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보험, 우리나라에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올 해 들어 41년째이다. 그간 급여의 수준이 증가하고, 적용대상 역시 대폭 확대되는 등 산재보험의 외형은 다른 사회보장에 비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산재노동자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다. 산재신청을 통해 직업병 승인을 받기가 여전히 힘들고 재활이나 작업복귀와 관련된 제대로 된 요양 역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산재보험을 개혁해 보고자 하는 노동보건운동 진영의 대안 제시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별반 진전이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가 바라는 산재보험은 간단하다. 아프면 간단한 절차에 의해 누구나 좋은 시스템에서 열심히 치료받고, 건강한 몸으로 가능한 조기에 작업장에 복귀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올바른 대안이라는 것은 내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바른 대안을 노동자의 입장과 힘으로 만들고 관철시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과거의 산재보험제도 개혁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연구소 리포트를 통해 산재보험과 관련된 차분한 논의와 평가, 그리고 대안마련을 위한 출발을 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5회에 걸쳐서 다음의 내용이 연재될 예정이다. 아무쪼록 실천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문제제기와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사회보장의 발전역사
2. 산재보험 관련 노동보건진영 대응 역사
3. 정부와 자본의 산재보험 개혁을 위한 방향과 대응
4. 산재보험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쟁
5. 산재보험 개혁의 방향과 과제
1. 사회보장의 발달역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김형렬
국제 노동기구에서는 사회보장을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의 위험들-질병, 노령, 실업, 장애, 사망, 출산, 빈곤-로 인해 소득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소득이 장기적으로 없어지거나, 지출이 크게 증가하여 사람들이 이전의 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이전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모든 프로그램으로 정의한다. 사회보장의 개념에 경제적 보장 뿐 아니라 각종의 비물질적인 사회복지서비스(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이를 합한 개념은 사회보장보다 넓은 개념인 사회복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사회의 사회보장 축소에 대응하는 노동자 투쟁에서 보듯, 사회보장은 자본의 능동적인 필요성에 의해 형성된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출발과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계급간 힘의 균형점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에게는 역동적인 투쟁의 대상과 내용이 되고 있다. 사회보장의 역사는 영국의 구빈법의 전통에서 시작된 사회보장의 도입단계, 세계대전 이후 전쟁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의 확대기, 전후 자본주의 호황기를 통해 나타난 사회보장의 황금기, 이후 자본주의 공황과 경제위기와 함께 등장한 사회보장 및 복지국가의 위기,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가 사회보장에 반영되는 시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사회보장 도입단계
공적부조제도
초창기 유럽 봉건사회의 구빈의 전통은 종교적 차원의 관심이었다. 영국의 구빈법 이전의 전통이나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빈 형태는 기독교 기반 하에 이루어졌다. 1601년 영국에서 구빈법의 제정은 봉건제의 몰락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봉건제의 몰락과 유랑민의 증가, 생계수단을 잃고 떠도는 빈민을 통제하는 것이 안정적 국가형성의 주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빈곤의 원인을 개인적 나태로 파악하고, 건장한 빈민의 경우 노동을 조건으로 생계를 지원하는 등 노동과 구제를 결합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이 당시에 이미 현대의 노동연계복지의 원시적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이러한 구빈법 자체를 사회복지법이라고 하기보다는 빈민들을 억압하고 통제 또는 관리하는 형사법으로서의 성격이 있었음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사회보험제도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이 제도화된 것은 1880년대 독일에서였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민주당의 성장에 대해 사회주의 진압법을 제정함과 동시에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당시 대공황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무마하기 위한 당근과 채찍 전략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진압법을 통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사회보험제도 도입을 통해 노동자들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2. 사회보장 확대기
당시 유럽에서는 전쟁시,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대가로 동시에 제도적 형태의 사회보장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통해 사상자와 빈곤계층이 늘어났고,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선별적 형태의 적용만 있었던 도입 당시에 비해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실업보험이 등장하게 되었다. 1942년에 영국에서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국민최저선을 사회보장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다. 국민최저선의 개념은 영국의 모든 시민이 노령, 질병, 실업, 혹은 기타 다른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 자산조사에 관계 없이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1929년의 경제공황으로 인해 대량 실업이 발생하였고, 뉴딜정책과 사회보장법 등을 통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3. 자본주의의 발달과 사회보장의 황금기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197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자본주의는 이례 없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포드주의적 호황이 복지국가 확대의 전제인 재정확보를 위한 조세수입을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고용의 증가는 노동자의 절대빈곤 영역을 축소시켰다. 그러나 포드주의와 결합된 사회화 형태는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심화시켰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복지국가적 해소방안 모색되었던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보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당시 국제기구들의 등장 역시 전 세계적인 사회보장의 확대에 기여하게 되는데, 1952년 국제노동기구에서는 사회보장 최저기준조약을 통해 사회보장의 보편주의 원칙, 비용부담의 공평성 원칙, 급여수준의 적절성 원칙을 천명하였다.
4. 경제위기와 복지국가의 위기
1973~4년 제1차 석유파동 등 세계적 경제위기, 경제성장 둔화, 실업률의 증가로 복지국가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황금기, 호황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위기 앞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복지국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실제 복지를 축소하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당시 사회보장의 후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적 관점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연계지어 복지국가 자체의 모순(축적과 정당화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당시 가장 큰 위협을 받은 것은 실업보험제도였다. 고실업사태로 인해 임금대체율의 하향조정, 수급자격의 강화, 실업급여에 대한 물가연동률 적용완화 등의 조처가 이루어졌다.
5.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 3세계의 복지
경제적 위기는 케인즈적 복지국가에서 혁신을 강조하는 노동연계적 복지국가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노동연계적 복지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복지국가의 재구조화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회보장에 있어서 국가영역의 축소와 시장기능의 복원이라는 시장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려 하였다. 사회전반에서 공공자원과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무역, 투자, 노동, 건강과 보건, 환경 등에 대한 정부규제를 완화/축소하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정부지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노동유연화전략을 통해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하려는 시도가 사회보장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IMF 구조조정프로그램을 받아들인 제3세계의 나라들에서의 빈곤과 실업의 증가,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이른 바 ‘지속 가능한 빈곤 경감’ 프로그램은 사회보장부문의 예산을 줄이고 예산지출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택적이고 단계적으로 지급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를 보편적 원칙에서 잔여적이고 임의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6. 맺으며
사회보장의 발달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사회보장의 발달 역사는 계급적 위협을 느끼는 지배계급에 의해 능동적 변화의 과정으로 변화하여, 피지배 계급의 요구와 투쟁에 의해서 수정되고 보완되는 계급간 힘의 균형지점에서 형성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사회보장의 내용과 개혁의 과정에 노동계급이 착목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 위축의 과정에 놓여져 있는 사회보장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가 우리의 주요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