 하여 환자의 비용부담을 크게 하는 것은 의료서비스의 기본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의미한다. 또는 의료급여환자의 입원을 기피하여 전체 진료환자 중 그 비율이 현저히 적은 것도 이들 접근성과 형평에 반하는 결과들일 것이다.
더구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지정기관 신청만 해도 되는 간단한 문제를 이들 빅3병원들이 나란히 기피하고 있다는 점은 노동자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의료서비스의 본질적 특성인 형평을 파괴하는 반노동․반사회적인 행위에 다름 아닌데도, 우리 사회의 여유는 이들 병원이 보여준 평과 결과들을 그저 가십거리로 용인하고 있다. 아마 조사해보면 이들 병원은 상급병상 비율이 가장 높고, 의료 급여 환자 입원율은 가장 낮은, 그래서 천박한 자본주의 병원의 특성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이런 병원들이 설령 18개 항목에서 A급을 모두 받는다 해도,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을 수는 없다. 1년 동안 발생하는 8만 명의 산재 환자들이 이들 병원을 평가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의료기관 서비스 평가는 노동자의 잣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서비스 평가의 최종적인 결과는 “산재환자 안 받는 병원이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