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도덕적 해이”를 넘어 “산재보험제도의 전면개혁”으로

[특집3]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직위원 김정수

“나는 혹시 가짜 환자가 아닐까?”

지난 3월 말, 울산에서 산재요양 중이던 환자가 산재보상보험법 위반으로 무더기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에서는 '엉터리 산재환자가 많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어 "현대자동차의 경우 연간 1,200여명이나 되는 산재환자가 발생하며 이 가운데 절반쯤은 다른 직업을 갖는 등 요양이 불필요한 엉터리 환자"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내렸다. 이제 불이익이 두려워 고심 끝에 산재요양을 신청한 노동자, 고용을 포기하면서 산재요양을 신청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나는 혹시 가짜 환자가 아닐까? 나는 혹시 보상금을 위해 불이익도 불사하고, 고용을 포기해가면서 산재요양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도덕적 해이”

'가짜 환자'에 대한 논란이 이번 구속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인정이 증가하면서부터 '가짜 환자'에 대한 시비는 끊이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경총 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는 작년 5월 3대 결의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계획 중 하나로 소위 '가짜 환자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한 바 있다.

흔히 '가짜 환자'문제를 일컬을 때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산재보험에서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는 자본의 핵심적인 주장은 '질병과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과도하게 보상 받고 있으며, 사고를 당한 후에도 지나치게 부유하고, 사회보장의 관대함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한가로운 삶을 선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근본적인 모순은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판매하고, 자신의 노동환경을 스스로 통제하며, 질병과 재해를 당했을 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의료공급자를 선택하고, 의료서비스의 유형과 양을 결정한다고 가정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가정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각은 현실에서는 '가짜 환자'보다 재해를 당하고도 고용과 관련된 각종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산재보험을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가짜 건강인'이 훨씬 더 많으며, 신청을 하더라도 승인, 요양, 재활, 복귀 과정에 수많은 난관들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일터 4월호, 특집기사, 요양치료와 복귀, 무엇이 문제인가 참조)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왜 “도덕적 해이”를 도마 위에 올리려 하는가?

상황이 이러함에도 왜 자본은 언론과 합작하여 '도덕적 해이'를 도마 위에 올리려 하는가? 단기적으로는 산재보험과 관련해 노동자의 도덕성을 공격하면서 향후 예상되는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논란, 특히 산재보험 제도개혁과 관련된 논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노사협조주의를 확산/공론시키고, 민주노조 운동의 정체성인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 연대성 등에 대한 흠집 내기를 통해 체제내화 시키고자 함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구속사태가 대공장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점은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대공장 노동조합 활동기풍을 거세하고 고립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노무현 정권의 '대공장 죽이기'와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을 생각하며

최근 산재보험제도 개혁과 관련한 논의들이 본격화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3월 30일 제2차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를 가동하면서 산재보험제도 혁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의 핵심적인 내용은 '재정안정화와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이라 한다. 열린 우리당에서는 장복심, 유시민의원 등이 국민의료비 심사일원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노동계에서도 산재보험제도의 개혁방안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그 중 일부가 최근 논의에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 여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논의들은 “심각한 상황에 이른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산재보험에 대한 보다 공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즉, 국민의료비 심사일원화를 포함한 산재보험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것을 계기로, 최근 산재가 급증한 근본적인 원인과 산재보험제도를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로 문제를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노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한 노동강도의 강화와 산재보험제도를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전반의 총체적 부실을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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