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산재보험의 사각지대

전국시설관리노조 고려대시설지부 인터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이민정


고려대학교에는 10년, 많게는 30년까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매년 ‘재계약’을 맞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 중에는 1999년까지는 학교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어느 날 ‘청소용역’이 되어버린 이들도 있다. 매년 용역업체는 바뀌는데 학교를 관리하는 노동자도, 그 노동자들이 하는 일도, 그리고 원청인 고려대학교도 그대로이다. 다행히 작년에 설립한 노동조합이 큰 힘이 되어 이제 소장들도 현장에서 막말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자르지는 못하게 되었다. 물론, 매년 닥쳐오는 고용불안, 새벽 4-5시부터 거의 12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 저임금 등 무수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산재는커녕 공상마저도 없는, 병가도 쓸 수 없고, 아파도 당장 나와서 일하도록 눈치 보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고려대시설관리노조 이영숙 지부장(60세)를 만나 시설관리노동자의 현실을 들어봤다.

“아저씨가 언덕에서 리어카를 막 끌고 내려오다가 힘을 못 배기고 다리를 다쳤어. 자기 사비로 치료할 수는 없으니까 산재처리해서 고대병원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나가버리더라고. 그 아저씨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어서. 그 아저씨가 들어가겠다고 새로 들어온 사람을 해고할 수도 없는 거고 하니까.”

이것이 이영숙 지부장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고대 청소용역노동자의 산재 사례이다. 용역업체는 며칠 이상 사람이 못나올 것 같으면 당장 새로 사람을 뽑아 그 자리에서 일하게 만든다. 원래 일하던 사람이 아팠든, 집안의 큰 일이 생겼든 상관없이. 그래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단 며칠도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다. 사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 혹은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정도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출근을 해야 할 정도다. 혹시라도 아파서 며칠 못나오면 당장 내가 일하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와서 일하게 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사실 자신의 일자리를 걸지 않고는 산재신청을 선뜻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산재신청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공상조차 청소용역노동자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치거나 아프면 자기 돈으로 치료받고, 하루 이상 빠지게 될 것 같으면 잘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과학도서관 현관에서, 그 때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지. 여자가 유리를 닦다가 애들이 문을 탁 놓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그 사이에 손가락이 끼어서 손가락 끝이 나가버렸어. 그 끝은 못 찾았는데, 노조에서 산재처리를 이야기하니까 산재 싫다고 그러더라고. 산재하면 나가야 될 것 같으니깐. 그래서 며칠만 입원하고 통원치료하고서는 손가락에 붕대 치매고 일을 했어요. 치료비도 자기 돈으로 내고. 한 2일인가, 3일 있다가 일하러 나왔지. 한 손으로라도 하겠다고.”

워낙에 한 사람이 400~450평 면적의 청소를 감당할 정도로 일이 많다. 그래서 하루라도 빠지게 되면 그 일을 했을 동료에게 미안해서 그날 일당분을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그래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산재는 물론, 병가도 낼 수가 없다. 내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다 동료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기 때문에. 스스로 표현하듯이 ‘아픈 게 더 죄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은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서도 실제 그 적용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설관리노조 이상선 동지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의 사각지대죠. 산재가 발생하면 용역회사가 다음에 계약할 때 불리하죠.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던 원청은 고스란히 책임을 회피하게 되는 거고요. 원청은 그리고나서 산재로 현장 공백이 생기면 용역업체에 ‘채워라’고 지시하는 거죠. 현장소장들은 중간에 샌드위치 낀 역할 정도고요.”
여기서 ‘채워라’는 아파서 일을 못하고 있는 노동자의 ‘해고’를 의미한다.

그나마 노조가 생기면서 수술 등으로 부득이하게 일을 못하게 된 사람들을 용역회사가 알아서 자르던 관행은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무급휴직으로 처리되긴 하지만 적어도 복직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그것도 간접고용의 비정규직이라는 상황부터 바꿔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한 단 하나의 조치도 산재보험 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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