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드라이클리닝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콩아줌마



지난 겨울에 입었던 남편의 반코트가 봄철 다 가도록 현관문 앞에 걸려있습니다. 옷장에 넣기 전에 아무래도 드라이클리닝을 한 번 해두어야 좋을 듯 싶어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꺼내둔 것이지요.

현관문 바로 앞에 꺼내둔 보람도 없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삿짐을 꾸리면서 새삼 눈에 띄더군요. 동네 세탁소가 문열기 전에 집을 나와 세탁소 문이 내려간 뒤에야 집에 돌아오는 형편이니, 이러다가는 먼지만 뽀얗게 쌓이겠다 싶어서 그냥 털어 옷장에 넣어버렸습니다.

드라이클리닝. 어쩌다 한 번씩 하려면 이래저래 번거롭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그까이꺼 머, 대~충 세탁기로 빨면 되지"하다가는 옷이 확 줄어버려서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더군요. 물빨래를 하는 옷이라도 기름때나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없앨 때는 단연코 드라이클리닝이 낫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이란 물이 아니라 각종 유기용제를 이용하여 섬유를 세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빨래를 물이 아니라 기름으로 해보자는 이 기발한 발상은 1825년 경 프랑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염색 공장에서 누군가 우연히 등잔 기름을 탁자에 엎질렀는데, 나중에 탁자를 덮어둔 천을 말리고 나서 보니까 지저분한 묵은 때가 사라졌던 것이지요. 이 사실에 착안하여 터펜틴이나 케로진, 더 나아가서는 벤젠이나 가솔린 등 석유계 용제들을 이용한 드라이클리닝 방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석유계 용제들에는 아주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석유에서 유래한 만큼 불이 잘 붙고, 자칫하면 큰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드라이클리닝을 대규모로 해야하는 섬유공장이나 대형 세탁공장들은 도시 외곽 지역에만 건설해야 했다더군요.

그러다가 1940-50년대에 들어서면서 때가 잘 빠지면서도 불이 잘 붙지 않는 새로운 유기용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삼염화에탄과 사염화에틸렌, 그리고 씨에프씨(CFC)입니다.

흔히 삼염화에탄은 줄여서 티씨이(TCE)라고 부르고, 사염화에틸렌은 펄크(PERC)라고 부르는데, 두 가지 모두 탄소와 수소로 된 뼈대에 염소 원자가 서너 개 붙어서 이루어진 “염화탄화수소” 계열입니다. 씨에프씨는 “클로로플루오로카본"이라는 긴 이름을 줄인 것인데, 마찬가지로 탄소와 수소로 된 뼈대에 염소가 아니라 불소가 붙어서 이루어졌고, 우리가 흔히 “프레온”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물질입니다.

이런 물질들은 여느 유기용제들과 달리 불이 잘 붙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을 꺼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내화력이 좋습니다. 그러니 화재 위험이 적은 세제를 학수고대하던 세탁업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씨에프씨, 즉 프레온은 지구 대기 중의 오존층을 파괴하여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 협약을 통해 사용이 금지되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드라이클리닝 업계를 평정한 것은 티씨이와 펄크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크고 작은 세탁업체의 90% 이상이 티씨이나 펄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티씨이와 펄크 역시 완전한 물질은 아닙니다. 화재의 걱정도, 대기오염의 위험도 적지만, 그 대신 몸에 해로운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간독성입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암이나 기형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탁 과정에서 고온으로 가열되었을 때는 폐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는 포스겐이라는 유독가스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대체할 만한 물질이나 세탁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에 이런 물질들이 드라이클리닝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세탁소나 세탁 공장에서 펄크나 티씨이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세탁에 이용되는 각종 화학물질들은 벤젠과 비슷한 모노클로벤젠, 콜타르에서 얻어진 피리딘, 로드유, 초산아밀, 초산에틸/메틸알콜/에틸알콜/이소프로필 알콜 등의 알콜류, 강력한 마취제인 에틸에테르, 빙초산/옥살산/락트산 등 각종 산류, 암모니아, 올레인산, 글리세린, 과망간산칼륨, 과탄산나트륨, 과산화수소, 차아염소산나트륨, 하이드로설파트, 푸란깃드, 아염소산나트륨, 아세톤, 산성아류산소다, 탄산소다, 아류화탄소, 티오황산나트륨, 요오드칼륨, 황산제일철 등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섬유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세탁으로 없애야 할 때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어떤 섬유에 어떤 때가 있어도 처리할 수 있도록 점점 더 많은 화학물질들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드라이클리닝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우선 세탁물들을 살펴서 섬유의 종류와 색, 마감 상태 등에 따라 분류하고, 특별히 오염된 부분이 있으면 하나하나 손으로 처리합니다. 면인지 실크인지 섬유의 종류에 따라서, 그리고 잉크인지 기름때인지 오염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가장 적합한 화공약품을 이용하여 직접 제거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세탁기계에 집어넣고 세탁과 건조 과정을 거쳐 기계 밖으로 꺼냅니다. 건조를 마친 뒤에는 구김을 펴기 위해 자동 혹은 수동으로 다림질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세탁업체의 노동자들은 앞서 말했던 수많은 화학물질들에 오갈 데 없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화학물질 뿐 아니라 인간공학적인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제각각인 세탁물들을 들어올렸다가 집어내리고, 기계에 넣었다가 빼내고, 엎었다가 뒤집어가면서 오염물질을 직접 제거하는 등, 모든 과정에 사람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불붙기 쉬운 여러 화공약품들이 밀집해있고, 세탁과 건조, 다림질의 과정이 대부분 고온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화재나 폭발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모 세탁공장에서 있었던 사건처럼 스팀 다리미가 폭발하여 크게 다칠 수도 있구요. 어떤 섬유공장에서는 완성된 제품을 세탁한 후 원심력을 이용한 초대형 탈수기에 넣고 돌리던 와중에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실족하여 그와 그를 구하려던 동료까지 두 명의 목숨을 그 자리에서 앗아간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각 동네의 세탁소에서는 날마다 수많은 세탁물들을 수거해가고 다시 집으로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어 교통사고나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드라이클리닝, 혹은 세탁업체에는 이렇게 물리적, 화학적 유해요인에 더하여 각종 사고의 위험까지 상존하고 있지만, 정작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년 말 환경부에서는 세탁소에서 배출되는 발암성 석유계 용제를 줄일 수 있는 신규 장비 도입을 유도하고, 유해가스 배출을 금하는 '악취관리법'을 통해 지역사회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런 방안은 비단 동네 주민들 뿐 아니라 세탁소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의 어려움은 작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세탁업체가 5인 이하의 작고 영세한 사업장이기 때문에 장비 하나를 바꾸기 위해 수백만원에서 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들이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세탁업체의 유해물질을 얘기하면서 정작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입니다.

아침마다 "세~탁, 세에~타악~" 하고 구성지게 외치는 세탁소 아저씨. 이제 날이 조금씩 더워지면서 대형 세탁 공장이건, 조그만 동네 세탁소건 매운 공기와 뜨거운 다리미의 열기, 무거운 세탁물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일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요.

하지만 그 덥고 맵고 비좁은 공간 어딘가에서부터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노동자의 권리는 싹트기 시작할 겁니다. 그 때는 우리도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고 찾아오는 동네 손님 말고 다른 이름으로 그 공간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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