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보건의료 사유화, 노동자민중의 치료받을 권리는 어디로?

[특집4]

민중의료연합 이진석/박주영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통과, 본격적으로 시작된 의료사유화의 바람

2004년 12월 31일,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외국인 의료기관들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 시민사회단체가 그토록 우려했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끝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얼핏 들어서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끝없이 시도되어온 의료 사유화의 핵심적인 기제다. 의료법 상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된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적용받지 않는 외국 영리병원의 설립, 이들과 경쟁하는 국내병원들의 반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비영리법인 규정을 ‘영리법인’으로 허용하라는 병원자본의 강력한 요구, 영리병원과 더불어 자신의 시장을 개척하고 확대시키려는 보험자본의 시도. 결국 이 모든 시도들은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를 침해하게 된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당연히도 건강보험의 취약함과 종국적인 붕괴를, 수익 중심의 영리병원 설립과 확대는 공공병원을 비롯한 공공의료체계를 더욱 축소시키고 의료체계 자체를 이원화시켜버리는 것이다.

보건의료 사유화의 역사

실제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이전부터 보건의료 체계를 사유화하려는 흐름은 꾸준히 있었다. 이미 2001년 12월 정부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테스크포스팀'의 이름으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협력을 통한 의료보장체계의 개선방안>을 제출했다가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었고 2002년 6월 다시 "보험제도의 선진화"라는 미명아래 "민영건강보험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조성"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바뀌어서 나타나, 노동조합과 보건의료단체들은 광범위한 반대여론을 조직해냈다. 1998년 이후 지방공사 의료원을 대상으로, 수익성 제고를 중심으로 실시되었던 구조조정을 상기해보자.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지방공사 의료원의 구조조정/민간위탁/민간매각과 노동조합의 대응, 2002)

1998년 2월 행정자치부는 ‘지방공사 운영개선 방안 이행 권고’에서 민간의료기관으로의 위탁경영을 확대하고, 동년 5월에는 인건비 절감 운영을 권고하였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기본급 대비 10% 인건비를 삭감한다는 계획을 제출하였다. 그 밖에도 각 의료원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퇴직금 누진제 개악 시도, 간호사 직급제 전환, 직제 개편, 단협 불이행 및 임금체불, 인원감축 등과 같은 구조조정이 시도되거나, 일부 관철되었다. 그 이후, 수차례 의료원들은 민간위탁 혹은 민영화 대상 사업장으로 지목되었으며, 실제로 민간위탁이 추진되곤 했다.

의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의료산업화의 논리

지금까지 그나마 ‘의료’ 사유화의 흐름이 저지될 수 있었던 것은 희미하게나마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료의 공공성’ 개념 때문이었다. 공공의료에 대한 정치적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는 하지만, 국민들은 ‘의료’는 차별 없이 제공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방공사의료원 민간위탁 저지 투쟁이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반대투쟁에서도, 항상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 ‘의료는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정부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아예 뒤집어, “의료는 산업이다”는 논리를 전면화하면서, 의료기관을 영리기관으로 인식시키려하고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보충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시도를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4년 12월 전경련 토론회에서 발언한 정형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말은 자본과 정부의 논리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지나친 평등주의에 얽매여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선택권이 제한받는 것이다. 의료공급자인 의사도 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에서 만들어준 테두리 안에서만 진료가 이뤄지고 있어, 주체적인 진료선택권이 제한 받고 있다. 경제특구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허용돼야 국부효과가 있고, 국내 의료체계에 파급효과도 있다. 국내 의료체계 역시 기본적으로 저소득계층에 대해선 의료급여 제도를 확대하고, 차상위계층과 상위계층은 기존 건강보험 체계를 유지하면서, 일부 상위계층은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보다 나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진료선택권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산재보험관련 규제완화, ‘의료산업화=의료사유화’ 흐름의 한 단면

‘의료산업화’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

현행 병의원은 영리활동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민간자본의 참여 동기가 미흡하며,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기술경쟁력과 효율성 제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병원수익의 배당과 처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식 발행까지 가능한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계약제로 전환

현행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계약제로 전환하고, 건강보험 적용을 원하지 않는 병의원은 자율적으로 책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신의료기술 개발과 적용으로 특화된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민간의료보험 확대

현행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과 건강보험의 저수가 구조로 인한 기술혁신 동기 결여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제기되고 있다. 건강보험재정 지출의 지속적인 증가 경향을 감안할 때, 건강보험의 급여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확대를 통해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을 보완하고, 병의원의 고급화, 차별화된 의료서비스 개발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4) 의료관광산업의 활성화와 병원의 해외진출 지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관광산업과의 결합이 가능한 성형, 피부미용, 보철, 외래수술 등이 주된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동남아와 중국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 병원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체계를 갖춘다는 것이다 2003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국내 병원의 해외투자 규모는 230만 달러(한화 25억원)로 이 가운데 76.1%인 175만 달러가 중국에 투자되었다(전경련, 2003).

최근 제기되고 있는 산재보험 요양관리지침이 강화되는 경향 및 규제완화 시도 또한 이러한 흐름과 함께 읽어나가야 한다. 사실 현행 민간의료보험은 보장성 수준, 합리적 보험료 책정, 소비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정보공개, 가입자 자격 요건 등에 걸쳐 문제점이 있다. 현재 전체 민간의료보험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보험 민간의료보험의 지급률은 60%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 민간의료보험의 지급률(손해율)이 80%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국내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받는 혜택이 지나치게 적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급여항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약관의 맹점을 악용해 발생빈도가 높은 질환을 급여범위에서 제외하고도 보험가입 당시에는 마치 모든 질환이 포괄적으로 보장되는 것처럼 설명한다든지, 실제사업비보다 예정사업비를 과다 계상하여 보험료를 부풀린다든지, 보험료 중에서 얼마를 가입자가 돌려받고 얼마를 보험사가 가져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든지, 질병 발생 위험이 있는 사람의 보험 가입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일반화되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실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가입자를 선별하고 치료과정에서 심사를 강화하는 등, 전반적인 보험체계가 보험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산업화’ 논리를 넘어설 사유화 저지투쟁을!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이에 합당한 총체성을 띨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운동진영의 수준은 아직까지 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첨예한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측이 점진적인 접근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명시적인 활동의 계기를 형성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담론은 확대 재생산되면서 의료서비스의 미래상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첫째, 현재의 국면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더 이상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사안들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파국적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가 필요하다. 현재는 의료서비스 산업화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선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근거가 되었던, 현재의 상업적인 한국 보건의료의 제반 문제점을 해결할만한 유력한 대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운동진영의 경우, 무상의료에 대한 주목을 이뤄냈으나, 그 이후 이렇다 할 조직적, 정치적 실천이 없었으며 단지 수사로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던 ‘건강하게 일할 권리’, ‘누구든지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는 이제 '산업화‘의 논리 앞에 허물어져 가고 있다. 매몰되어 가는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의료는 산업이니, 돈 없는 자와 부유한 자를 갈라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저들은 이제 의료는 당연히도 돈 주고 구매해야 할 서비스로 규정지어버리려 한다. 노동자민중의 목숨과 건강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시점, 긴장감 있는 반격으로 전사회적인 투쟁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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