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정종혁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만든 ‘근골격계 질환 인정기준’과 ‘요양업무 처리규정’은 200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본격적인 대응책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산재인정 투쟁으로 축소되고 현장은 더 위축되고 수세적인 상황으로 계속 내몰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3월에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산재노동자 구속사건과 산재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언론기사들,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산재보험개혁 방안들. 그들이 무언가 더 큰 판을 짜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05년 4월은 이런 위기감 속에 찾아왔다. 수세적이긴 하지만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나이롱 환자’ 운운하면서 산재보험 개악에 나서고 있는 그들에 맞서 산재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하고 피해 사례를 모아서 일단 투쟁에 들어가기로 했다. 4월 말까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각 단사별로 불이익 사례를 수집하여 이것을 중심으로 4월말 투쟁을 가져가기로 했다. 한편 이 사안이 몇몇 사업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역적인 연대투쟁이 필요했다. 특히 피해 사례들이 비정규직, 영세사업장에서 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올해 3월에 광주전남지역에서 KT 인권탄압 증언대회를 함께 준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0여개 노동·사회단체·노동조합들이 다시 모여서 ‘산재보험 개악분쇄와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광주전남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을 꾸렸다.
광주노동보건연대가 상담 받은 불이익 사례와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에 올라 온 불이익 사례들을 중심으로 일단 투쟁에 들어갔다. 뇌심혈관계 질환 불승인, 강제 통원치료 등 모아진 불이익 사례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먼저 접수했다. 그 와중에 예기치 않은 근로복지공단 점거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의신청서를 반려했던 공단이 다음 날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자문의협의회를 열어서 일방적으로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광주노동보건연대와 민중행동 회원들이 급히 공단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자문의협의회는 끝나고 공단 직원들도 퇴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단의 기만적인 행태에 항의하며 그 자리에 앉아서 바로 농성에 들어갔고 그 날 예정되어 있었던 공투단 회의를 점거농성장 안에서 진행했다. 몇 시간 후 담당 보상부장이 달려와서 다시 심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풀었지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그들이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거농성은 풀었지만 투쟁일정은 오히려 앞당겼다. 바로 다음 월요일날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 앞에서 공투단 약식집회를 갖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공투단 참가단위가 돌아가면서 천막농성을 했다. 천막은 투쟁의 거점이었고, 중간 중간 단사별 선전전을 진행했다. 임단협 투쟁을 하고 있던 캐리어 동지들과 함께 출근 선전전을 했고, 금호타이어 광주, 곡성공장 앞에서도 선전전을 했다. 노동탄압에 맞서 출투를 진행하고 있던 기아자동차 앞에서도 아침에 함께 선전전을 진행했다.
5월 10일에는 근로복지공단 본부장을 직접 만나서 항의 면담을 했다. 예상했던대로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는 책임회피와 노력하겠다는 공언(空言)만을 늘어놓았다. 물론 사과를 받아내고 몇 가지 시정조치를 약속받는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5월 14일, 5월의 광주를 기억하며 모여든 전국의 동지들과 함께 집회를 갖고 천막농성은 마무리 했지만, 이후 공투단을 지역의 안정적인 연대체로 전화해서 계속 투쟁을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이번 투쟁은 나름의 성과와 한계를 남겼다. 성과라면 매년 형식적으로 진행된 4월 사업이 아니라 지역적·전국적 현안을 적극적으로 투쟁으로 배치하면서 4월 투쟁을 진행했다는 점과, 지역적 공동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전국적·지역적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했다는 점 등이다. 한편 현장 결합력이 부족했던 한계도 있었다. 실제 각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이익 사례들을 투쟁으로 결합시켜 가지 못했고, 현장과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에 대한 교육, 선전활동이 미리 준비되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더구나 이 문제가 지역적 투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투쟁 기획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